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학선 '저 사람 무우당 같다'

clint 2018. 10. 29. 10:36

 

 

 

한 사내가 배를 타고 호수 위에 떠있다. 그는 기억의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수몰된 호수 밑의 옛 집으로 돌아가 기억 속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 어머니, , 형수, 그리고 사랑했던 처녀와 마을 사람들. 사내는 이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만든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사내는 직접 이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가 되기도 한다. 기억을 조립해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은 이 사내지만, 피조물들은 그의 기억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피조물 나름의 삶을 가진다. 피조물들은 연극 속에서 이 사내의 기억이 놓쳐버린 부분들을 메워가고, 때로는 그 기억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이들뿐 아니라 관객들도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연극을 바라보며 스스로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나간다. 무대에 펼쳐진 작품은 깃털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연출가의 의도만 옳고 관객의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미국 철학자 넬슨 굿맨 식으로 말하면 극작 겸 연출가인 김학선의 세계에서 틀린 구성이 관객 A의 세계에서는 옳은 것일 수 있다.” 예술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끝없이 상승하는 이해 속에서 이뤄지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은 기억 속에 산재해 있던 원혼을 깨워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무우당 같다.” 부제목 'SHOW-MAN SHA-MAN'배우가 곧 무당이라는 뜻.

연극 속에 연극을 담은, 혹은 연극 위에 연극을 얹은 이 작품은 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극작과 연출을 겸한 김학선의 답은 이렇다. “연극은 어른들의 소꿉장난이다. 기억을 가지고 하는.” 물론 그의 답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의 연극은 이미 무대에 던져져 관객과 만나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극작으로 보나 연출로 보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는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 희미한 파스텔 톤의 천에 옷의 형상을 그려 넣은 원혼의 의상, 수몰지구의 호수 밑바닥을 형상화한 무대도 돋보인다.

 

 

 

 

 

작가인터뷰

"사람들은 다 바보 같아... 이 밑에 물고기 외에 아무도 안 살았다고 생각하거든... 여긴 예전에 내가 놀았던 공터도 있고 큰 아름나무도 있었고, 문간방에 누워서 처마를 보면 조그마한 제비집도 있었는데 ... 아무도 모를 거야. 이 밑에서 제비가 날아다녔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다. 좋은 기억일 수 도 있고 혹은 나쁜 기억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시실이다. 이런 가상의 공간에서 희곡 저 사람 무우당 같다는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아버지의 임신, 혹은 한 사람의 기억만으로 귀신들이 배우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가당치 않은 설정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연극적이다

연극은 시이고 꿈이며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구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극중극이라는 형식은 참 재미없는 형식입니다.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구성이죠. 연극이 연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에는 자기 얘기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한번 들어가 보자? 는 욕심에 색다른 시도와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성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굉장히 많이 고민하게 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배우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대본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어려워했다고 한다. 무당처럼 배우가 되라니과연 그러한 것들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배우들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학선의 의도를 정확하게 짚어 낸 것 같다 물론 많은 시간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지만.

언젠가 이런 공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연극에도 신이 있을까 하는 연극의 신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작가 김학선은 연극 그 자체를 믿는 것이 연극성올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치 무당이 자신의 몸 주신을 믿듯이. 희곡 저 사람 무우당 같다는 공간과 기억에 대한 사실적 소재와 연극적 상상이 동시에 표현된 작품이다 약속된 규칙을 거부하고 이 모든 것은 연극이니까 마음대로 상상하라는 작가의 의도는 사뭇 도발적이기도 하며 위험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은 굉장히 유쾌한 웃음을 연발한다. 가령 먹던 밥그릇을 뒤로 돌려 사과라며 ~아 먹는 것처럼 연극적 상상력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연극이란 어떠해야 하며 배우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희곡 저 사람 무우당 같다는 여실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연극 음악은 보통 가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그래야만하지? 하는이 작품에 쓰인 음악도 가사 자체가 잘 들려지는 않지만 중요한 장면에서는 가사가 들립니다. 그걸 찾는 것도 아주 재미있을 겁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은 이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배경음악으로서가 아니라 시작을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작가 김학선. 그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시도와 도전을 버려두지 않는다. 어떤 획일된 주제나 혹은 한 가지의 길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가치에 대한 발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표현해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연 그는 멈추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다. 작가 김학선에게는 규정화 되어있는 어떤 무엇이 없다. 그를 작가라고 해야 하는지 배우라고 해야 하는지 혹은 연출가라고 해야 하는지 어렵다. 그가 정말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는 만능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가 하고 싶어 하는 표현의 범위가 어느 것 하나로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작가로 어떤 날은 연출가로 또 어떤 날은 배우로, 그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김학선의 무대는 넓다.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친구의 이야기를 빌린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냥 이야기꾼이 되라고..”

연출가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꾼이 아닐 수가 있다. 작가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꾼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김학선 씨. 그의 창조적인 이야기꾼으로서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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