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윌리엄 셰익스피어 '코리올라누스'

clint 2015. 11. 5. 22:23

 

 

 

 

 

「코리올라누스』는 문체와 운율로 보아서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가 쓰여진 직후 1608년 전후의 작품이라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연구가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 것 같다. 그러나 1623년 제 1, 2절판이 나오기까지 출판되지 않았고 초기의 상연기록도 없어서 실제로 집필연대의 추정이 어렵다. 창작연대를 당시의 이벤트, 팩트, 그리고 텍스트 등의 연구에 바탕을 두는 여러 가지 실증이 시도되어 왔다. 하나의 실중연구로서 1609년에 초연된 벤 존슨의 희극 '에피신 또는 침묵의 여인'(Epicoene or the Silent Woman) 속에 희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코리올라누스'에 나오는 구절을 모방한 듯한 대목이 있어 1607, 8년경에 초연 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할 수 있다.
창작과 초연연대를 1608년으로 추측하는 연구가가 많다고 하였는데. 1607년에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중부지방과 북부지방에 큰 한발이 불어 닥쳐 기근상태에 있는 농민들이 봉기한 사건이 있었으며 '코리올라누스' 의 첫머리에서 볼 수 있는 폭동의 기미는 이 농민봉기를 밑받침으로 삼았다고 보고 있으며 에드먼드 체임버스도 '코리올라누스'를 1608년 경 창작한 것으로 주장한다. 학자들의 의견 일치한 점이 한 가지 또 있다. 그것은 '코리올라누스'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줄리어스 시저'와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소위 로마 극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비극의 종언을 고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 작품의 문체와 주제의 특색이 4대 비극과 만년의 낭만극과의 가교 적 역할을 하는 과도기에 쓰여진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또 한 1607, 8년 경 즉 작가의 43세경에 쓰여졌다는 것이 오늘날 통설로 되어 있다.
'코리올라누스' 의 소재는 전작 줄리어스 시저,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소재를 얻고 있는 토마스 노드의 플루타크 영웅전의 '카이우스 마르티우스 코리올라누스 전'이다. '코리올라누스'의 경우에는 「시저전」 「앤토니전」을 소재로 한 시저의 복수라든가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이라는 전작이 없어서 셰익스피어는 아마 그의 독창성을 이 극의 창작 에 쏟은 것이리라.

 

 

 

 

카이우스 마르티우스란 본명을 가진 그가 볼사이 족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적국의 수도 코리올라이를 함락시킨 공으로 코리올라누스(정복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된다. 로마시민들은 그의 개선을 축하하고 그는 집정관으로 추대된다. 그러나 그는 오만하여 민중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증오한다. 시민은 그에게 반항하며 그를 추방하고 만다. 추방당한 그는 원한과 분노를 분출하는 수단으로 이전 의 적과 동맹을 맺고 적의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해 노도와 같이 진격해 간다. 오직 복수심에 불타오른 그가 로마를 잿더미로 만들어 놓을 만한 찰나 애원하는 노모와 아내 등의 간청에 꺾이어 철군하고 만다. 그리고 폭도들의 비수에 쓰러지고 만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한 영웅의 비극적인 몰락 과정을 묘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코리올라누스의 하나의 특징은 셰익스피어의 정치에의 깊은 관심이 다른 두 작품 '줄리어스 시저' 와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를 웃도는 것으로 극중 도처에서 눈에 띈다. 공화정치 붕괴 직전 로마를 배경으로 하여 묘사하고 있는 '줄리어스 시저', 이어서 삼두정치의 시대 로마 대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를 창작한 뒤 셰익스피어는 '코리올라누스' 에서 이들의 시대로부터 훨씬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5세기의 로마공화국 시대에 산 귀족출신인 한 사람의 용맹한 장군의 생애에 착안하여 처절한 생의 궤적을 극화한 정치적 줄거리의 하나다.
코리올라누스는 사회에, 관습에 타협하지 못하고 고독한 비극적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는데, 우리는 그가 살았던 사회, 로마 공화국을 그의 성격과 행동을 축으로 하여 조망하게 되는 것이다. 『코리올라누스』는 4대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정치적 비극이다. 물론 로마사극 세 작품은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세 작품 중에서 '코리올라누스'가 가장 정치성이 강조된 비극으로 되어 있고 로마의 국가 조직과 주인공의 갈등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코리올라누스'의 인간상은 오만과 허영과 파괴적인 자만심의 화신과 같은 느낌이 든다. 부언하면 전 생애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지내왔고. 싸우고 이겨만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그는 남에게 꺾일 줄 모르고 오직 애국심과 명예욕에 불탈 뿐이다. 그가 자연히 평민들을 멸시하는 것도 오만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평민들이야말로 비겁하고 나라를 사랑할 줄 모르는 비천한 속물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그의 비극적 종말을 초래하는 원인으로서는 사려분별이나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문제에 부딪쳐도 내적 갈등이나 고민을 느끼지 않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결국 자기 파괴를 초래한 불씨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내는 「코리올라누스』가 비극의 범주에 들면서도 4대 비극 또는 『줄리어스 시저』 나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로마극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주인공을 주로 외적 면에서 묘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랜빌 바커는 그 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들은 결코 코리올라누스와 완전히 일체화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의 내면을 자유롭게 엿볼 수도 없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작품전체 중에서 '코리올라누스'는 어느 시대에서도 상연되어 온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희곡을 애독한다던가, 높이 평가한 사람들 중에는 사무엘 존슨, 스윈번. F. H. 루다, L. C. 나이츠, G. W. 나이트. T. S. 엘리엇 등이 있다. 존슨은 “ '코리올라누스'의 비극은 우리들의 작가들이 만들어 낸 무대 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것의 하나라고 했는가 하면, 스윈번은 '코리올라누스'는 “공적 또는 역사적 비극이라기보다는 사적이며, 가정적 비극"이라고 했다. 루다는 “진정한 감동을 주는 비극이요 나이츠는 "위대한 비극", 나이트는 코리올라누스를 "인간성 의 정수"를 보여주는 인물이라 칭찬했고 엘리엇은 “코리올라누스는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극중에서 확실한 예술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귄터 그라스가 극중극으로 만든 희곡 '민중이 반란을 연습하다'(The Plebeians Rehearse the Uprising, 1966)에서 독일의 정치 문화적 불안정한 상황을 예리하게 반영한 코리올라누스의 창작극 또는 번역극 번안극이 10여 편 이상이나 쏟아져 나오게 된다. 1910 년대 제 1차 세계대전중이나. 1930년대의 나치시대에는 영국을 능가할 정도로 코리올라누스를 공연하여 선전에 이용도 했다. 이는 '코리올라누스'가 독일의 청년들에게 용기와 영웅주의의 귀감이 된다하여 서였다. 그러나 한스 로테가 코리올라누스를 번역 (1932) 방송까지 했는데 그 후 나치는 그를 유배 보낸다. '코리올라누스'는 정치적 상황여하에 따라 공연이 많이 되기도 하고 정치적 도구나 수단으로 강요되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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