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장성희 재창작 '물속의 집'

clint 2019. 4. 7. 11:49

 

 

 

당신은 어머니를 향해 오이디푸스 적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아버지를 향해 엘렉트라 적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장성희의 [물속의 집]은 바로 이러한 오이디푸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생물학적 본성에서 파생되는 욕망과 애증, 집착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유진 오닐의 원작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를 현재의 대한민국 배경에 한국적 정서라는 밑바탕을 깔고 여성주의 적 시각을 가미해서 새롭게 풀어낸 이 작품은 간통. 모친살해. 근친상간 등이 뒤섞여 파멸에 이르는 한 집안의 비극적 몰락을 그리고 있다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죽은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부인과 딸. 아들. 그리고 부인의 정부가 애증으로 얽힌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는 딸이 아빠를 사랑하고 더불어 엄마의 정부를 사랑하고,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고 누나를 사랑하며, 엄마는 정부와 아들을 사랑하는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물속의 집]의 주 무대가 되는 이들 가족의 집안에는 또 다른 집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개개인 모두가 각자의 내면속에 지어놓은 자신만의 집이다. 그 집 속엔 그들이 허락한 존재만이 출입할 수 있으며 허락받지 못한 존재는 적이며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집안의 집 속에서 서로 교통하며 사랑과 증오를 나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상대에게 총구를 겨누고 스스로를 향해서도 총구를 겨누며 죽음을 맞게 되고 저주받은 이 집안의 문은 굳게 닫힘으로서 비극은 끝을 맺는다.

 

 

 

 

 

연극 [물속의 집]은 이러한 저주받은 집안의 빗장을 열듯 조심스럽게 극을 풀어내고 있다. 원작에선 좀 더 아들의 위치에서 극이 진행 되고 있다면 작가가 의도한 여성주의 시각에 맞게 딸의 위치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추어져있다. 아마도 그것은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 속해 있는 여성의 위치에서 그녀가 남성기준의 윤리관을 거부하고자 했을 때 선택 할 수 있는 방식의 한계점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무대는 극과 극, 대립과 반목을 상징하듯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로 세팅되어져 있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차분하고 간결하게 진행되는데 특히 여자들의 걸음걸이는 제도와 관습 안에 갇혀있는 속박을 의미하듯 정형화 된 움직임을 갖는다. 음악과 조명은 그들의 움직임에 또 다른 의미를 덧씌우듯 템포를 맞춰간다.

 

 

 

 

 

작가의 글

물속의 집은 유진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를 재창작한 희곡이다. 드라마틱한 구조와 가정 비극의 모티프를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나도 미국적인배경과 정서를 어떻게 한국적으로 가져올까를 고민했다. 유진 오닐이 그리스 비극 형식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기조로 삼았다면, 이를 고쳐 쓰면서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억압된 사람들의 내면을 핵심으로 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