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노경식 '천년의 바람'

clint 2018. 10. 26. 08:45

 

 

역사란 결코 화석화된 과거가 아니다. 과거의 역사는 항상 오늘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파장으로 되살아나다.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진실 된 역사인가? 왜곡된 역사인가? 역사의 인식주체에 따라 역사는 발전하고 바뀔 수 있는가노경식의 <천년의 바람>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명제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천년의 바람>은 사관(史官)을 서사적 보고자로 설정하여 그 서사적 보고의 중간 중간에 후삼국 시대의 흥망과 관련된 사적 사건을 삽입시켜 놓은 서사극적 기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비극적인 삶을 다루는 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경애왕은 향락적이고 무책임한 인물로, 왕건은 지략이 앞서는 인물로 그려지고, 견훤은 도량이 깊고 덕망이 있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을 단순히 견훤이라고 볼 수는 없다. 두 명의 사관을 중심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 두 사관은 역사를 거짓 없이 기록하는 동일한 임무를 지니고 있지만,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성격적 대립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작가는 꺽다리 사관과 꼽추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생김새까지 대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대립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어, 마침내 각자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왕건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 후, 진실한 역사 기록을 고집하던 사관1을 죽임을 당하고 정치권의 요구대로 사초를 고친 사관2는 살아남는다.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한 정세 속에 견훤의 후백제와 왕건의 고려가 건국되어 후삼국을 형성한다. 33세에 찬란했던 백제왕국의 부흥과 삼국의 재통일이라는 큰 뜻을 품고 후백제를 세웠던 견훤은 신라를 공격하여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던 경애왕을 자결케 하고, 고려를 위협하여 왕건을 미복차림으로 달아나게 한다. 그러나 그 위세 당당했던 견훤은 그 말기에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된다. 아들에 의한 아비의 유폐는 아이들의 노랫말 속에 은유되어 불리우고 결국 늙은 몸을 고려왕 왕건에게 의탁케 되는 견훤은 아들 신검이 장악하고 있는 후백제를 함께 공략하자는 왕건의 협박성 건의를 받게 되고 이에 따른 사관들의 역사기록에 대한 논쟁이 거듭나게 된다. 숨 막히는 역사의 격변기에 백제부흥을 도모했던 후백제의 견훤,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재해석과 재조명이 이 작품 전반에 나타난다. 역사적 인물의 재해석과 역사를 바라보던 진지한 물음과 논쟁이 이 시대의 역동성에 맞는 군중씬과 더불어 조화롭게 그려지고 있다.

 

 

 

<천년의 바람>은 역사의 왜곡을 문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에 의해 채색되기 마련이고, 패배자의 삶은 승리자의 역사를 정당화시키고 튼실하게 하기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역사의 왜곡은 승리자의 횡포에 기인하는 것이지 사관의 나약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왜곡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이면서 내일의 문제이고도 하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승리자의 역사가 아니라 진실의 역사가 보아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왜곡을 통해, 왜곡되고 있는 오늘의 역사도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때, 김부식을 뛰어넘는 객관적 역사가 보이고, 오늘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야가 열리며, 지향해야 할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판단하는 진정한 역사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노경식

 

               

연 연출의 글 :

<천년의 바람> 작가 노경식 선생님을 연극계의 몇 안 되는 원로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 작품은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에 얽힌 소재로 진실과 허위라는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에게 쫓기던 위급한 상황에서 왕건의 부하장군이 왕건의 탈을 쓰고 위장해 죽음으로써 왕건의 목숨을 구했다는 정사를 모티브로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긴 견훤이 고려로 망명하여 왕건을 도와 후백제 신검을 물리쳤다는 정사를 견훤 탈을 쓴 가짜 견훤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물은 자칫 지루할 수도 무거울 수도 있다. 거기다 대작인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연출의 이미지를 충분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극의 템포를 빠르게 하기 위해 장과 장을 연결하고 배우들의 의상에서 동일성과 방관자적 죄의식을, 극중극을 통해 볼거리와 함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채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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