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7년부터 반 세기동안 영국을 통치한 에드워드3세는 아버지 에드워드2세가 폐위되고 살해당하자 14세에 왕위에 오른다. 그의 어머니Isabel은 프랑스의 왕Philippe 4세의 딸이다. 에드워드왕은 첫 아들인 Edward왕자가 스코틀랜드의 폭동을 진압하고 전쟁에서 대 승리를 거두자 어머니 쪽의 프랑스 혈통을 주장하며 프랑스 왕으로 앉히려고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여자의 혈통으로 왕위를 계승 할 수 없다는 살리 법(Salic Law)을 내세우며 거절한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전쟁으로 해결 할 수밖에 없다고 답하고 Derby 백작에게 유럽에서 영국 동맹국을 찾아보게 하고, 큰 아들 에드워드 왕자와 신하에게 군대를 파견하여 프랑스와 싸우라고 명령한다. 한편, 스코틀랜드의 David왕이 프랑스의 영국령을 침공하여 Salisbury 여 백작을 포위했다는 말이 런던에 전해진다. 급히 에드워드 왕이 록스벌그 성에 도착하자 Salisbury 여 백작에게 수작을 걸던 David왕은 급히 북으로 도망친다. Salisbury는David를 쫓으려는 Edward왕을 말리며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권한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곳에 머문다. 왕은 점점 더 여백작에게 매력을 느낀다. 왕은 비서에게 사랑의 시를 써 달라고 부탁하나 그 시가 마음에 들지 않자 직접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여 백작은 왕에게는 사랑하는 부인이 있고 자기에게는 남편이 있으니 몸만은 허락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직도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왕은 백작의 아버지인 Warwick백작을 불러 그의 딸을 왕의 여인으로 만들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백작은 왕의 명령과 딸의 결정을 놓고 고민하다 딸에게 정절보다 목숨이 더 귀하지 않는 가고 달랜다. 딸이 사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왕을 나무라며 화를 내자 아버지는 딸을 칭찬하며 마음을 놓는다. 이때 에드워드 왕자와 Derby백작, Audley고문이 프랑스를 정복할 준비가 끝났다고 왕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왕은 전혀 관심이 없다. 이에 여 백작이 왕 앞에 나서서 왕이 그녀에게 한 구혼의 답이라며 두 개의 칼 중 하나는 왕에게 드리고 하나는 자신의 심장에 갖다 대며 만일 왕이 자기에 대한 연민을 못 버린다면 자신이 먼저 자결하겠다고 분명히 말한다. 이에 놀란 왕은 그녀를 크게 칭찬한 후, 아들과 신하들의 보고에 경청한다. 백년전쟁은 1339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라인 강 하구에 정착한 프랑스 함대를 영국함대가 공격한 사소한 다툼에서 비롯된 두 나라의 싸움이다. 이때 항상 검은색의 갑옷을 입어서 흑태자로 불리는 왕의 맏아들인 에드워드 왕자가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당시 유명한 프랑스 기사 군을 격파하고 항복시킨다. 왕은 이 자랑스러운 왕자를 프랑스 왕위에 앉히려는 계산 까지 하면서 두 나라관계는 악화된다. 그 뒤 양국에 흑사병이 유행한 데다 재정사정이 악화되어 한때 전쟁이 중단되기도 하나 흑 태자가 다시 남 프랑스를 침략하여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하고 영국군이 일방적으로 승리한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전쟁의 참화를 입은 데다 영국군의 약탈로 농민의 피폐가 격심해진다. 영국에서도 흑사병의 만연과 거듭되는 전쟁 비용으로 국가 재정이 약해지고 영국 의회는 왕을 질책하며 의회 힘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단속적으로 계속되던 싸움은 여러 차례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116년간 계속된다. Edward 3세가 죽고 왕권은 리처드 2세에게 넘어 간다.


번역자의 해설
최근에 희곡 작품 두 편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세계 학계에서 공인을 받게 되었다. 이들 두 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은 『두 귀족 친척』과 『에드워드 3세』이다. 필자는 이들 두 편의 작품들도 추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 두 작품의 번역과 간행은 처음이루어지는 일이라 심리적인 부담과 책임도 크지만 그 나름의 의의가 크다고 자부하고 있다. 차제에 셰익스피어 전집 42권을 완역 출간한다는 큰 숙제도 마감하게 되어 필자는 한편으로 홀가분하면서도 깊고 새로운 감회를 느낀다.
