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따끄나의 아가씨'

clint 2019. 7. 6. 08:05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한 개인의 가족과 그의 노년, 그리고 자존심 및 운명을 이야기한 요사의 대표작이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벨리사리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따끄나의 아가씨라 불리는 '마마에'의 굴곡 된 삶을 재조명한다.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 및 현재 자신의 모습 등을 시공을 뛰어넘는 극중극의 형태로 펼쳐나간다. 결국 마마에의 존재는 벨리사리오의 창조적 힘의 원천이었음이 밝혀지고, 작가는 거의 운명의 차원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하다. 

 

 

 

 

 

따끄나(Tacna)는 지명이며, 따끄나의 아가씨는 마마에이기도 하고, 작중에서는 엘비라라 불리기도 한다. 그녀의 삼촌은 메넬라오이고, 숙모가 아멜리아이다. 그들은 엘비라의 부모가 죽은 후 그녀를 키워왔다. 호아낀은 그녀가 젊었을 때 사랑했던 옛 애인으로 페루에 들어온 칠레장교였다. 까를로따 부인은 남편과 세 아이를 두고 있으나, 호아낀의 딴 정부 (情婦) 이기도 하다 그녀는 30살정도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아하다. 한편 할아버지 빼드로가 순간적인 욕정으로 불륜을 저지른 상대가 인디언 여인이며 마마에에게는 그녀의 이미지가 까를로따 부인과 혼동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벨리사리오이다. 그는 작가이기도 한데 1950년 당시를 배경으로 할 때, 그의 어머니 아멜리아는 40살아며, 마마에는 100정도다 한편 어머니 아멜리아에게는 오빠 두 명이 있어 아구스띤은 50살이고, 세사르는 약간 아랫니다. 결국 이들 둘은 작가 벨리사리오의 외삼촌이 되며, 벨리사리오가 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작품 초반에 호아낀, 마마에가 연애할 때 함께 과수원 산보를 했다는 까르멘은 마마에의 사촌동생이며, 벨리사리오의 외할머니로 그의 남편이자 벨리사리오의 외할아버지가 빼드로이다. 한편 마마에는 사촌 동생 까르멘과 함께 살았었는데, 따라서 따끄나의 삼촌과 숙모는 결국 까르멘의 부모님이 된다. 아멜리아는 두 명인데, 먼저 까르멘의 어머니가 그 이름을 가졌으며, 그녀의 손녀이자 벨리사리오의 어머니가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다 결국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마마에는 벨리사리오의 외할머니 사촌언니가 된다. 먼 관계이지만 주관적, 객관적 묘사가 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랴마에의 손으로 키워졌으며, 그녀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작가이자 벨리사리오는 원래 법을 공부했으며, 그것을 외삼촌들이 도와주었으나 그는 결국 이야기꾼, 즉 소설가가 되고 만다. 그는 바로 작가 바르가스 요사이기도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3가지의 차원으로 구성된다. 즉 시간적으로 3-4 가지의 다른 배경을 이룬다. 물론 일어나는 장소는 한 곳에서 이뤄질지라도 글을 쓰는 벨리사리오가 현존하는 1980년대가 있는가 하면, 그의 할머니들이 100살 정도의 나이를 유지한 1950년대가 있다. 거기에는 따라서 할머니 까르멘과 할아버지 빼드로 및 마마에가 출현하지만, 80년대에는 벨리사리오 만이 있다. 한편 50년대에는 그 노인들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벨리사리오의 어머니 아멜리아도 나오게 된다. 그리고 작품 초반에 이뤄지듯 마마에와 호아낀의 사랑 이야기는 약 18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정도에 해당되는 시기이므로 사랑 형태는 물론이고 사고의 보수성을 감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간적인 이중성으로 작품은 극중극의 형태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동일한 장소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동일한 인물들이 행했던 모습이므로 나열식의 병렬적 극중극보다는 수직적이고 나선적인 심층구조를 취하고 있다. 동시대의 사건이 연관되어 있지 않고 다른 시대의 사건들이 거의 통일한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작품의 분석에는 따라서 갑자기 시대가 변하는 바에 주의해야 하며, 그에 따른 등장인물의 관계도 잘 감지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 대화 안에서도 벨리사리오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 마마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향해 하는 말, 그리고 신부 역할을 할 때의 말이 달라야 할 것이다 마마에의 할아버지 빼드로에 대한 어투의 변화, 갑자기 벨리사리오에게 말하다가도 신부에게 말하는 순간에서의 어투 변화 역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막과 장의 구분 없이 거의 동시에 젊은 얼굴과 늙었을 때의 얼굴이 변하게 되므로 실제 공연에서는 가면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호아낀은 군인이므로 또박또박하고 딱딱하며 틀에 박힌 어투가 요구되기도 한다.

