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리보 '사랑과 우연의 장난'

clint 2015. 11. 6. 22:15

 

 

 

이 작품은 제목이 포함하고 있는 세 단어들, 즉 '사랑'과 '우연' 과 '장난' 이 주제다. 따라서 연극은 사랑이란 감정의 탄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상황. 변장을 통한 장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인물들이 서로 의상을 바꿔 입고 상대역을 맡는 가장놀이(장난)는 극중극의 기법으로 '희극 속의 희극' 인 셈이다.


줄거리
제1막 : 우연의 시험
제1막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인물들이 등장해 변장의 이중 전략을 짠다. 변장은 희극적 효과를 극대화해 주는 방책이다. 그것은 특히 우연의 장면들을 연출해 준다.
주인 집 딸인 실비아와 하녀 리제트가 결혼에 대해 대화한다. 실비아는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한다는 생각에 불쾌해한다. 그녀는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사기꾼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결혼 자체를 싫어한다고 고백한다. 실비아의 아버지 오르공은 돌연 딸이 거부하는 미래의 신랑을 강요하지 않을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실비아가 하녀로 변장하여 약혼자인 도랑트 몰래 그를 관찰하겠다는 제안을 수락한다. 실비아와 리제트가 상대역으로 변장하는 동안, 실비아의 오빠 마리오는 아버지의 전략을 알아차린다. 마리오와 오르공은 도랑트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보고 딸의 약혼자가 자신의 딸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도랑트가 그들의 집을 방문할 때 자신과 하인이 옷을 바꾸어 입고 변장한 채 오겠다는 내용이다. 도랑트 역시 약혼녀 실비아를 관찰하겠다는 속셈이다. 마리오는 이 흥미진진한 놀이를 즐기려고 한다.
하녀로 변장한 실비아는 오빠에게 놀림을 당한다. 하녀로 변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매력이 도랑트를 유혹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인으로 변장한 도랑트는 자신을 부르기뇽이라고 소개한다. 오르공과 마리오는 하인들의 전통에 따라 실비아와 도랑트로 하여금 허물없이 지내도록 한다. 두 사람이 하녀와 하인의 복장으로 있을 테니까 말이다. 처음으로 두 약혼자가 바꿔 입은 옷으로 대면한다. 각자는 서로의 품위 있는 태도를 보고 놀란 듯 정중한 말투로 대화한다. 가짜 도랑트가 나타난다. 실비아는 하인 아를르캥의 상스러운 언행을 목격하고 놀란다. 도랑트는 이 위험천만한 변장놀이가 무산될지 모르는 서툼 때문에 아를르캥을 나무란다. 오르공은 이것을 모르는 체하며, 가짜 사위 아를르캥을 극진히 환대한다.

 

 

 

제2막 : 사랑의 놀라움
이 막은 마리보의 희극에서 주로 그러하듯 가장 길다. 여기서는 우여곡절 끝에 우연히 사랑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여성의 역할이 지배적이다.

리제트는 오르공에게 사태가 뜻밖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린다. 약혼자 도랑트가 자기에게 결혼하자고 제안한다는 것이다. 오르공은 그 상황에 별로 놀라지 않은 채 가짜 하인 부르기뇽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오르공으로부터 격려를 받은 아를르캥은 리제트를 유혹하기로 한다. 익살로 그득하다. 왜냐하면 구혼자가 서투른 귀족흉내를 내며 재치 넘치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도랑트는 의도적으로 아를르캥으로 하여금 달콤한 말을 하도록 하지만, 리제트는 자기 하인의 무례함에 응수하지 않는다. 두 하인과 하녀는 사랑의 듀오를 되찾고, 장차 일어날지 모르는 가능한 사실들에 관계없이 서로에게 충실하기로 약속한다.
실비아는 스스로를 놀라게 한 이 순정적 사랑에 화가 난다. 그녀는 도랑트가 떠나자 리제트를 나무란다. 하지만 리제트는 자신의 완벽한 연기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부르기뇽에 대한 자기 여주인의 의심스런 관용을 빈정댄다. 실비아는 자신의 상황을 분석한다. 남자 하인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긴다는 게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실비아와 도랑트의 두 번째 사랑의 듀오. 설득하는 도랑트와 갈등하는 실비아, 그들은 현재의 신분의 차이를 숨긴다. 마침내 도랑트가 무릎을 꿇고 진실을 밝힌다. 리제트와 아를르캥의 대화가 주인을 잘못 섬긴 부르기뇽을 꾸짖는 오르공과 마리오에 의해 중단된다. 다소 잔혹하지만 우스꽝스런 장면이다. 마리오는 하인을 사랑하는 누이의 호의를 조롱한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이 모욕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르기뇽을 옹호하기가 쉽지 않은 실비아, 그럼에도 그녀는 이 놀이가 중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동요로 가득 찬 실비아가 도랑트를 찾아간다. 그 때 도랑트가 자신의 진짜 신분을 밝히지만, 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실비아는 일부러 도랑트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마리오를 초대한다.

