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스트린드베리 '다마스쿠스를 향하여'

clint 2019. 7. 1. 20:26

 

 

 

<다마스쿠스를 향하여>는 스트린드베리의 정신적 혼돈과 방황의 시기였던 지옥기 동안의 종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희곡이다. 이 작품은 1898년부터 1901년에 걸쳐 쓰여진 3부작이다. 스트린드베리는 이 작품에서 정신적 자각을 이루는 무명인의 순례과정을 다룬다. 이 순례의 과정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되며 무명인 자신이 갈구하는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오랫동안 신에게 저항했지만 결국은 기독교에 귀의하는 스트린드베리 자신의 자아 적, 종교적 성찰 과정과 일치한다. <아버지><줄리 아씨>에서 다루었던 삶의 투쟁과 대립은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에 와서 정반합을 통한 종교적 승화 과정이라는 주제로 확장된다. 다시 말하면, 지옥기 이전 작품의 주제가 양성간의 투쟁과 같은 현실 속 갈등에 머물렀다면, 지옥기 이후의 첫 작품인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의 주제는 정신적 구원을 위한 순례 과정과 인생의 본질을 다루는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그 주제가 확장되는 것이다. 무명인의 순례를 통한 자아 성찰과정은 곧 이 작품의 주제와 연관된다. 성찰과정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대면사유의 단계이다. 무명인은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들과 상처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질문하며, 회의함으로써 치유된다. 고통을 대면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무명인은 그동안 자신을 결박했던 고통의 쇠사슬로부터 조금씩 탈출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고, 자기 말을 하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에서 타인이란 무명인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사랑했던 여인들, 어머니, 아버지, 친구, 자식, 신부와 수녀, 유혹자와 거지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어둠에서 빛을 향한 성찰의 길에 한 발자국 들어선다. 특히 두 번째 부인 잉게보르크와 또 다시 만났을 때 그 동안 가려져 있던 그녀의 실체가 오롯이 보이면서 그녀의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명인은 잉게보르크와 다시 한 번 진정한 사랑을 해보려하지만 곧 권태로움과 원망의 감정이 생긴다. 또한 자의식의 과잉이라는 함정에 빠져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 무명인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연민을 언어로 무장하여 과장한다.

 

 

 

 

두 번째는 내부의 점검과 성찰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 고통스러울 때마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자아와 더 깊숙이 접촉하는 단계이다. 언어로 무장된 과도한 자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 단계를 거치면서 그는 과거에 스쳤던 여인들과의 사랑이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는 진정한 이별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이별은 거짓된 관계와 기만적인 자기 자신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그는 이별하는 여인을 증오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긴 여행길에 어둠속에서 날 이끌어준 작은 손이 되어 주었다고 인정한다. 즉 여인은 한 때 그를 속박하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그를 해방시켜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무명인은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죄와 고통의 원인은 알 수 없으며, 그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지막 성찰의 단계는 대화와 화해타협과 조화의 단계이다. 죄의 실체를 깨닫게 된 무명인은 빛의 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정거장인 수도원에 들어가기 직전, 첫 번째 부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죄책감이나 원망에 흔들리거나 고통 받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직시하며 첫 번째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무명인은 자기만의 세계에서부터 밖을 향해 나아간다. 즉 독백의 세계에서 대화의 세계로 나오게 된 것이다. 어둠의 동굴 속에서 밝은 빛의 세계로 나오게 된 무명인은 인간 고통의 불합리함에 대해 알고자 한다. 즉 이 세계는 거짓과 모순으로 가득 차있으며, 이런 세계에서 자신의 삶은 너무나 부당했고, 그래서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이에 대해 수도원장과 신부들은 그를 위해 자신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인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느 한 사람도 모순되지 않는 삶을 산 사람은 없다고 밝힌다. 이 이야기를 들은 무명인은 고통과 모순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멜히오르 신부는 인간의 고통과 세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소개한다. 신부가 이야기하는 화해와 조화의 사유는 스트린드베리 자신이 지옥 기 동안의 종교적 경험에서부터 비롯된 성찰과 자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느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그르다는 식의 사유 방식은 반대되는 것을 밀어내버린다. 하지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존중함으로써 화합을 이룬다. 이러한 정신적 경지에 이르러야만 삶의 고통까지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과는 반대되는 사람, 사건, 견해를 만나게 되더라도 그것을 존중하고 수용할 줄 안다면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인은 이제 삶의 모순에 대해 괴로워하지도, 회의하지도 않으며, 질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둠의 세계 이전에 빛의 세계가 있었음을 떠올리며 평화를 찾는다.

