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유진 오닐 '샘'

clint 2015. 11. 6. 11:31

 

 

 

 

 

 

오닐의 초기 극들은 인물들이 추구하는 불가능하고 낭만적인 꿈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오닐의 인물들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 속에서 나아갈 길이나 돌아갈 길이 막연하더라도 좌절과 방황만을 하지 않는다. 비록 보이지 않고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안개 너머의 세계, 수평선너머의 세계, 지평선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며, 그런 이상세계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미지의 세계는 보다 드넓고 크며, 높고 깊은 공간이며, 머나 먼 곳에 위치한 세계로서, 자유와 낭만이 있고, 평화와 안식이 있으며, 진선미가 존재하는 이상향이다. 인물들이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그들의 사고 속에 막연히 자리 잡고 있는 미지의 바다나 육지가 될 수도 있고, 신비스러운 동양의 어딘가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미지의 세계를 추구하는 이런 낭만적인 꿈은 더욱 허상이며 좌절되기 쉽다는 점이다.
오닐이 추구했던 불가능한 꿈에의 부단한 추구는 '샘' (1922)과 '모든 신의 아이들은 날개가 있다'(1923)에서도 주제로 등장한다. 환희의 시극(dramatic poem)이자 시인의 끊임없는 열망의 표현”인 '샘'은 '백만장자 마르코'(1925)와 함께 오닐이 1920년대 초에 시도한 두 역사극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오닐의 관심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며, 주제 역시 실현 불가능한 꿈의 추구이다. 그것의 아이디어는 영원한 청춘의 치료샘물이라는 아름다운 전설의 재현에 관한 흥미에서 나온 것이다. 청춘의 샘이란 청춘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는 전설적인 샘으로, 일찍이 서인도제도나 미국에 있다고 믿어졌고, 스페인의 탐험가들이 찾아다녔던 곳이다.
“철의 군인이며 몽상가”인 주앙은 오닐의 극에 처음 등장하는 이중성격의 주인공이다. 비록 그의 용모는 낭만적인 모험심과 용기로 가득 찼지만, 그의 언행은 오로지 자신과 스페인의 영광에만 관심이 있는 단련된 군인이다. 그의 삶에는 사랑이나 어떤 감정적인 연루의 여지가 없다. 스페인이 무어인을 정복하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동료 비센테의 아내인 마리아가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자 그는 당황하면서 사랑이란 단어를 조롱한다. 스페인의 장군으로서 주앙이 꿈꾸는 세계는 꽃과 시 그리고 사랑이 존재하는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 오직 스페인과 자신의 영광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철두철미한 군인이기에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소. 스페인이 바로 내가 마음을 바친 나의 애인이오.”라며 비열하게 마리아와의 사랑을 거부한다.
귀족인 루이스는 주앙의 고상하고 시적인 또 하나의 자아를 상징한다. 처음에는 포로로 잡힌 무어인을 동료시인으로 대하며, 후에는 기적적인 변화를 겪어 도미니크수도회의 수도승이 되었다가, 붙잡힌 인디언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간청하는 자다. 주앙을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군인 귀족들은 모두 십자가의 기사들이지만, 하나 같이 탐욕스러운 물질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루이스는 그들을 가리켜 "물질주의자들 같으니라고! 너희들은 돈이라면 천국도 털고 달도 녹일 거다”라며 멸시한다. 그가 노래하는 노랫말은 이 극의 중심테마가 된다.
주앙의 본성은 이 노래의 샘(fountain)을 닮았으며, 종국에 그가 추구하는 이상세계가 이 노랫말 속에 그대로 녹아있지만, 주앙은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아직 너무나 우매한 군인이다. 극의 처음에 그는 세속적이며 고매한 이상을 향해 도약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서야 그는 진정한 영적 자아가 영원한 청춘의 샘 즉 낭만적인 이상세계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꿈도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성스러운 숲은 신이 인간에게서 갈라놓은 평안한 장소로서 모든 것이 예전의 조화 속에 있는 아름다운 세계이다. 그 숲속에 있는 샘은 청춘의 샘으로서 모든 인간의 꿈을 초월하는 전설적인 이상의 샘이다. 물론 이런 샘이 있는 먼 나라는 막연하고 아름답게 그의 이상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곳은 '지평선 너머'의 로버트가 꿈꾸어 온 지평선 너머에 존재하는 동양의 신비로운 세계이며, 그 세계가 이 작품 속에서 현실화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곳은 누구의 꿈도 다 채워줄 수 있는 이상세계, 즉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주앙도 콜럼버스도 수도승도 기사도 선원들도 루이스도 모두다 좌절에 직면한다. 자신이 갈구하던 이상세계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어 종교에 귀의하는 루이스는 그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지만, 황금으로 만든 도시가 있는 중국(Cathay)을 찾으려는 주앙의 포부는 지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찾기 시작한지 20년이 지난지금, 이제 주앙도 노쇠했고 지쳤다. 