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짚모자>의 독창성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행동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추격 행동은 다른 멜로드라마나 희극에도 종종 발견된다. 그러나 라비슈가 이것을 한 사건에 일치된 동작으로 집중시켜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연극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희곡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르는 이 작품을 '악몽 같은 보드빌'이라 불렀다. 두 가지 대립되는 양상에 이끌려 미친 듯이 끌려 다니지만 결국 언제나 한자리에서 맴도는 주인공의 상황이 나쁜 꿈에 시달려 본 우리 모두의 경험과 같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모두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막의 공간적 배경은 각각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 파디나르의 아파트에서 시작된 1막에 이어 2막은 모자 제조업자 클라라의 상점, 3막은 상피니 남작부인의 저택, 4막은 보페르튀스의 아파트, 이어서 5막은 파디나르 집 앞 사거리, 보두아예 광장에서 종결된다. 연금생활을 하는 젊고 부유한 주인공 파디나르는 결혼식 당일 이른 아침, 전날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뱅센 숲을 지나오면서 떨어뜨린 말채찍을 찾으러 간다. 그사이 나무에 걸려 있던 밀짚모자를 무심코 먹어버린 그의 말. 모자는 에밀이라는 직업군인과 숲에서 밀애를 즐기던 유부녀 아나이스의 것이었다. 모자를 찾기 위해 허겁지겁 파디나르의 마차를 뒤쫓아 온 두 남녀는 파디나르의 집에서 난동을 피우며 모자를 찾아내라고 위협한다. 아나이스는 모자를 안 쓰고 집에 돌아가면 남편에게 의심받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참석할 신부와 하객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남녀는 당장 모자를 찾아내라고 파디나르를 심하게 다그친다. 신부와 하객들이 뒤쫓아 따라오는 동안 파디나르는 정신없이 모지를 찾으러 다닌다. 가까운 모자 가게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옛날에 사귀었던 애인을 발견하고 당황하지만 그를 따라온 하객들은 그곳이 결혼식을 올리는 시청인 줄 착각하고 또한 모자가게 직원을 시장으로 오인한다. 이어서 파디나르는 자기가 찾는 그 모자를 한 남작부인이 얼마 전에 사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부인의 저택을 향해 달려가다가 시내교통이 막히게 되자 교회와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한편 남작부인은 자신의 살롱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는데 그곳에 들이닥친 파디나르를 파티에 초청한 테너로 오인하고, 결혼식 하객들은 그 곳이 피로연장인 줄 알고 흥겹게 식사를 한다. 그러나 파디나르는 남작부인이 그 밀짚모자를 자신의 대녀에게 준 사실을 알게 되고 또다시 모자를 찾아 달려 나간다. 공교롭게도 대녀는 아나이스였고, 파디나르는 그녀의 남편 보페르튀스가 두통을 참으며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에 올라가 초인종을 누른다! 파디나르를 뒤쫓아 온 하객들은 드디어 신랑 집에 도착한 줄 알고 이 집에서 하룻밤 묵을 준비를 한다. 모자를 찾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할 준비가 된 파디나르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목적을 주인에게 설명하고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밀짚모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보페르튀스는 파디나르가 가지고 있던 모자 조각을 보고 나서 모자의 주인이 아침에 외출한자신의 아내임을 확신하며 그녀를 찾으러 파디나르와 동행한다. 아나이스가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알고 있는 파디나르는 그녀를 피신시키기 위해 보페르튀스를 따돌리고 허겁지겁 집 앞 사거리에 도착하지만 노발 대발하는 하객들과 마주치고 결혼을 무효로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장인과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갖은 오해를 받으며 난처한 입장에 놓인 파디나르와, 예단을 모두 회수하고 시골로 되돌아가려고 서두르는 신부와 장인 그리고 결혼 하객들 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던 중 베지네 삼촌이 가져온 결혼 선물 상자 속에서 발견된 피렌체의 밀짚모자… 마침내 주인공 파디나르의 결백이 입증되고 늦은 밤, 신방으로 올라가는 신랑 신부를 위한 하객들의 결혼 축하노래가 이어지며 막이 내린다.
