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총 열 편의 사극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리처드 2세>, <헨리 4세>(I, II), <헨리 5세>를 랭커스터 4부작이라고 부른다. <헨리 5세>는 랭커스터 4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백년전쟁이 배경이 된다. 양국 왕계는 혼인과 혈연으로 얽혀 있어 왕위 계승권에 항상 분쟁의 소지가 있었다. 프랑스 왕권에 대한 영국 왕의 권리를 옹호하는 켄터베리 대주교의 연설 직후 헨리 5세는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한다. 전작인 <헨리 4세>에서 폴스타프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며 비행을 일삼던 핼 왕자는 즉위 후 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현명하게 나라를 통치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채 헨리를 방탕한 철부지로 기억하는 프랑스 황태자는 사신을 통해 ‘테니스공’을 헨리에게 전한다. 이에 헨리는 “라켓이 준비되는 대로 프랑스라는 코트에서 테니스공을 되받아치겠다.”고 응수한다. 전쟁이 시작되자 헨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동시에 적국에 대한 약탈을 금하는 이상적이고 공정한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계속되는 전쟁에 전력이 바닥나 열세에 몰렸을 때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병사들의 명예심을 자극해 전세를 역전시킨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뒤에는 프랑스 왕국에 입성해 자신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고 공주 캐서린을 왕비로 맞이한다.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왕 ‘헨리 5세’를,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 셰익스피어의 언어로 재현해 낸 작품이다.
선왕 헨리 4세 시절 왕위의 정통성-합법성 문제로 내란에 시달린 것을 보아 온 헨리 5세가 프랑스 왕위를 요구하며 1415년 프랑스로 진공, 아젱쿠르 전투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프랑스군을 압도적으로 격파, 굴복시키고 1520년 트르와 조약의 한 조항으로 캐서린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과정을 그렸다.
막 시작마다 코러스를 등장시켜 헨리 5세의 능력과 치적을 노래하는 구조는, 젊은 왕세자 시절 부랑아-패륜아로 지내다 슈루즈버리 전투에서 반란군 총사령관격인 핫스퍼를 죽임으로써 일약 기사도적 영웅으로 떠오르고 즉위 후 잉글랜드의 명실상부한 군주로서 통치 기반을 닦고 프랑스 원정을 통해 영토 확장을 이룬 헨리 5세를 숭앙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 역사적 자료를 가공하여 실제 역사를 극화한 최초의 사극 작가이다. 그 이전에는 작가 당대의 공통된 가치와 이상, 역사관과 세계관이 거대한 총체를 이루며 녹아 들어간 사극 연작은 다른 어느 나라 문학에도 없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통해 잉글랜드 역사는 더욱 생생하게 역동적으로 드러나며 문학-예술화의 경지에 이른다. 셰익스피어는 왕권을 둘러싼 왕족 간의 대립과 투쟁, 이에 따른 귀족들의 이합집산과 반발 과정을 대사로 녹여내며, 전적으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없는 인간의 이중성, 질투, 욕망, 배신 등 인간의 본성을 날카로운 통찰과 시적 표현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 셰익스피어 사극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까닭이다.
『헨리 5세』의 제작 년대는 이 희곡의 제5막 프롤로그에서 코러스가 에섹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하게 추정할 수가 있다. 에섹스는 1599年 3월말에 아일랜드 원정을 위해 런던을 떠났고, 같은 해 9月에 소기의 전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해 이른 여름에는 이미 에섹스의 전황이 좋지 못하다는 소문이 런던에 퍼졌던 것을 보면, 제5막의 프롤로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찬사는, 에섹스의 출정직후, 그러니까 1599년 4月에서 5月에 걸친 동안에만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셰익스피어의 작품 년대를 알기 위해서, 큰 도움이 되는 Francis Meres의 『펠러디스 타마이어』 - 일명 『지혜의 사전』이라고 불리는 책은, 1598年 가을에 출판되었는데, 여기에는 『헨리 4세』 제2부까지 언급이 되었고, 『헨리 5세』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아무래도 1599年의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헨리 5세』의 전문이 온전하게 출판된 것은 1623年이었다. 1600 年 8月 4日자의 세테이쇼너 출판조합의 등기 기록을 보면 '헨리 5세' 『헛소동』 『뜻대로 하세요.』의 출판 허가가 보류되었다는 사유가 실려 있다. 그러나1600年에 『헨리 5세』의 위판이 나왔고, 1601年과 1619年에는 그 再版이 나왔다. 이 위판은 원작보다 약 천 行이 짧으며, 코러스를 비롯해서 생략된 대사가 무척 많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극을 썼을 경우에 그랬듯이, 셰익스피어는 사실적인 자료를 홀린세드의 '년대기' 에서 얻어 왔다. 대주교의 살리크 法에 관한 해설, 헨리 王이 전투 직전에 웨스머런드에게 한사람도 더 兵力증강할 것을 원치 말라고 타이르는 대목 등은 이 『年代記』와 아주 가까운 사살을 띠고 있다. 또 한 가지 셰익스피어에게 資料를 제공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헨리 5세 승전기(The Famous Victories of Henry the Fifth)』이다. 이 극은 1598年에 인쇄되었고, 헨리 王의 방종했던 靑年期에서 시작해 프랑스 공주 캐서린에게 구혼하는 대목으로 끝나고 있다.
