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는 1612~13년에 만년 작으로, 8세의 통치기간 25년을 다룬 작품이다.
1613년 6월 29일 극장에서 공연 중 위해 축포 발사 장면에서 지붕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었다. [헨리 8세]에서는 군주와 그 초점을 장면이 않는다. 대신 버킹검 공작, 왕비, 울시 추기경, 대주교 등 운명의 휘말려 추락하는 자들의 법정 장면에 초점을 맞춘다. 원제 [All Is True]가 언젠가 필멸의 암시하듯이.
이와 앤 불린의 여왕 대관식, 엘리자베스의 세례식 등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8세에 세력이 현저히 현실을 시사하며 마지막 장을 통해 다가올 엘리자베스 1세 상승을 예고하기도 한다.
[헨리 8세]는 작품 드라마라기보다는 일련의, 각 장을 겪는 나열이다. 월지에 밀려 고발당하고 재판받고 처형당하는 버킹검 공작, 이혼당하고 끝내 죽음을 맞는 캐서린 왕비, 왕과 결혼하는 앤 불린, 그것을 막으려던 음모가 탄로 나 죽음을 맞는 월지, 캔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되었다가 왕이 나서서 모면시켜 주는 크랜머, 마지막은 앤 블런과 헨리 8세 사이에 태어난 장녀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1세의 세례식을 일대 소란이고 장관이다.
『헨리 8世』란 作品은 과연 셰익스피어의 作品이냐? 하는 의문의 作品으로 되어있다. 셰익스피어와 그 후배 작가 - 매신저와 프렛차 - 와의 合作일 것이라는 說이 가장 有力한 說로 되어있으나, 이 作品도 셰익스피어의 作品에 틀림없다고 主張하는 학자도 있고, 이 作品은 전혀 셰익스피어의 作品이 아니라 매신저와 프렛차의 合作으로된 것이라고 主張하는 學者도 있고, 또 어떤 학자는 셰익스피어의 未完成 原稿를 프렛차가 정리 보완해서 上演한 것이라고도 主張한다.
이 作品은 作者의 生存 中에는 출간된 일이 없고, 1623年 第1, 2折版 全集에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製作 年代는 고향인 스트래트 포드에서 은퇴생활 中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즉 『템페스트』를 쓰고 난 후, 1612~3年에 製作된 것이라고 推定되어 있다. 이 推定의 理由로 - 1) 1613年 6月 30日부로 된 로마스 로킨의 편지에 의하면, "바로 어제, 버베이지와 그의 극단이 글로브劇場에서 『헨리 8世』를 公演할 때, 무대효과로 발포한 것이 원인이 되어, 화재가 發生해서, 劇場은 11時間 內에 完全 소실되고, 관객들은 겨우 그 場所에서 빠져 나왔다."고 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자필 原稿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 한다.
2) 第5막 최종장면에서 크랜머의 예언으로 엘리자베스 女王을 격찬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女王에 재위 중인 - 즉 1630年 경에 製作된 것이 아닌가 하는 學者도 있지만, 女王의 사후인 1612年을 主張하는 學者들은 오히려 女王의 성격으로 보아, 부왕인 헨리 8世 王의 행적을 무대화 하는 것을 女王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같은 예언 中에 "새로운 國土를 개척 운운..." 하는 구절은 제임스 1世 재위 時, 즉 1612年에 신대륙 버지니아에 영국식민지를 만든 것을 말하는 것이요, 劇의 形式으로 보더라도 패전트 式이 1612~3 年 경에 英國에서 유행되었으니, 이 作品의 製作年代는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보아, 1612~3年이라고 推定한다.
이 작품의 소재로 취급된 역사상의 사적은, 다른 사극과 마찬가지로, 주로 홀린세드의 『英國史(1577年版)』에 의한 것이나, 그밖에 에드워드 홀의 『랭커스터 요크 兩家의 合同(1548年版)』이란 영국사와, 『순교자의 册』으로 알려져 있는 존 폭스의 『교회의 決議와 記錄(1563年版)』이 그 素材로 되어 있다. 1613年 글로브 극장에서 초연될 때, '모든 것이 진실'이란 副題가 붙어 있듯이, 너무도 지나치게 사실 그대로를 劇化한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다른 사극에선 볼 수 없는 부실한 희곡이 되고 말았다. 물론 1520년~ 1542년 간의 23年 間의 사실을 5幕 17場으로 극화한 것이니, 歴史 上의 사실이 나, 年代, 場所, 인물 등을 그대로 戯曲化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 신축, 병경, 혼동 등 正史 그대로 年代順으로는 되어 있지 않으나, 主要한 人物의 行動이라든지, 대사까지도 正史에서 複寫한 것이 特徴이다.