 

 

 

제3막 : 사랑의 승리
아를르캥이 리제트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간청한다. 그의 주인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조건으로 수락한다. 마리오는 누이의 요청으로 도랑트에게 자신이 리제트를 사랑한다고 알려주러 온다. 실비아가 도착했을 때, 그는 도랑트의 대담함에 기분이 상해 있다. 그는 질투심을 가장하고 있다. 세 명의 공범자인 오르공, 마리오, 실비아는 상황을 논의하고, 이 장난을 계속하기로 작정한다. 리제트가 오르공에게 가짜 도랑트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결혼 조건은 같다. 많은 암시 끝에 리제트와 아를르캥은 본래의 하인 신분으로 돌아가고 놀이는 끝난다. 웃음이 터져 나오고 서로 양해를 구한다. 아를르캥의 작은 복수. (가짜) 오르공의 딸이 자기와의 결혼을 승낙했다고 주인 도랑트에게 으스대며 말 한다. 처음 두 젊은이 들 사이의 억울한 사랑, 왜냐하면 도랑트가 사랑싸움에서 패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그를 찾아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자고 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대로 나온다. 실비아는 결국 가면을 벗는다. 그리고 두 커플의 결혼식, 즉 실비아와 도랑트, 아를르캥과 리제트의 결혼식이 준비된다.
이상과 같이 마리보 연극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따라서 극적 행동의 원동력은 주요 인물의 의식과 내면세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데 있다. 심리적 변화의 단계는 직면한 상황이나 대화의 실마리에 따라 조금씩 진행된다.

 

 

 

 

