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작품해설
이 작품은 상당히 보기 드문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내가 무대에 올린 21번째 것이다. 무대 위에서 4만 행의 대사를 하게 한 이후에, 큰길에서 약간 벗어나 헤맨다는 위험에 빠지지 않고서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비극의 영혼임에 틀림없는 사랑과 정념이 이 작품 속에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용기의 위대함만이 작품을 지배하며, 한 마디 불평도 늘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멸시하는 시선으로 자신의 불행을 바라본다. 이 용기의 위대함은 정치로부터 공격당하지만, 정치적인 책략에는 관용적인 신중함만을 대립시킨다. 이 신중함은 솔직하게 나아가며, 아무런 동요 없이 위험을 예견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진 미덕과 사랑이라는 지주 이외의 다른 지주는 바라지 않는다.
이 정도 높은 수준으로 표현되는데 필요한 것을 제공한 이야기는 저스티누스의 『34번째 책』에서 끌어왔다. 나는 이들이 아버지 - 아들을 자기만큼 만들고자 했던-를 무대에서 살해하게 만드는 파국의 공포를 없앴으며, 프리시이스에게도 니코메드에게도 어떠한 친족살해의 계획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녀의 왕권에 이웃나라 왕권을 결합시킴으로써 로마인들에게 더 큰 그림자를 제공하기 위하여, 그리고 로마인들로서는 그것을 방해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니코메드를 아르메니아 공주인 라오디스의 마지막 연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같은 왕국에서 약간 앞서 일어났고, 그 이름이 작품의 작지 않은 장식인 한니발의 죽음 이야기에 접근시켰다. 나는 니코메드에게 더 많은 가치와 로마인들에 대항하는 대범함을 더욱 많이 제공하기 위해 그를 한니발의 제자로 만들었다. 플라미니우스가 로마인들에 의해 동맹자인 이 왕에게 파견된 대사라는 직책을 기회로 삼아, 로마의 위대함에 반항하는 오랜 적을 손에 넣으라고 명령하기 위하여, 나는 로마인들의 질투심을 유발시켰음이 틀림없는 이 결혼을 방해하라는 은밀하게 위임된 권한을 그에게 부여했다. 두 번째 부인의 속성에 따라 나이 든 남편의 영혼에 대해 전권을 지니고 있는 왕비의 영혼을 장악하기 위하여, 그는 왕비에게 아들 중의 하나 - 내 작가가 로마에서 성장했음을 알려준 - 를 다시 데려오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는 이 야심 있는 어머니의 수단을 통하여 한니발의 실패를 얻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니코메드에게 그의 영광과 태어나기 시작하는 위대함에 대해 질투하는 로마인들의 모든 호의로 지원을 받는 경쟁자를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이 왕자에게서 피비린내 나는 아버지의 계획을 발견한 암살자들은 계모가 준비해둔 함정으로 그를 빠뜨리기 위한 또 다른 계략에 대해 내 눈을 뜨게 했다. 결말을 위하여 나는 계모를 축소시켰다. 그 결과 동장인물 모두는 관용 있게 행동하며, 어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덕보고 있는 것을 미덕 탓으로 돌리고, 또 어떤 등장인물들은 의무의 단호함 속에 머물게 됨으로써 아주 탁월한 모범과 아주 유쾌한 결론을 남겨주게 된다.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구절이 내 속에서 나왔다. 나의 주된 목적은 로마인들의 대외 정책과, 동맹국 왕들과 함께 얼마나 강압적으로 행동했던가를 그리는 것이었다. 또한 동맹국들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좌우명과, 성장한 덕분에, 그리고 새로운 정복으로 중대한 위치를 점유한 덕분에 로마의 정책이 동맹국들에게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을 때, 동맹국들의 위대함을 막는데 들이는 수고를 그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대사인 플라미니우스라는 인물 속에서 내가 로마인들의 공화정에 부여한 특징이며, 나는 플라미니우스에게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자신의 확실한 패배를 바라보는 왕자, 자신이 짓눌리고 있을 때조차도 거만한 로마인들의 힘의 총체에 용감히 맞서는 왕자를 대립시킨다. 나만의 독특한 이 주인공은 어느 정도 비극의 규칙에서 유래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과도한 불행에 의해 연민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의 영혼에 경탄만을 야기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확고함은 때때로 우리 예술이 불행의 묘사로 관객의 영혼 속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내는 동정만큼이나 유쾌하다는 것을 이 작품의 성공은 보여주었다. 어쨌든 어떤 불행이든 태어나게는 하지만, 눈물을 자아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이 불행의 효과는 청중들을 이 왕자에 대한 관심 속에 가두고, 청중들로 하여금 왕자의 행운을 바라게 만드는데 한정된다.

사람들이 그의 미덕에 대해 지니고 있는 경탄 속에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한 바 없었고, 연민과 공포라는 수단에 의해 비극에 규정했던 방식보다 아마도 더욱 확실한, 정념들을 정화시키는 수단을 발견한다.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는 이 미덕 때문에 비극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반대되는 악덕에 대한 증오를 마음속에 심게 된다. 니코메드의 용기의 위대함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심함에 대한 혐오감이 남으며, 자기 생명을 살려준 마르티앙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에라클리우스의 관용적인 인식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이라는 두려움 속으로 뛰어든다.
이 작품이 내가 가장 큰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 중 하나라는 것을 감추고 싶지는 않다. 또한 다른 곳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그리고 프리시아스와 플라미니우스- 바다로 도망친 이후 갑자기 용기를 상기시키려고 애쓰고. 아르시노에를 보호하면서 그녀와 함께 죽기 위해 왕후 곁에 있으려고 돌아오는 - 에게서의 품성의 불균형조차 발견될 수 있는 결말의 실수만을 지적할 것이다. 갈라놓기 위하여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져온 로마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왕가 전체가 재결합되는 것을 보는 플라미니우스는 아주 심술궂은 태도를 견지한다. 그는 니코메드의 위대함을 가로막기 위해 선택된, 그리고 니코메드에 대해 거두게 되는 승리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만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왕후와 아탈르 왕자의 애정이 니코메드에 때문에 빼앗기는 것을 알아차린다. 처음에 나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작품을 끝맺었고, 니코메드는 왕의 도망에 만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니코메드는 자신이 착한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죽음을 불확실한 것으로 남겨놓기 때문에 역사적인 효과를 저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시의 결말에 우리 등장인물 모두가 결집되는 것을 보는데 습관이 된 관객의 기호 때문에, 균형은 멀 잡히지만 관객에게 더 큰 만족을 부여하려고 결심하여 이렇게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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