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네스북 최장 생존기록인 125년을 산 주인공 박덕배. 죽음을 목전에 둔 덕배의 이야기는 1910년 경술국치부터 시작된다. 서자 출신 덕배, 양반 자중, 그 집의 노비였던 민국. 신분은 다르지만, 친형제보다 더 절친했던 세 사람. 하지만 조선이 멸망하면서 이들은 각기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자중은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며 덕배에게 아내와 자식을 부탁한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민국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현장에서 일본인 행세를 하고 살아남아 훗날 일본 경찰이 된다. 덕배는 의열단이 되겠다고 집을 나간 의붓동생을 찾기 위해, 위안부로 끌려갈 처지에 있는 딸을 지키기 위해, 각기 남과 북을 지지하는 자중의 쌍둥이 아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동분서주하며 달려드는 곳은 모두 역사의 현장이다. 독립선언문 낭독과 3·1 운동, 윤봉길 의사 의거, 홋카이도 비바이 탄광 매몰사건, 우카시마 호 폭침사건, 3·8선 분단. 자중의 쌍둥이 아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한국전쟁. 자중의 손자들이 북한 조종사로, 남한 병사로 참전해 싸우는 베트남 전쟁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저승사자는 가슴이 먹먹하여 죽으려는 덕배를 만류한다.

<세기의 사나이>는 역사를 다루었던 기존의 연극이 지향하던 사실성에서 과감히 벗어난 작품이다. 만화적 상상력과 탄탄한 서사의 결합.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만화적 기법을 활용한 순발력 있는 무대전환이 필요하다. 영웅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소시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실제로는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임을 자각하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감히 다가서기 힘들만큼 숭고한 영웅들의 삶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수동적인 관찰자에만 머문다. 하지만 박덕배는 영웅이 아니다. 우리와 너무도 닮은 평범한 소시민일 따름이다. 영웅이 바라보는 역사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로 바뀔 때, 우리는 수동적인 관찰자에서 비로소 능동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세기의 사나이>는 역사적 해석과 평가보다 인물과 역사적 사실, 상황의 만남으로 인해 벌어지는 한 인간의 실존을 더욱 중요하게 다룬다. 동시에 이 작품은 한 소시민의 삶을 통해 역사라고 불리는 공공의 기억을 전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역사는 전달될 때만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박덕배의 삶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잊고 있었던 기억을 전달할 것이고, 그 기억은 우리가 역사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영화 ‘포레스트검프’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역사의 유명인사들이 단역으로 나오고 주인공인 덕배는 그 속에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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