
『환영의 바다』는 지상의 현실세계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영원한 초월적인 세계에서 이루고자하는 예이츠의 간절한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예이츠가 10대 후반에 접어든 1880년대 후반부터 쓰기 시작해서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극의 줄거리는 고대 애란의 바다의 왕인 Forgael이 인두조(人頭鳥)로부터 초월적인 사랑과 행복을 약속받고 바다를 건너 궁극의 안식처를 찾아 항해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도중에 아름다운 여인 덱토라를 만나 함께 인두조의 안내를 받으며 현실세계를 떠나 죽음을 맞이하면서 신비스러운 영원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극은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본래 일반 대중을 위해서 쓴 극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연극 발전을 위해 소수의 특수층을 위해 쓴 순수 시극이었다. 그래서 대본의 시어가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시적이어서 일반 대중의 호응을 얻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예이츠는 불필요한 상징화된 문구들은 제거하고 알아듣기 쉬운 대화체로 작품을 수정해나간다. 간결화된 문체로 손질을 가한 극은 긴장감과 생동감이 살아나면서 한층 변모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예이츠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몽환적이고 신비스런 분위기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극 전체의 분위기를 차지한다. 그러나 시어의 간결성과 더불어 인물들 간에 상호 갈등관계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극에 역동적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이츠의 탁월한 언어감각과 예술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예이츠 자신의 예술세계가 지향하는 현실과 초월이라는 이원론의 세계가 그대로 작품 속에서 투영된다. 휘게일이 이끄는 선원들은 현실세계의 세속화된 인간들을 대표한다. 그들의 언어는 저속하고 투박하며 노골적이고 그들의 관심사는 돈과 여자와 술이다. 그들은 관능적이고 천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현실주의자들이다. 이에 비해 주인공 휘게일은 현실세계를 초월한 지고지순한 영원불멸의 세계를 추구한다. 그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합리주의적 이성주의자가 아니라 영원한 초월의 세계를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자이다. 휘게일은 눈에 보이지만 실체성이 결여된 현실세계를 주목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보다 더 실체적인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이다. 예이츠가 세상을 바라보는 현실과 초월의 이중적 구도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예이츠는 이 두 세계를 극명하게 대조시켜 극의 긴장감과 갈등구조를 고조시킨다. 선원들이 구사하는 현실의 상스럽고 저속한 언어와 물질과 육체적 쾌락만을 탐닉하는 저급한 정신성은 고상하고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며 궁극적인 사랑과 진실을 갈구하는 휘게일과의 대립구조 속에서 묘한 인간의 본질적 양면성을 바라보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점들이 예이츠의 예술세계가 갖는 특징적 요소이다. 현실은 저급하고 천박하나 나름의 생명적 약동성을 지니고 있다. 초월의 세계는 고상하고 드높은 정신을 소유하나 관념적이고 몽상적이고 환영적이다. 예이츠는 현실의 부정성 속에서 긍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초월의 긍정 속에서 부정을 의식하는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환영의 바다』(The Shadowy Waters)라는 원제목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초월을 향한 바다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인간이 직면한 현실과 초월의 이원론 속에서의 끝없는 방황과 갈등과 투쟁을 통해서 인간본연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예이츠 예술의 진수를 인식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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