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드라마의 역사적 소재가 된 것은 실러가 발행하던 잡지 “호렌’'(1797)에 실린 칼 빌헬름 페르디난드 폰 푼크의 논문 “아풀리엔과 칼라브리엔의 왕 로베르 귀스카르”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클라이스트는 파리에서 “그리스의 황제 알렉시우스 생애의 회상록”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이것을 활용한 듯하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자들은 클라이스트가 귀스카르라는 인물에 당시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적 인물, 즉 나폴레옹의 특성을 투영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귀스카르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하는 것은 1799년의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한 것과 놀라운 유사성을 드러낸다.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쥐고 10년 간 집정관에 오른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군사적 성공으로 국민들로부터 큰 인정을 얻게 되었다. 더구나 거의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말 즉 그가 아크라(1799) 점령을 할 때에 페스트에 걸린 자기 부하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그들을 직접 면담했다는 것은 그의 카리스마를 굳건히 했다. 이 모든 사실을 클라이스트는 1802/03년에 잘 알았다. 스위스에서 농부로 조용히 살려고 하는 자신의 인생계획이 권력찬탈자인 나폴레옹의 세력 확장으로 인해 좌절을 경험해야만 했다. 클라이스트는 이 드라마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는데 그것은 그가 다른 어느 드라마 작품들에 걸었던 기대보다도 더 컸던 것이다. 그는 이 드라마로써 완전히 새롭고 동시에 최고의 예술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이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약 500일 정도 가한 혼신의 노력은 곧바로 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지위를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이것은 결국 실패로 끝나는데,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작가적 재능을 자주 의심하던 그는 거의 완성된 원고가 자신의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1803년 여행 중 파리에서 이를 태워버렸다. 현재 남은 이 미완의 드라마는 그가 1808년 자신이 공동 발행인으로 있던 잡지 “픽부스”에 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자신이 쓰려고 했던 작품을 기억하여 되살린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 쓴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방대한 드라마의 발단부에 해당하는 107R 장면 524행 뿐인 이 드라마의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Robert Guiscard)
용감하고 지략이 풍부한 노르만의 왕이며 크게 성공한 정복자 로베르 귀스카르는 자신의 부하병사들을 이끌고 왕도(王都)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다. 민중들은 크게 동요한다. 왜냐하면 흑사병이 진중(陣中)에 창궐하였기 때문이며 사람들은 후퇴의 명령을 내려달라는 말을 전하도록 대표를 뽑아 귀스카르에게 보내려 한다. 그때 홍분한 사람들 사이에 아주 무서운 소문이 퍼진다. 즉 대왕 전하가 흑사병에 걸리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사가 밤에 대왕 전하의 막사로 불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왕의 천막에서 맨 먼저 그의 딸 헬레나가 나오더니 민중의 대변인에게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그러고 나서 왕의 아들 로베르가 나오고 곧 이어서 왕의 조카 - 원래는 귀스카르 대신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던 그의 형님 오토의 아들 - 아벨라르가 나온다. 이 둘 사이에 질투가 생긴다. 로베르는 민중에게 거만하고 교만하게 말을 하지만 아벨라르는 매우 재치 있게 말을 한다. 아벨라르는 귀스카르 대왕이 병환이라는 소문에다 새로운 의심을 조장한다, 그러나 즉시 그는 왕께서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반역자들에 의해 고무되어, 그 시를 향해 총공격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국민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천막의 문이 열리고, 로베르 귀스카르 왕이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밖으로 나왔다. 그는 태연하게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민중의 대표자들을 안심시킨다. 왕의 힘과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갑자기 몸을 비틀거린다. 그의 딸은 그를 앉히려고 큰북을 갖다 드린다. 그러나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민중의 대표자를 이끌고 있는 늙은 병사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명령한다. 늙은 병사는 대왕에게 이탈리아로 돌아가자고 건의한다.
여기서 클라이스트의 이 단편(斷片)은 끝난다. 우리는 여기서 성립된 갈동을 어떤 방식으로 극적 사건으로 이어 나갈지 그저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초안에 이미 세 가지 위험에 처해 있는 한 남자의 선명한 상(像)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첫째, 전장에서 적에 대해 둘째 자기 집안의 모반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적에 대해 힘차고 단호하게 끝까지 저항하는 이 남자의 상은 아주 노련한 솜씨로 한가운데에 서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클라이스트가 그려낸 인물들의 기본 유형인데, 그는 ‘깊은 혼동에서 자제할 줄 아는 인물’을 계속 바꾸어 가며 그려낸 것이다. 클라이스트는 이 작품에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의 문체를 결합시켜 넣으려는 꿈을 가졌다. 이 극의 첫 부분에 나오는 합창(코러스)에서 그리고 많은 매우 멋지게 구사된 표현 등에서 우리는 특히 그의 이런 의도를 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극의 대사가 매우 혼란스럽게 동요하고 힘찬 형상력으로 발전하는 점이다. 이런 사실이 이 작은 단편에 큰 매력을 더해 주었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연출할 만한 크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거듭 매우 감명 깊게 무대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쓰여진 지 약 100년 후인 1901년 4월 6일 베를린 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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