『에드워드 3세』의 경우에도 저자에 대한 이설이 있었던 것도 있다. 『두 귀족 친척』의 경우는 셰익스피어와 플레처의 공동작이라는데 학계에서의 논의가 귀착되었으나, 『에드워드 3세』의 경우는 다르다. 작자가 미심한 상태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1595년 12월 1일에 커스버트 버비에 의하여 서적출판업조합에 등록되었고, 1596년 초판이 (1599년에 재판으로 제2판이) 출판되었다. 커스버트 버비는 1598년에 『사랑의 헛수고』와 1596년과 1599년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출판한 바 있으며 동시에 『에드워드 3세』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세 번 출판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이 무렵 출판한 저자명이 기재가 안됐다고 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는 어렵다. 1598년 이전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고 해도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기재된 출판물은 없었다. 1597년에 출판된 『헨리 6세 2부』와 『헨리6세 3부』, 『리처드 2세』, 『리처드 3세』, 『말괄량이 길들이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각 초본에도 셰익스피어의 이름은 기재된 바 없었다. 따라서 초판에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았다고 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최초로 셰익스피어 전집인 제 1 ·2 폴리와(1623년)에 수록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은 주요한 사실로 취급되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인정된 『에드워드 3세』나 『두 귀족 친척』도 거기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사실도 특기할 만하나 이것을 근거로 확실하게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에드워드 3세』의 경우 작가로서는 크리스터퍼 말로 설도 있었고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각설을 하면, (1) 로버트 그린, 존 바르 등과의 합작설, (2) 셰익스피어의 가필이나 개정설, (3) 셰익스피어의 단독 작. (4) 마이켈 드레이톤, 로버트 윌슨, 토마스 로지 등이 극작가리는 설 등이 있으며, 근자에 와서는 작품 속에 셰익스피어의 특징인 필치가 있느냐하는 내부적 증명의 기틀을 따지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의 뚜렷한 유사성, 사용단어의 유사성으로 보아서 『에드워드 3세』의 작가로서 셰익스피어를 공인하는 경향이며 우선 리버사이드 판 셰익스피어 전집 제2판(1997)과 캠브리지 대학 출판사에서 간행된 「뉴 캠브리지 셰익스피어」의 한 책으로서 출판(1998)되었으며,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2002년에 『에드워드 3세』를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공연하게 되었다는 등으로 필자도 일단 『에드워드 3세』를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서 전집내용에 포함하기로 하였다.

『에드워드 3세』가 1595년에 출판등록된 것으로 보아서 창작은 그 이전으로 추정되나, 체임버즈는 1594∼95년으로, 어떤 자는 1589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New Cambridge의 편집인인 지오르지오 벨키오리(Giorgio Melchiori)는 1590→94년으로 정하고 있으며, 펜브로크 백작 극단이 공연하였다는 가정을 믿는다면 1592∼-9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저술의 근거는 셰익스피어가 흔히 역사에 관한 많은 저술에서 참고로 하였듯이 『홀린셰드의 연대기』와 후르와싸르의 『연대기』의 영역판을 근거로 하였으며, 윌리엄 페인터의 『쾌락의 궁정』(The Palace of Pleasure,1575)과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대한 승리에 관한 소책자를 참고로 하였을 것이다.
『에드워드 3세』의 1596년 초판본에는 “런던의 마을 부근에서 지주 공연되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약 3세기 동안 직업극단 공연이 없었다. 최초로 기록이 되어있는 공연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무대협회의 창립자인 배우이자 연출가인 윌리엄 포웰의 노력으로 제2막만을 『왕과 백작부인』이라는 제목의 1막 극으로 런던의 리틀 시어터에서 1911년 3월 6일에 공연한 것이다. 그 후 약 50년 만에 무대공연은 아니나, 1963년 11월 28일에 BBC가 이 작품을 방송하였는데 102분이라는 방송시간에 맞춰서 공연되었다. 그때 각색 연출은 Raymond Raikes, 왕- 역은 Stephen Murray, Googie Withers가 백작부인 역을 밑았었다. 1980년대에는 미국 셰익스피어 협회가 14개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Los Angeles의 Globe Playhouse에서 공연하였다 셰익스피어의 의심스러운 작품이라고 하여 『두 귀족 친척』과 1986년 7월에는 『 에드워드 3세』가 Dick Dotterer 연출로 공연된 바 있다. 최초의 직업적인 공연이 Tonu Robertson 연출로 1987년 6월에 Mold의 Theatre Owyd 극단에 의해 세일즈, 7월에는 캠브리지, 8월에는 시칠리아 섬 북동부의 Taormina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심포지엄에서 공연이 이어졌다. 1997년 11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셰익스피어 축제에서 Kent Nicholson이 연출한 공연이 있었고 1998년 12월에는 그 공연에 이어서 캘리포니아 대학의 셰익스피어 Forum에서 이 작품의 공연 낭독회가 있었다.
2001년 10월에는 캘리포니아 주 카멜의 Golden Poe Playhouse에서 Pacific Repertory Theatre가 스티븐 모아라 연출로 직업극단으로서의 공연이 있었다. 2002년부터도 매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다.
『에드워드 3세』는 『두 귀족 친척』도 마찬가지지만 셰익스피어의 의심스러운 작품으로 인정되기 시작된 후에 공연이 잇따랐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공인되는 마당에서 그 공연 횟수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을 것은 거의 틀림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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