 

 

 

 

이같이 스트린드베리는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에서 한 인간의 종교적 성찰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자, 거세된 남자, 아이, 야만인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성을 인정하고 포용함을 의미한다. 이는 남과 여가 더 이상 대립의 관계가 아닌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관계로 변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의 시작이다.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고통에 대한 긍정적 체념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인식의 변화는 지옥기 동안의 자기 성찰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종교적 보편성을 띠며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의 등장인물들은 유형화된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물들은 개성을 상실하였으며 특수한 개인이 아닌 사회의 집단을 대표한다. 이것은 무대 위의 인물들을 괴이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또한 등장인물은 분열되어 있다. 이 분열의 형태는 두려움, 예감, 죄의식, 소망 등 주인공의 심층 속에 존재하는 감정들이 무대의 인물들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분열은 곧 자기 반영성과도 연결된다. ‘무명인은 서사적 특성을 지닌 자아 반영적 인물이므로 극중에서 독백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이러한 무명인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은 그의 잠재의식 속에서 나온 투영물이자 제2의 자아이다. ‘무명인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깨닫고, 발전된 인물로 나아가는 자아성찰 적 특성을 지닌다.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의 대표적인 극작 테크닉은 정거장식 기법이다. 이 기법은 표현주의 드라마의 한 형식으로 스트린드베리는 이 기법을 통해 인물의 성찰 과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3년간의 지옥기 동안 모호하긴 하나 심오한 종교적 신비주의를 경험한 스트린드베리가 1897년에 창조성을 다시 회복하여 쓴 이 작품은 10년전 <줄리 아씨>가 기존의 자연주의 드라마와는 달리 획기적인 극작술을 선보였던 것만큼이나 그 당시로선 극작테크닉 면에서 실험적인 작품이라 평가받았다. 표현주의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의 정신 작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작가가 본 외부의 모습을 작가의 마음속에서 재구성하여 표현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분위기는 악몽과도 같고, 이러한 분위기는 왜곡된 조명과 무대장치에 의해 표현된다. 무대장치 또한 <아버지><줄리 아씨>에서 보였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극의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전보다 더욱 철저하게 단순화된 이미지를 창조한다. 극의 플롯 또한 전작들에서 보여졌던 논리적인 극적 갈등 대신에 항상 작가 자신의 대변자인 몽상가에 의한 긴 독백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서 기병대장과 로라 사이에서 동등한 대립의 대화와 함께 극의 구성이 진행되었다면,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에서는 대화의 전달적 성격이 상실되어 오로지 몽상가의 주관적 생각과 독백으로만 극이 진행된다. 결론적으로 <다마스쿠스를 향하여>는 작가의 내적 자아를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 외부세계와 사물에 대해 변형을 가하며, 장면의 연결이 비논리적이다. 따라서 인물의 행동 동기와 논리적인 구성의 전개가 상실되고 유형화, 자기 반영성, 분열이 더욱 투철해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는 발전적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인물의 내면세계의 흐름을 표현주의 드라마 기법의 대표적인 양식인 정거장식 구성으로 그리고 있다.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에 드러난 무명인의 모습은 자신의 과거 모습과 실패했던 모습 등 스트린드베리 자신의 기억에서 거의 직접 우러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서적인 불안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인 무명인은 바로 스트린드베리 자신의 분신이다.

또 한 인물이 여러 가지 인물로 분열되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극작 테크닉이다. ‘분열은 스트린드베리의 내면에 평생 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었으며 지옥기동안 겪었던 정신분열증과도 연관이 깊다. 이렇듯, 작가의 삶과 영혼은 드라마의 구석구석에 투영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자아와 분열된 자아를 직시함으로써, 자신의 의식 속에서부터 도출되어 나온 여러 가지 인간 군상들과 맞닥뜨림으로써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무명인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전진한다.