5세'에 대한 평론가의 반응은 시대에 따라서 약간의 변동이 있는 것 같다. 나라가 어떤 난관에 봉착해서 국민들의 애국심이 한창 고양되었을 때 -예를 들면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때- 에는 이 극의 인기가 올라가고, 平和가 오래 지속될 때엔 반대로 인기가 내려간다. 또 다른 문학적인 관점에서 비교할 때, 『헨리 5세』는 『헨리 5세』 제,1, 2부보다 못하다는 意見이 많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 극적인 갈등이 부족하고, 헨리 王이 너무 完全에 가까운 인간으로 묘사되었고, 불과 몇 개 안 되는 독백을 빼놓고는, 그 묘사가 너무 外面的이고, 프랑스 군은 지나치게 깎아내리고, 서브플롯이 고르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폴스타프의 불쌍한 임종이며, 플루얼렌과 피스톨의 익살스러운 싸움은 그 자체로선 재미있는 場面이나, 헨리 4世의 경우와 비교하면, 작품전반에 對한 극적 필연성이 약하다고 보겠다.
헨리 5世는 셰익스피어가 숭상했던 王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헨리 5世에 對해서나, 그의 아버지 헨리 4世에 대해, 지나친 환상은 결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프랑스 토벌의 동기가 어디까지나 타산된 정책에서 온 것이며, 교회가 전쟁 세를 지불한 것은 교회의 영지가 감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그중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감상적인 환상을 헨리 王에 대해서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셰익스피어는 이상적인 王이면 지녀야 할 특질을 作中의 헨리 王에게 부여하고 있다. 무자비한 결당성은 반역을 음모한 세 귀족의 처형, 님과 바아돌프의 처형, 폴스타프에 대한 처우에서 엿볼 수 있고, 단호히 자기의 의견을 고집할 줄 아는 줏대는 프랑스 전령과의 對話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國民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화술을 가졌고, 전쟁 전야의 그의 獨白으로 알 수 있듯이, 절대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철저한 신앙심도 또한 이상적인 王으로서 응당 갖는 것이 타당한 일면일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극적 플롯의 구성이 좀 약하다고 할 수 있는 이 作品은, 그러나 그 문체가 뛰어나서 오늘날까지 흔히 인용되는 名句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역적에 대한 헨리王의 설득, 하아플러에서의 연성, 애진코트의 전투 전야의 독백, 그리고 웨스머런드에게 하는 대사이며, 이것들은 누구의 추종도 허용치 않는 격조를 지니고 있다.
『헨리 4世』 제1, 2部에서 대활약하던 익살스러운 영감 폴스타프는 이 作品엔 나오지 않고, 다만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간접적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폴스타프가 어째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는지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앞서 『헨리4世』 2部에서 폴스타프가, 당시 왕자였던 헨리 5世의 눈밖에 벗어난 이상, 새삼스레 그를 지금 王으로 있는 헨리 5世 앞에 등장시키기가 기술적으로 어색했을 것이고, 또 어떤 평론가가 주장하듯이, 폴스타프를 등장시키면 헨리王의 존재를 누를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또 『원저의 바람둥이 아낙네들』 에서의 폴스타프가, 완연히 생기를 잃고 있는 것으로 봐서, 셰익스피어가 다시 폴스타프를 클로즈업해서 소생시킬 만한 자신을 잃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지금까지 폴스타프 역을 맡았던 면배우가 이 극을 쓸 무렵 극단에서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어찌되었든지 간에, 우리는 이 作品에서 『헨리 4世』에서 본 바와 전혀 다른 인물이 된 헨리 5世를 만나게 되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完全히 다른 극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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