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외젠 라비슈 '눈속임'

clint 2015. 11. 6. 11:51

 

 

 

 

 

1851년<이탈리아 밀짚모자>로 일약 보드빌 대표 작가로 떠오른 외젠 라비슈가 1860년
<페리숑 씨의 여행>을 통해 보드빌을 성격 희극의 경지로 발전시키고 이듬해 짐나즈 극장에서 에두아르 마르탱과 함께 다시 한 번 선보인 풍습 희극의 수작이 바로 2막 희극 <눈속임>이다.<눈속임>초고를 통해 라비슈와 에두아르 마르탱의 협업 작업을 살펴 볼 수 있는데 이야기와 극적 구성은 같지만 라비슈와 마르탱이 구사하는 희극 언어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출간된 희곡에서 나타나듯이 라비슈의 대사는 마르탱의 단조롭고 특색 없는 형태에 비해 훨씬 생동감 있고 재치와 기지가 번득이는 등 특유한 형태를 보여준다. 라비슈의 작품은 동시대 부르주아 계층에 천착해 그들의 의식과 <눈속임〉 1막 무대는 말랭거 가족의 거실이다. 파리에서 동네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말랭거는 찾아오는 환자가 거의 없어 연금에 의존해 생활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다. 어느 날부턴가 그의 집에 준수한 청년 프레데리크가 날마다 딸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온다. 이를 지켜보던 말랭거 부부는 그가 제과상인 라티누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딸 앙멜린과 결혼하고 싶다는 고백을 듣는다. 마침 이들의 혼처를 궁금해 하던 프레데리크의 부모가 정체를 숨기고 말랭거의 집을 방문한다. 우연히 이들의 방문 계획을 알게된 말랭거 부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라티누아 부부에게 청혼을 받아내려고 온갖 술수와 계략을 동원해 자신들의 생활을 위장하고 과시한다.

 

 

 

2막 배경은 말랭거 부부의 청혼을 기다리는 라티누아 집이다. 라티누아 부부 역시 말랭거 집안 수준에 맞춰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극렬한 눈속임을 발휘한다. 지참금 문제로 대립하는 두 집안의 허황된 눈속임을 보다 못해 로베르 삼촌은 결국 이렇게 외친다. "잘난 체하려고, 폼 잡으려고, 겉멋 부리려고! 요즘 그게 유행이지. 눈속임을 해가며 뽐내고, 뻥을 치고, 허풍을 떨지. 모두 허영에 빠져서…. 형편에 맞추기보다 '양쪽 다 평범한 집안이고 중산층 가정이죠.' 라고 인정하기보다, 아이들의 장래와 행복을 망치려고 들잖아.” 지극히 선량한 인물, 로베르 삼촌의 중재로 그릇된 가치관에 쫓겨 방황하던 두 집안 어른들은 갈등과 대립을 끝내고 화해한다.가치관을 세밀하게 드러내는데 특히 그러한 요소들은 결혼을 중심으로 가족과 세대가 갈등하는 양상으로 펼쳐진다.

 

 

 

라비슈의 작품은 부르주아 계층의 의식과 가치관을 세밀하게 드러내며,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가족과 세대가 갈등하는 양상으로 펼쳐진다. <눈속임>도 그런 전형에 따르고 있다. 말랭거 부부와 라티누아 부부가 자녀들 결혼을 준비하면서 생활수준을 부풀리고 가장해 상대 집안을 속인다. 지참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양가는 파혼을 선언하기에 이르나 극적으로 타협되어 화해하는 재미있는 구성이다.

 

 

 

 

 라비슈 (Eugene Labiche)
1815년 파리에서 부유한 식료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서 학업을 마칠 무렵 작고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에 정착해 1888년 작고할 때까지 파리와 솔로뉴 지방 저택을 오가며 집필 생활을 했다. 그의 창작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나폴레옹 3세의 등극과 제2제정 시기에 해당된다. 왕정 시대의 지지자이며 권력의 지배 계층으로 부상한 시민계급, 부르주아 계층이 정치,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제2제정 사회에서 라비슈는 동시대의 관중, 연극에 열광하는 관중을 위해 작품을 썼다. 작가는 특히 무역업자, 제조업자, 은행가, 건설업자, 공증인, 법률가, 건축가, 투자가 등 근대 산업 직군들에게서 작중 인물들에 대한 영감을 부여받았다.

 


그의 희곡들은 수량 면에서 무척 방대하지만 대략 두 가지 영역으로 분류되는데 첫 번째는 환상과 부조리가 지배하는 작품들로 보드빌과 소극(farce)이 여기에 속하고 두 번째는 사실성에 근접한 희극(com?die)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 <이탈리아 밀짚모자>(1851)를 비롯해 <까마귀 사냥>(1853)은 협업자 마르크 미셸(Marc-Michel)과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1860년 에두아르 마르탱(Eduard Martin)과 협업한 작품, <페리숑 씨의 여행>(1860)을 발표한 이후 4년은 그의 화려한 작품 경력이 펼쳐진 시기다. 라비슈 작품의 정점에 해당되던 이 시기에 발표된 주요 작품들로 <눈에 낀 먼지>(1861), <샹보데 정거장>(1862), <사랑하는 셀리마르>(1863), <판돈 상자>(1864), <나>(1864), <표적>(1864)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영미권에서 <천연자석(Lodestone)>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는 <표적>은 콩피에뉴 궁전에서 초연되어 나폴레옹 3세와 왕비 외제니의 찬사를 받은 라비슈의 후기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결혼에서 돈이 사랑이나 인격보다 중시되는 프랑스 사회의 천박한 물질주의를 하나의 게임처럼 풍자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결혼 문제를 통해 동시대인의 냉소적이고 사악한 일면을 그려 낸다. 특히 부르주아 중산층의 권태와 속물근성이 묘사된 1막 전면에서는 근대 부조리극의 전형으로 불리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에 도입된 살롱 드라마의 진경이 펼쳐진다. 라비슈가 1870년대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주로 혼 외 애정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사랑하는 셀리마르>에서도 남녀 삼각관계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외적인 시각에 불과했다. 반면, 대표작 <세 명 중 가장 행복한 사람>(1870)과 <그것을 말해야 할까요?>(1872)는 한 여인을 중심으로 남편과 애인이 벌이는 이야기의 내면을 철저히 파헤쳐 보여 주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들의 미천함을 눈부신 유머로 깨닫게 해 준다. 1830년대를 풍미한 스크리브의 ‘잘 짜인 극’의 창작 기법을 계승한 라비슈는 1850년대 이후 소극의 활기찬 연극 장치들을 동원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치밀한 극 구조를 포함시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극도의 사실성으로 투영해 희극의 새로운 경지를 발전시켰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셸 트랑블레 '매달린 집'  (1) 2015.11.06
외젠 라비슈 '이탈리아의 밀짚모자'  (1) 2015.11.06
막스 프리쉬 '외덜란트 백작'  (1) 2015.11.06
유진 오닐 '샘'  (1) 2015.11.06
막스 프리쉬 '산타크루츠'  (1) 20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