 

 

 

 

벨리사리오가 처한 상황은 다름 아닌 파탄과 좌절이다. 그가 훌륭한 변호사가 돼야한다는 건 대를 이어온 가족의 희망이다 그의 선조들은 부유하게 살았다 하인들이 있었으며, 갖고 있는 재산도 너무나 충분했다 적어도 벨리사리오에 오기까지 그 집안은 그랬다. 크게 성했다가 기운 집안에 있어서 그것을 다시 구원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당연하며, 이미 벨리사리오의 외삼촌인 아구스띤이나 세사르에게 걸었던 기대는 무산되었으며, 벨리사리오에게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벨리사리오 또한 법에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전혀 인연이 없으니, 그것은 개인적인 좌절이자 가족의 파탄 상황이 되고 만다. 즉 변호사도 외교관도 되지 못했다는 외형적 사실은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왔으며, 가족의 오랜 숙원에 부흥하지 못했으니 양쪽에 모두 파탄이라 표현될 수 있다. 절망의 상태에서 따끄나의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에게 쓴다는 행위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아니 삶처럼 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 직업이라기보다는 본질적 행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따끄나의 아가씨에 대해 글로 옮겨놓지만 그것 역시 쉽게 되지는 않는다. 쓰고자 하는 의도는 글로써 표현되면서 원하는 바를 묘사할 수 없게 된다. 여러 번 글을 써봤지만 글쓰는 행위는 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고뇌 속에 마지막까지 이 사랑 이야기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벨리사리오는 가족들이 원했던 길에서 멀어져 좌절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 이야기꾼이 되어있다는 발견이다. 외형과 타인의 기대에 눌려 숨겨 있던 자신만의 본질적 행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에 흐르는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다. 어느 무도회에 나타나 따끄나의 아가씨와 춤을 추다 몰매를 맞았던 흑인의 시적 영감과 그것을 전해주었던 마마에에게서 받은 많은 분량의 이야기가 창조적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흑인은 사랑에 빠졌다가 좌절한 인물이고, 마마에는 평생을 홀로 살아온 그야말로 비참한 영혼들이다. 그러나 벨리사리오는 실패한 이들의 영향으로 글을 쓰면서 좌절을 딛는 새로운 길을 찾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벨리사리오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며, 지금 글을 쓰면서 존재하는 원인이 된다. 이전까지의 삶은 변호사가 되려는 과정, 우리의 상황으로 쉽게 말하면 고시를 준비하는 삶이었다. 그것은 가족의 외적인 희망을 가득 안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생활이었다. 벨리사리오도 그 상황에 젖어 학비와 용돈을 받아가지고 산다. 가족은 그가 법을 공부해 변호사가 될 것이라는 희망 속에 지원한 것이지만, 그는 순간의 안위만을 위해 그런 바램을 이용한 삶이 되고 말았으니, 형편이 어려웠던 가족 상황과는 먼 선택이다 그는 이미 돈벌이를 해야 했었다. 아니 다른 확고한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과거 벨리사리오는 그렇게 스스로를 묶어놨으며 정신적인 성장 역시 가족의 희망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가족의 희망일 뿐 자신은 다른 운명이란 걸 알게 된다. 내적성장에 대한 추구였다. 그러면서 따끄나의 아가씨가 쓰여진다. 그는 이제 좌절이 아닌 구원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 구원의 길을 닦아놓은 이가 바로 마마에이다 그래서 마마에는 그의 픽션 속에 살아 있다. 결혼도 못하고 외롭게 살았으나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그에게 제공하며 존재한다. 요사의 자의식적 자기반성은 이렇게 현실 속의 우리에게 파급되면서 그의 문제는 우리 공동의 문제로 화하게 된다. 작가의 아이덴터티에 대한 고뇌 찬 반영은 결국 장소나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어 이 작품을 대하는 특정화되지 않은 수용자 관객에게 에 대한 깊은 반성과 이면 통찰을 가능케 하는 거울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 행위는 진행형으로 남는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났다. 1952년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를 중퇴한 후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며 문학 경력을 쌓아갔다. 리마의 산마르코스 대학에서 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시와 개들'을 발표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고, 1966년 출간한 '녹색의 집'으로 페루 국가 소설상, 스페인 비평상,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세계 각국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유럽과 미주를 누비면서도 소설, 에세이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고,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는데, 1990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해 낙선했다. 1994년 스페인어 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고, 옥스퍼드, 예일, 하버드 등 세계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미국의 '포린 폴리시'와 영국의 '프로스펙스'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에 선정된 바르가스 요사는 매년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르렀다. 주요 소설로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새엄마 찬양', '염소의 축제' 등이 있고, '혁명의 문학과 문학의 혁명', '사르트르와 카뮈', 대통령 선거전을 회고하는 자서전 '물속의 물고기' 등 수많은 에세이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