Pierre Carlet de Marivaux
마리보는 18세기 전반기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규율을 거부하고 서서히 자율을 추구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때였다. 루이 14세의 죽음과 루이 15세의 실정으로 절대왕권을 비롯한 교회, 귀족, 앙시앵레짐(구체제)의 모든 권력이 붕괴되었다. 이는 이성에 더 많은 자유를 부여했으며, 합리주의 정신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프랑스의 지식인들 사이에 영국의 로크와 뉴턴의 영향으로 실증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과학이 종교의 권위를 대신하게 되었다. 예술작품 또한 이전의 관습과 형식의 모방에 기초한 장르를 뒤로 하고 새롭고 재치와 우아함이 넘치는 장르가 나타났다. 그리고 여전히 고전주의적 사상과 표현, 그러한 경향의 규칙이 남아 있었지만, 과학적 태도와 계몽 사상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마리보를 비롯한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은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에 매달렸다. 18세기 후반에는 계몽사상의 승리와 낭만주의적 감성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는 격렬한 투쟁의 시기로 디드로, 루소, 뷔퐁 등의 계몽사상가와 혁명세력이 전면에 나서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앞장섰다. 결국 이성은 승리할 것이고, 과거는 미래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마리보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동시대 부르주아들의 삶을 폭로하는 데 있었다. 즉 그 방탕함과 세속적인 쾌락추구, 우아함을 가장한 경박함 등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한 배경은 사회가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상공업의 발달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유해짐에 따라 사치와 치장에 열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보는 사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시대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비평했다. 이는 필수적으로 결혼과 같은 몇 가지 제도의 기능과 귀족의 가치 체계, 그리고 사회의 계급적 조직의 재검토를 불러왔다. 17세기의 대표적인 희극작가로 몰리에르를 꼽는다면, 18세 기에는 단연 마리보가 그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마리보의 연극은 단순한 사건을 매우 흥미 있게 전개시켜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다양한 방식의 우여곡절과 급변은 '사랑의 놀라움' 과 그 감정의 승리를 통쾌하게 보여 준다. '마리보다주 (Marivaudage)' 로 일컫는 재치 있고 절제된 대사는 극적 즐거움을 더해 준다.
마리보 연극의 특성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묘하고, 기교적이고, 화려한 시정은 셰익스피어보다 더 섬세하다는 평을 듣는다. 연극무대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반영하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우아함과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마리보는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마리보는 마음속의 고뇌와 은밀한 기쁨의 근원으로서 '감미로운 사랑' 의 감정을 즐겨 다루었다. 그는 사랑의 감정을 통해 인간의 모든 숨겨진 정서들을 그려내고, 사랑의 일시적인 상태 와 속도, 사랑의 진행 단계 둥 그 뉘앙스들을 표현하는 데 탁월 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아무튼 마리보는 앞선 시대의 희극적 전통에서 해방되어 연애 심리의 세밀한 분석을 통해 새로운 희극 장르를 창조했다. “나는 남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좋든 싫든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을 고수하려는 고집이 있었다.
또한 마리보의 소설은 파리를 무대로 자신의 눈에 비친 사회의 풍속을 묘사하고 있다. 대표작인 '마리안의 일생'(1731)은 미완성이기는하지만, 섬세하고 정확한 심리 분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찍이 스탕달은 "마리보의 '마리안의 일생'을 읽어보라. 그러면 그대의 호언장담하는 병이 치유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 소설의 심리묘사를 극찬한 바 있다.
마리보는 사랑을 몽상하는 여성의 감정 묘사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창조한 여성들인 실비아(Silvia) 아마랑트(Amarante), 앙젤리크(Ang이ique)는 매우 여성다운 성격의 소유자들이며, 연애와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전형적인 여성상들이다. 그녀들은 감성적이고 교태스러우며 순수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만의 이기심도 가지고 있다. 또 그녀들은 부드러운 맵시와 발랄한 재치를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들이다. 마리보는 이 여성들을 통해 누구나 젊은 시절 그랬음직한 보편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라신이 극복하기 힘든 현실의 장벽 앞에서 사랑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연애심리 비극'의 대가라면, 마리보는 일시적인 시련과 장애를 뛰어넘어 사랑에 도달하는 '연애 심리 희극' 의 창시자라고 합 수 있을 것이다. 마리보는 섬세하고 다양한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기성의 것을 배격하고 독창적인 문체를 사용했다. 그 특징은 우아하고, 세련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기교적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글쓰기를 - 마리보다주' 라고 한다. 우리는 그의 극에서 세련된 말투로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미묘하게 밀고 당기는 남녀를 만날 수 있다. 이 작가에게 사랑은 신비하거나 공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작가나 사상가들이 창조해 낸 개념에 그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본다. 가령 '사드적(scidique)* '마르크스적(marxiste)' '카프카적(kafkaien)' 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 개념은 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즉 그 수식어들은 이미 작가들이 창조한 개념을 넘어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이 현상은 마리보 와 그의 이름에서 파생된 용어 '부자연스럽게 언동을 꾸미다 (marivauder)'나 '부자연스럽게 꾸민 말투(marivoudage)'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표현들은 마리보의 창조적 정신에서 탄생 되었으나 일상적인 어휘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마리보다주란 말은 마리보가 살아있을 때 생겨났다. 그것은 그를 칭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를 빈정대거나 비하하기 위한 말인 것이다. 실제로 동시대의 비평은 마리보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꾸며진 문체' 또는 기교적이고 철학적인 몽상' 이라고 단죄되었다. 가령 라아르프는 마리보다주를 '형이상학과 저속한 표현, 그리고 지나치게 기교적인 상투어와 대중적인 속담사이의 아주 이상한 혼합' 으로 간주했다. 마리보의 가장 적대적인 라이벌이었던 볼테르는 그가 “거미줄에 걸린 파리 알의 무게를 재려고 한다.”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캉디드(Candide)'의 볼테르 대신 '사랑과 우연의 장난'의 극작가가 선출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적대감속에서 이루어진 것일 터이다.
19세기에도 생트뵈브 같은 비평가는 '냉랭한 농담'과' 귀엽고 쾌활하게 유식한 척하는 태도' 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보다주를 세련된 재치와 기발한 농담으로 이루어진 사랑의 대화 속에만 국한시키려고 한다. 《라루스사전)조차 그 말의 뜻을 '정중하고 고상하게 친절을 베 는 것' 으로 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마리보다주의 의미가 그것이 나타난 때인 1760년에 비해 크게 확장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 표현은 처음의 부정적 의미보다 보편적 의미로써 도덕적이거나 심리적으로 은밀하게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는 사람의 섬세함이나 재치를 말할 때 사용된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왕'  (1) 2015.11.06
카렐 차페크 '알유알'  (1) 2015.11.06
패트릭 마버 '딜러스 초이스'  (1) 2015.11.06
에드워드 본드 '빙고'  (1) 2015.11.06
알렉산드로 블록 '발라간칙'  (1)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