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제이 바이다, 마체이 카르핀스키 재구성 '나스타샤 필립포브나'

clint 2019. 7. 8. 18:08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백치를 모티브로 한 배우의 즉흥극을 위한 재료로 이 작품 나스타샤 필리포브나1977년 안제이 바이다 연출로 폴란드 크리코프의 old Theatre서 공연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두 남자 배우를 위한 즉흥극으로 각색한 것으로 중앙에 죽은 나스타샤 필립포브나의 드레스를 놓고 공연이 진행되며 보통 무슈킨 역을 맡은 배우기 그 의상을 이용하여 나스타샤 역을 힘께 한다.

 

 

 

 

백치는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 중 죄와 벌을 잇는 두 번째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 중에서 백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했으며, 이 대작을 1867년과 1868년의 17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백치에서 도스토옙스키는 긍정적으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을 그려 내고자 했다. 한 편지에서 작가 스스로도 인정하듯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었으므로, 매력적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준비할 수가 없었던테마였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인 성경 속 예수가 그의 시대에 가장 흉포한 죄인으로 몰렸던 것처럼(십자가형은 당시 가장 죄질이 나쁜 죄수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름다운 인간도 그가 던져진 페테르부르크라는 세계 속에서 백치로 여겨진다. 그의 어린아이 같음, 진실하고 정직함, 성실함, 희생적인 사랑, 이 모든 것들이 그가 마주치는 페테르부르크 거주자들에게는 당혹스러움이고 충격이었다. 무슈킨은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물든 이 황금 송아지의 왕국을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린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본다. 모든 이들의 합의하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짓과 그럴싸한 허위의 포장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본래의 추한 모습이 무슈킨에 의해 드러난다.

백치는 치정, 살인, , 사랑과 욕망과 질투의 삼각관계를 그린 재미난 소설로서도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인 소재를 신과 인간, 파멸과 구원 등의 철학적 사상과 잘 버무려 내어 시공을 뛰어넘는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데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함이 존재한다. 소설로서도 성공한 이 작품은 긍정적으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을 구현해 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에서도 역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미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명제의 성공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완벽한 육체적 미의 소유자인 나스타샤 필립포브나와 완벽한 정신적 미의 소유자인 무슈킨 공작, 이 두 주인공의 파멸로써 소설이 끝을 맺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결말은 오히려 명제의 성공보다도 플롯에서나 테마를 위해서나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백치의 독자라면 대체 누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있겠는가! 하얀 시트 아래에 차가운 주검으로 누워 있는 절세미인 나스타샤 필리포브나와 그녀의 시체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광기 어린 로고진, 그리고 완전한 백치의 상태로 되돌아간 무슈킨 공작! 세계는 구원받을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버렸다. 그 세계 속에서 구원의 빛인 미마저도 파멸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재림한 예수를 어찌할지 모르는 이반 카라마조프의 [대심문관] 속의 세계를 예고한다. 19세기 독자에게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독자에게도 해당하는 무서운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