正史에 의하면 1509年 헨리 7世가 붕어하고, 그 장자인 헨리 8世 王이 18歲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다. 즉위 후 國家 政策으로 스페인 王의 딸이요, 亡兄의 미망인인 캐서린을 王妃로 삼는다. 이 王妃와의 離婚問題에 關한 여러 사건이라든지 - 王妃의 審問場面 - 王妃의 비참한 최후 - 앤 블런과 王이 월지 교정고문 邸宅에서 만나는 장면 - 그녀가 王妃로 재혼되는 如末이라든가 - 박식 준재로 알려진 빈가 출신의 토마스 월지가 중용되어, 요크의 대승정으로 로마 교황의 교정고문으로, 정치와 종교의 兩權을 한 손에 장악하게 된 결과로, 월지는 로마 교황이 되려는 욕망을 갖게 되어, 이로 해서 조국의 이해를 忘却하고, 외국의 주권자한테 아첨해서 그 야망을 達成하고자 왕비 캐서린의 조카 되는 쟈아먼 황제 찰스를 階梯로 하려다가 거절당하자, 王妃 캐서린의 이혼문제를 찬성하는 장면이라든지 - 월지의 실각과 그의 급사라든지 - 버킹검 공작이 음모로 사형되기까지의 사건이나, 월지와의 앙숙 같은 것이 - 모두 그 年代의 仲縮이나 場所 그 밖의 변경은 불가피하지만, 正史 그대로의 사적을 패전트式으로 脚色해서, 희화的으로 무대화 한 作品이 『헨리8世』이다. 正史에는 충실했을 지 모르나, 作品으로서는 불구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이 作品의 문체나 운율의 不統 一로 보아 셰익스피어가 직접 썼으리라고 추측되는 場面은 第1幕의 第1 場과 第2場、第2막의 第3場과 第4장, 第3막의 第2장, 第5막의 第1 場뿐으로, 其他 11場은 다른 作家가 썼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문체와 운율뿐만이 아니라, 戯曲의 構造를 살펴보더라도, 셰익스피어의 作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그 構造 자체가 희곡으로서 完成되어 있지가 않다.
헨리 8世를 中心으로 몇 가지 重要한 사적을 지리멸렬하게 나열해서, 그려놓았을 뿐, 희곡이 갖추어야 할 기-승-전-결의 구조가 전혀 無視되고 있다. 主動인물과 反動인물의 갈등이나 對決이 統一性이 없고, 몇 개의 사건이 따로따로 유리(遊離)되어, 그 事件 하나하나가 各各 處理 종결된다. 버킹검 공작의 모반事件을 보더라도, 버킹검이 主動이라면, 월지가 反動이다. 이 事件은 이 事件대로 발단-정점-결말의 形態를 보여주면서, 第2幕 第1場에서 處刑되어 없어지고 만다. 월지의 榮華와 失脚과 急死는 그것대로 第3幕 第2場에서 終結되어 월지란 인물이 없어지고, 캐서린 王妃의 離婚問題는 그 問題대로 發端-頂點-破局을 形成하면서, 第4幕第2場에서 終結되고 만다. 最終 막에 登場하는 크랜머는 크랜머대로 事件의 發端-頂照-解決이 形成되어, 마치 새로운 事件을 取扱하는 다른 作品의 第1막 같은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劇 全體의 統一性도 없고, 劇 전체의 中心도 클라이맥스도 없는 戯曲 構造는, 셰익스피어作品에선 찾아볼 수 없는 構造이다. 場面과 場面을 羅列해놓은 史話이지, 健全한 戯曲의 生態를 갖춘 作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햄릿』, 『오셀로』같은, 代表的인 2대 戯曲構造를 창조해놓은 셰익스피어가, 더구나, 만년에 이런 不具의 戯曲構造로 희곡을 완성시켰으리라고는 想像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셰익스피어의 作品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도 이 까닭이다.
셰익스피어가 몇 막 몇 장만 손대었을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戲曲 構造로 보아서는 셰익스피어가 戯曲構成 以前의 소재 收集程度나 하였을까, 그 構成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作家의 未熟한 솜씨로 이루어진 것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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