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리탕드르』는 1630-1631시즌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극단이 상연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코르네유가 두 번째 작품을 첫 번째 작품의 성공을 보장했던 몽도리에게 주었다는 것이 거의 그럴듯해 보인다. 왕의 윤허는 3월 8일이고1 인쇄는 1632년 3월 20일이었다. 『클리탕드르』의 역사는 1632년 판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1644년에 이 작품은 코르네유 연극의 첫 전집에 들어간다. 반면에 1660년에 이 작품은 대대적으로 다시 손질된다. 우선 이 작품은 비희극이라는 제목을 잃는다. 다른 한편 이 작품은 헌사, 서문, 개요를 대체하는 <검토〉가 첫머리에 붙는다. “『멜리트』의 성공을 보기 위해 파리 여행으로 나는 이 작품이 24시간 이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유일한 규칙이었다. 전문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 효과도 거의 없고, 문체도 너무 일상적인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항하여 허세를 통해 이 작품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연극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많은 사건과 더욱 고양된 문체를 지니고 있지만 전혀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는 규칙적인 작품(다시 말해서 24시간 안에 있는)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 점에서 나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래서 『클리탕드르』는 정당화, 말하자면 진정한 연극은 『멜리트』였다는 것을 느끼게 할 목적이었던 다른 것을 돋보이게 만드는 작품일 수도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의 텍스트는 1660년에 아주 철저하게 변경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물들을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고서도 두 번째 『클리탕드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굳이 말하자면 덜 즐겁고, 특히 덜 용이한 독서에 의해 현명해지고 지나치게 수줍어하는 작품. 텍스트 자체는 1872행에서 1624행으로 되었다. 장면들이 삭제되고, 첫 텍스트의 몇몇 구절들만을 유지한 채 다른 장면들은 다시 작성된다. 게다가 세부사항에 대한 수많은 가필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텍스트는 이미 말했듯이, 이론의 여지없이 가장 탁월한 1632년의 텍스트이다. 원래의 텍스트와 함께 사람들은 젊은 코르네유와 동일한 상황에 의해 고통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존경심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고전주의가 밀치고 들어갈 바로크적 미학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젊은 작가는 『멜리트』와 함께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제가 <작고> <특수효과들>, 다시 말해서 사건의 급변과 장면의 움직임이 부족하다고 악의적으로 지적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코르네유는 자신이 거대한 주제를 다룰 수 있으며, 작은 장르에서 큰 장르로, 다시 말해서 희극에서 비희극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연극미학의 새로운 개념들을 명확히 하는 논쟁이 뒤따랐다. 즉 새로운 비평가들의 세대, 즉 샤플랭, 데마레, 도비낙, 라 메나르디에르 등등은 자신들의 관점을 새로운 세대의 연극 작가들 - 메레, 뒤 리에, 로트루, 스퀴데리- 의 관점에 대립시킨다. 코르네유는 자신 또한 편들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그는 두 관점에 대한, 그리고 중요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선 그는 <시간의 규칙>을 존중한다. 그는 장소와 시간의 일치를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멜리트』를 창작했으며, 사람들은 그 때문에 그를 분명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이 극적인 움직임의 전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두 번째 작품의 지나치게 많은 모든 사건이 단 하루에 일어나도록 만든다.
다른 한편 <서문>은 근대주의적 신념의 선언이다. 즉, “나는 여기서 고대인들에게 충격을 줄 일종의 자유를 내게 부여한다… 과학과 예술은 그들의 시기에 속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모든 것을 안 것은 아니었다고 믿는 것이 허용된다…]"
<서문>은 이 작품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주의력을 강조했으며, 독서가 상연보다 더 따라가기 쉽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1632년 텍스트의 독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많고 상세한 장면에 관한 지시들이 독서를 용이하게 한다. 『클리탕드르』는 칸막이로 된 장식 속에서 상연되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관객 앞에는 신성한 떡갈나무를 포함하고 있는 숲과 동굴 궁정의 방 클리탕드르가 갇혀 있을 감옥, 왕자가 처형대로 끌려가는 클리탕드르를 만나게 될 광장, 부상당한 로지도르의 방이 있다. 궁정의 방과 부상자의 방 앞에는 이 <장소>가 사용되지 않을 때는 장식융단이 내려져 있었음에 틀림없다. 장식과 조명장치 사이에 있는 공간은 중립 지역 필요에 따라 번갈아 가며 특별한 <장소들> 중 하나에 속하는- 을 이루고 있는 것이 관례임에 틀림없다.