이때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은 마리아의 딸 베아츠리스이다. 마리아가 성모를 암시한다면 베아츠리스는 단테(Dante)로 하여금 영원한 장미의 비전으로 인도했던 베아츠리스와 같은 이상적 여성으로, 주앙에게 인생의 미스터리를 발견하여 새로운 각성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중국을 찾으라는 스페인 왕의 특허 령을 내밀며 그의 쓰러져 가는 꿈에 불을 지른다. 나이 들어 나약해진 주앙이지만 젊음의 요정 베아츠리스를 본 순간부터 그 내부에 잠재해 있던 사랑의 감정이 마치 분수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루이스의 노래처럼 사랑은 한 송이 꽃이며, 영원히 피어나는 것임을 자신의 딸이나 다름없는 베아츠리스를 통해 인식하는 주앙은 다른 한 쪽의 자아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한다. 사랑을 애원하는 마리아를 무정하게 배신했던 그가 그녀의 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자 그에게 아른거리는 것은 오직 청춘의 샘일 뿐이며, 그래서 그는 “나의 의지력이 죽음에서 깨어났다. 난 당장 항해를 떠나겠다.”라고 말한다. 이제 그가 갈망하는 이상세계는 위대한 스페인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베아츠리스가 여왕으로 군림하는 청춘의 황금도시”로 변한다. 지금 그에게는 “사랑 이외의 신은 없으며, 청춘 이외의 천국은 없다.” 그는 루이스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광기에 휩싸인 채 청춘의 샘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인디언 추장인 나노를 앞세워 자신이 발견하여 플로리다라고 명명한 곳은 꽃의 나라가 아니었으며, 그가 갈망했던 샘은 청춘의 샘이 아니고. 황금 과일이 달린다던 나무는 인디언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숨어 기다리는 죽음의 나무이다. 화살을 맞고 의식을 잃었던 주앙은 의식을 회복하면서 신에게 왜 자신이 황야에서 야수처럼 죽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비로소 그는 자기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철의 군인이자 정복자인 영웅은 이 비전 장면에서 죽어가며 성숙한 고해자로 다시 태어난다. 신을 부정했던 그가 환영을 보며 신을 갈구한다. 이 기도에 응답을 하듯 이상한 빛이 어두운 공간에 쏟아지고, 수수께끼 같은 “즐거운 아가씨”의 환영이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을 찾는 주앙에게 루이스가 첫 장에서 노래했던 “사랑은 한 송이 꽃”을 노래한다. 신비 한 빛이 퍼지고, 샘은 그 물이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거대한 분수로 바뀐다. 그 샘물에서 불교스님을 포함한 네 형상이 나타나며, 그들은 각기 자신의 종교의 상징을 지니고 있다. 뒤이어 마귀할멈의 가면이 사라지면서 베아츠리스로 변하자 주앙은 그녀를 보며 “베아츠리스! 나이, 젊음 그것들은 모두 영원한 삶의 동 일한 리듬이다”라고 더듬거린다. 베아츠리스는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몸 전체가 위로 높이 날아오른다. 분수로부터 솟아오른 빛나는 불꽃이 그녀 위로 쏟아지며, 그녀의 형상이 마치 불꽃의 중심부처럼 보일 때까지 그녀를 감싼다. 주앙은 이 모습을 지켜보고는 기뻐서 무릎을 꿇는다. 그는 마침내 이전에 가졌던 모든 세속적인 젊음과 영광에 대한 소망이 새로운 삶의 불꽃에 의해 정화되기를 갈구한다. 이 기도에 응답하듯 “신은 영원히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요, 영원히 샘솟는 분수이다”라는 베아츠리스의 목소리가 의기양양 하게 들린다. 광희 속에서 행복에 울먹이는 주앙은 신이 영원한 분수이며 하나이자 전부이고 전부이자 하나임을 깨닫는다. 그는 또한 그것이 영원히 변화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루이스가 다가오자 꿈꾸는 환각상태에서 "빛이 보여! 이제 보여. 알겠어!”라고 말한다. 이제 그는 지금 자신이 추구해야할 이상세계를 분명하게 인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처음에 루이스가 꿈꾸었던 곳, 즉 영원한 아름다움과 청춘의 샘이 있는 곳이다. 주앙은 무아경에 빠져 베아츠리스와 젊은 조카 주앙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마침내 루이스가 하늘을 향해 기도 하고, 베아츠리스와 조카 주앙이 부르는 분수의 노래가 수도승들이 부르는 찬송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인생의 신비에 대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찬송가가 되어 울려 퍼진다. 이런 성스런 의식이 펼쳐지는 가운데 무아경 속에서 주앙은 영원의 샘물을 발견하고 꿈과 함께 죽는다. 청춘의 샘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 하는 영원한 소망일뿐이며 젊음과 늙음 그리고 죽음은 영원한 삶의 리듬이자 순환임을 그는 깨닫게 된다. 그 샘은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영원한 삶의 순환에 합류함으로써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가 추구한 청춘의 샘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이며 유토피아이자 현실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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