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치언 '숲속의 잠자는 옥희'

clint 2019. 11. 4. 15:24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다. 그 연상처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 위에 오른 '숲속의 잠자는 옥희'는 우리에게 익숙한 샤를 페로의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결론은 완전히 다르다. 동화 속 공주는 멋진 왕자의 키스로 저주의 마법에서 풀려난다.

연극 속 옥희는 영원한 잠 속에서 구원받지 못한다.

연극 속의 저주는 아무 근거 없는 소문과 비방, 악성 인터넷 댓글이다.

우연히 똑같은 이름을 가진 배우 옥희와 작가 옥희는 모두 허황되고 파괴적인 언어의 희생자가 되면서 무너져 내린다.

극 중 두 옥희는 서로 본 적이 전혀 없는 인물들이다. 중견 여배우 옥희는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배우인 애경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온갖 악랄한 소문에 시달린다. "옥희가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 있던 애경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비방 글이 인터넷에 확산된다.

 

한편 작가 옥희는 오랜 절필 생활 끝에 첫 소설을 출판하게 된다. 우연히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만 다를 뿐 배우 옥희와 애경 사이의 경쟁관계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누리꾼들은 배우 옥희가 애경을 죽도록 한 것이 소설을 통해 입증됐다고 난리다. 더구나 소설의 일부 내용이 작가 옥희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자살한 옥희의 친구 란이가 쓴 원고에서 발췌됐다는 의심이 생기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인다.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두 옥희는 공통점이 있다.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하지만 모두 무위로 끝난다는 점이다. 결국 비방의 대상이 되고, 마녀사냥의 표적이 된 옥희는 영원한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인터넷 세계에서의 무책임한 공격성,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상업적인 기사들로 파괴된 사람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이 연극의 재미와 흡인력은 한 명의 배우가 극 중 배우 옥희와 작가 옥희 두 역을 모두 맡아 연기하는 데서 나온다. 배우 옥희와 작가 옥희 역을 넘나들며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길을 헤매는 두 인물의 방황하는 모습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숲속의 잠자는 옥희'를 쓴 최치언 작가의 최근 희곡들은 거의 난해한 편이다. '숲속의 잠자는 옥희'의 경우 역시 복잡성을 갖고는 있지만 악성댓글의 만연 같은 인터넷 문화의 폐해 등 비교적 익숙한 소재로 이야기를 꾸몄고, 누구나 다 아는 동화를 패러디함으로써 작품에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만화영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영상을 중간 중간 삽입하고, 동화에서처럼 옥희를 잠들게 하는 물레를 중요한 소도구로 사용해 장면에 대한 친숙감을 높였다. 무대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 나무들을 배치해 온갖 악성 소문들이 확산되는 공간, 또 옥희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공간으로서의 숲 이미지를 짙게 풍겨낸다. 옥희가 처한 상황이나 악성 댓글이 범람하는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진단을 하는 의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을 가진 인물로서 견자(見者)가 극 진행의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도록 한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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