 

 

 

 

<다마스쿠스를 향하여>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성경의 일부분이 반영된 것으로, ‘무명인이 기독교에 귀의하는 과정이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개종과정과 일치한다. 작가는 정거장식 드라마)의 특징인 순환과 반복의 형식을 통해 이러한 삶의 방황과 혼란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순례 형식의 이러한 극작 테크닉은 스트린드베리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체험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다마스쿠스를 향하여>의 제1부의 구성은 맨 처음 거리 모퉁이에서 시작되어 의사의 집’, ‘호텔’, ‘바닷가’, ‘국도’, ‘골짜기’, ‘부엌’, ‘장미의 방을 거친다. 그리고 요양소에서 절정을 이루며 다시 되돌아간다. , 각각의 장면들은 요양소에서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17개 장면의 장소들이 이처럼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각 장소가 두 번씩 나오며 오직 요양소만이 이 순환적 움직임의 정점으로서 단 한 번 나온다. 무명인은 각 장면을 정거장이라 칭하는데, 그 정거장을 그는 자신이 가야하는 고통의 길, 속죄의 길로 거쳐야 하는 것이다. 방황의 과정을 겪는 무명인은 17개의 장소를 돌아다니며 그 곳에서 얻은 경험을 쌓아나간다. 그는 방황의 마지막 지점인 요양소에서 신부가 읊어주는 구약성서 신명기를 듣고 보다 높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된다. 정거장식 드라마는 연극의 진전이 심리적 동인을 지닌 행위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거장들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장면의 구조모델이 그 근저를 이룬다. 이 정거장들의 연속은 각각 독자적으로 연극의 총체 내에서 주인공을 항상 새로운 사건들, 새로운 결핍의 관계, 행위의 관계에 빠져 들게 한다. 여기에선 현실의 층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 판타지, 동화의 세계와 실제 현실이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며 매우 복잡하고, 인공의 체험의 중심에 초점이 맞춰지는 연극의 세계가 형성된다. 정거장들은 연속적인 시간의 경과를 따르지 않으며 쉽게 서로 바꿔치기 할 수가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뒤섞이는 것이다. 또한 극중 인물들 간의 대화는 비연속적이고 단절되어 있으며, 이야기의 진행은 일관된 큰 흐름 없이 극중 인물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다. 순식간에 한 장소가 다른 장소에 흡수되어 버리고, 등장인물들도 갑자기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신속한 무대 전환은 영혼의 방황과 그 내적 변화를 잘 포착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데 이것은 바로 정거장식 드라마 수법으로 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작가가 인물의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한 상태에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심리 묘사를 하고 있으므로 자아 표현의 형태와 방식이 훨씬 다양하고 자유롭다. 정거장식 드라마 기법은 바로 한 인간의 자아 성찰과정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표현주의 테크닉임을 스트린드베리는 증명한 것이다.  <다마스쿠스를 향하여>, <꿈의 연극>, <유령소나타>에 나타난 대표적인 극작 테크닉은 인물의 무의식과 내적 공간의 표출, 꿈의 흐름과 같은 심리적이고 몽환적 분위기의 표출, 시공간의 자유로운 이동, 상징적 기법과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의 사용이다.

스트린드베리의 위대한 업적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드라마 속에 감각적으로 표현해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 이후 젊은 극작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스트린드베리의 실험적인 드라마 창조는 작가 자신의 창조적 기질과 뛰어난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만 아니라 지옥기 동안의 종교적 신비주의의 체험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옥기는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에 현대성을 가져다준 특별한 시기였고, 스트린드베리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현대 연극의 발전에도 기여한 의미 있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지옥기 동안의 영적 체험은 스트린드베리로 하여금 새로운 극작법을 모색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의 이러한 획기적인 드라마 작법은 현대의 많은 극작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현대 드라마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르네이유 '클리탕드르'  (1) 2019.07.03
셰익스피어 '에드워드 3세'  (1) 2019.07.02
루쥔 '여름의 기억'  (1) 2019.06.29
크리스토퍼 말로우 '탬벌레인 제2부'  (1) 2019.06.24
리 바오쿤 '아버지'  (1) 2019.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