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바다’에 비유되리만큼 그 깊이와 넓이를 잴 수 없는 거장 위고는 1802년 태어나 1885년 죽을 때까지 시, 소설, 희곡 등에서 엄청난 양의 작업을 쏟아내었다. 비록 라마르틴느처럼 감수성이 강하지도 않았고 비니만큼 사상가도 아니었으나 그의 손 안에서는 일상 언어마저도 눈부시게 새롭게 구사됨으로써, 그리고 사방팔방의 더듬이를 뻗친 엄청난 작업규모, 압도적인 창작력, 당대 사회문제와 정치에의 깊은 참여 등을 통하여 그는 가장 19세기를 잘 대변하는 인물(시대의 반향)이자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에 속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이야기한다”는 권리야말로 현대성의 표현이라고 보았으며 그의 이런 생각은 작품의 형식과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즉 그는 극에서도 고전극의 협소한 틀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던 바, 1827년 연극작품 <크롬웰>을 발표하고 거기에 낭만주의 선언서라 일컬어지는 장문의 서문을 붙였는데 그것은 고전주의 연극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문학의 주장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 연극은 두 가지 영향을 받아 이룩된다. 하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친 영국과 독일을 주로 하는 외국희곡의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1800년경부터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멜로드라마’의 영향이다. 근대역사를 소재로 삼는다든가 지방색을 존중한다든가, 기교적인 관례를 배제하고, 또한 절대시되어 오던 고전규칙을 거부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과감한 태도는 외국의 연극에서 나온 것이고,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를 혼용하고, 황당무계한 사건이라든가 파란과 곡절을 중첩시켜서 얘기를 복잡하고 재미있게 엮는 따위의 수법은 멜로드라마에서 얻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① 운문을 계속 존중하고, ② 연극을 통해서 과거를 인상적으로 환기하고, ③ 철학적인 요소를 가미시킴으로서, 멜로드라마와 동일시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이와 같이 새로운 희곡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낭만주의 희곡이 타도해야 할 대상은 고전주의 희곡이었다.

<에르나니>는 1829년 8월 29일 집필되기 시작하여 9월 25일 완성되었다. 첫 공연은 1830년 2월 25일, 이 날짜는 연극계의 수구파 혹은 신고전주의 진영과 젊은 낭만파 사이의 향후 45일간 계속될 이른바 ‘에르나니 투쟁’을 금긋는 날이 된다. 양진영의 고함과 휘파람, 박수와 갈채가 엇갈린 가운데 막을 올린<에르나니>는 끝내 낭만파의 승리와 새로운 예술의 승리를 확고히 한다.
흔히 고전극의 틀이 그러하듯 5막으로 되었으나 구태의연한 비극으로 볼 수 없는 이 작품, 비극성과 벌레스크(burlesque)가 얽혀 있어 소위 장르의 구별을 무시하는 이 운문 극을 통해 프랑스의 낭만 극은 탄생한 것이다. 고전극이 그리스․라틴 적 주제를 차용하고 있는데 비하여 위고는 이 작품에서 16세기 카를로스 5세치하의 에스파냐의 주제를 다룬다. 뿐만 아니라 고전극의 장소의 일치를 거부하며 이 극에서 장소는 사라고스, 아라곤의 산중, 아라샤펠(Aix-la-Chapelle)을 오간다. 시간의 일치도 거부되어서 여러 날에 걸친 시간대 속에서 복잡다단한 행위가 전개 되는 바 정치적 문제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들이 뒤섞여 있다. 이 작품이 구현하는 낭만주의는 무엇보다도 작품을 관통하는 강한 힘, 호흡에 있다. 위고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젊은 테오필 고티에가 “매순간 놀라운 시구가 독수리 날개짓처럼 크게 날개 치며 관객들을 서정시의 더없이 높은 창궁을 향해 솟아오르게 한다.” 라든가 “우리 세대에 있어 <에르나니>는 코르네이유 동시대인들에게 있어서 <르 시드>와 같은 것이었다. 젊고 용감하고 사랑을 하며 시적인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희극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비록 비극적 국면으로 끝나지만 이 작품은 대담한 어투, 문체, 작시법 - 한 마디로 문학에 있어서의 자유주의로 당대 프랑스 극작계에 신선한 새 청춘의 기상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관대하면서도 기사도적 정신으로 넘친 로마네스크 한 특징을 가진 르 시드적 혈통을 가진 주인공 에르나니가 당대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크게 매료하였던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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