자연에 대한 감정이 코르네유의 극에는 없다. 『로도귄』에서의 초록색 반점을 별도로 하고, 『클리탕드르』에서는 둥에에 찔린 암소들을 찾는 농부, 수렵담당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왕자가 노르망디의 거대한 숲의 시원함을 제공한다. 『클리탕드르』의 또 다른 양상은 경이로운 활력이다. 이 활력은 폭력과 비정상적인 잔인성의 장면들에 의해 표현된다. 바늘의 충격에 의해 찔린 눈, 사람들이 피의 혼적을 따라가는 부장당한 범인, 강간의 시도. 이 활력은 또한 감각적 쾌락의 추구, 대화의 자유, 그리고 포옹의 자유에 의해 표현된다.
이 활력은 무대 변화의 전개 속에서 그의 여러 표명들 중 하나를 찾아낸다. “[ ... ] 나는 무대 위에 사건들 자체를 올려놓았다"고 「서문」은 말하고 있다. 거의 네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개요J, 수가 많고 장황한 무대 지시는 보기 드물게 활기 있는 이 사건에 관한 관념을 제공한다. 문체에서의 격렬한 또한 마찬가지이다. 코르네유는 결코 언어에서의 불꽃놀이의 효과를 이 정도로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뾰족한 것들>이 많다. 유행이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 코르네유는 유행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피망트는 강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도리즈가 찔렀던 <바늘>(머리핀)을 방금 눈에서 빼냈다. 바늘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반영하고 있던 눈을 존중해야 했다. 사람들은 강간의 시도와 애꾸눈 이후 더욱 온순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공포와 환심을 사려는 태도와의 관계가 『클리탕드르』의 특징이다.
『클리탕드르』의 기원은 무엇인가? 아주 국한된 동시대 작품들과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테마들 위에서 꾸며내고, 적합한 비장한 방식들을 사용한 작가 한 마디로 흐름에 따르도록 방임한 작가의 상상력 덕분인 것처럼 보인다.
『클리탕드르』의 의도에 관한 한 마리악 원수의 재판과 결부시키는 논문이 발표되어 있다. 1630년 11월 10일 ‘속은 날’이후 리슐리외는 왕후와 그녀의 당파보다 우세했다. 따라서 그는 마리악의 두 형제가 속해 있던 반대파의 청산에 착수했다. 봉인 관리인이 파면되고, 감시당하는 거주지에 갇힌다. 원수는 1630년 11월에 피에몽의 군사에 의해 체포되어 공금횡령으로 고발된다. 처음에는 재판이 연기되다가, 1632년 3월에 리슐리외가 뢰이으의 별장에서 결합시킨 위원회에 의해 신속하게 처리된다. 1632년 4월 28일 마리악은 재판관들 앞으로 출두했고, 5월 10일에 처형되었다. 마리악 원수의 재판과 『클리탕드르』라는 작품을 관련짓기 위해서 샤를리에는 일련의 두 추론과 관련짓는다. 하니는 작품 자체의 연구에서 끌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것이다.
내적인 추론은 다음과 같다. 클리탕드르의 입장과 마리악의 입장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명예가 가득하고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유를 모르는 클리탕드르는 갑작스럽게 체포된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허술하게 찾아낸 공금횡령이라는 고발로 잡힌 마리악도 마찬가지이다. 마리악이 가스통 도를레앙의 신임을 받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클리탕드르는 왕자의 총신이다. 두 죄인의 변호 또한 유사하다. 자신들의 봉사에 대한 환기, 자신들의 충성심에 대한 확신, 재판관들의 결정에 따르는 것에 대한 항의 그리고 결백의 주장. 내적인 추론은 우선 롱그빌 씨가 이 작품에 보여준 관심이다. 이 작품은 2막까지였을 때 그에게 읽혔다고 코르네유는 말하고 있다. 사실 고소당한 결백한 사람이라는 테마는 이 순간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줄거리는 2막의 끝부터 새로운 방향을 취하고 있다. 다른 한편 왕에 대한 신중함의 조언들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초대는 뤼에이유 재판의 순간에 예외적인 현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클리탕드르』의 출판이 뤼에이유 위원회가 자리를 차지한 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이 마리악을 위한 변호가 되기 위해 드롱그빌 씨는 코르네유에게 작품을 쓰거나 다시 손질하라고 부추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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