긴박한 속도로 전개되는 이 희극 의 특징은 라비슈가 제시한 작품의 주제에 기인한다. 물건 을 찾아내지 못하면 예정된 그날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는 설정 자체가 급박한 분위기를 암시한다. 이에 맞는 빠른 동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라비슈는 행동의 진전에 방해되는 언어들, 심지어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대사까지 모두 제거하고 동작이 느려지는 순간에 다시 급하게 발동이 걸리는 사건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이 급전환은 주인공이 매번 계획을 바꾸고 다른 쪽으로 곧장 내달릴 수밖에 없는 예기치 못한 방향을 제시한다. 1막에서 주인공은 예기치 못한 두 남녀의 기습과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모자 가게를 찾으러 나간다. 이 급전환을 시작으로 2막, 3막에서 연이어 모자를 찾아 돌진한다. 이 급전환은 오인과 착각, 예기치 않은 만남을 통해 희극적 효과를 발휘한다.<이탈리아 밀짚모자>에서 주인공의 지상목표는 결혼식을 빨리 끝내고 허니문을 맞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나이스의 모자를 찾아 주는 일이다. 이 두 가지 목표는 파디나르가 모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결혼을 못하게 하겠다는 에밀의 위협 때문에 장애물에 부딪친다. 희극은 항상 주인공이 부딪치는 장애물과 작가가 면밀히 배치해 놓은 황당한 상황들을 가지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이 작품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적 요인들은 오인과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생긴다. 파디나르의 말이 아나이스의 밀짚모자를 먹이로 잘못 알고 뜯어 먹는 황당한 사건이 작품의 발단이 되고, 보페르튀스가 베지네 삼촌의 결혼 선물인 새 모자를 자기 아내의 모자인 줄 알고 속아 넘어가는 것이 해피엔딩의 결말을 유도한다. 또한 장소에 대한 착각, 인물에 대한 오인도 수없이 일어난다. 즉 모자가게를 시청의 예식장으로, 상피니 남작부인의 저택을 피로연장으로 잘못 안다거나, 파디나르가 아나이스의 남편이 보페르튀스인줄도 그의 집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모자가게 직원을 시장으로 착각하고 주례를 부탁하거나 파디나르를 테너로 알고 노래를 시키는 사건들이 이에 해당된다. 인물들의 예기치 않은 만남은 희극조건의 또 다른 요소인데 1막에서 주인공 파디나르가 자기 집에 모자를 찾으러 들이닥치는 두 남녀를 만나는 것과 아나이스가 그녀의 하녀 비르지니를 우연히 그 집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모두 예상치 못한 만남이다. 결국 종막에 모자도 안 쓴 아나이스를 변장시켜 그 앞을 가리고 서있는 파디나르와 그녀를 찾지 못해 약이 오른 보페르튀스의 만남은 극의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극작 기법 외에 라비슈 희곡에서 보다 강력한 희극적 효과의 수단은 언어다. 당시 보드빌에 사용된 언어는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사회의 중산 층 부르주아들이 흔히 쓰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후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라비슈의 연극이 오지에나 뒤마 피스의 연극보다 더 각광받고 있는 까닭은 언어의 현대성 때문이다. 라비슈의 희곡은 인물들의 논리 정연한 대사나 장황한 문구가 아니라 짤막한 대화들로 채워져 있기에, 인물들의 이미지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라비슈는 비슷한 시기의 작가들인 보마르셰나 사샤 기트리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등장인물들에게 작가의 사상이나 담론을 주입하지 않았다. 그의 글은 은유적 재치를 던지는 단어들을 교묘히 사용해 희극 성을 증대시킨다. 어투의 불일치 또는 말장난이 자주 발견되고 어휘의 과장된 표현과 단조로운 현실을 대비시켜 희극적 재미를 자아낸다. 특히 언어의 사용에서도 반복이라는 희극적 기법이 주로 쓰이는데, 우선 단어나 문장의 자동 반복이 제일 많이 나타나고 상대방이 연거푸 말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끝까지 잇지 못하고 하던 말을 되풀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19세기 프랑스 연극에서 라비슈의 희곡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부정적이었으며 많은 비판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코미디 프랑세즈를 비롯한 국공립 극장들과 수많은 희극 무대에서 끊임없이 공연되는 고전레퍼토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몰리에르와 마리보 작품에 이어 대중 관객에게 가장 많이 소개되는 희극이 되었다. 그는 타고난 희극적 기지와 글쓰기 기교를 통해 독특한 작가 개성을 발휘해 근대 이후 가장 중요한 희극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라비슈 이전 보드빌의 인물들이 그저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무의미한 동작을 되풀이했다면, 라비슈의 연극에서는 현실을 풍자하는 어릿광대의 행동으로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일상의 논리가 환상의 광기와 교차하면서 새로운 부조리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그의 은유적 극작법은 이오네스코를 비롯한 1950년대 프랑스 부조리 연극의 태동을 예고했다.<이탈리아 밀짚모자>의 등장인물들은 모자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주인공을 자동으로 따라다닌다. 하나의 연극적 게임처럼 보이는 극적 구조는 19세기 프랑스 제2제정시대에 오로지 물질적 부유함을 추구하는 소시민적 삶을 비유하면서 거대한 은유와 풍자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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