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밭의 한 송이'는 80년대 야만의 시절을 통과했던 지식인 내면의 응어리에 관한 자기 성찰적 고백이다. '오구' '바보각시'에 이르는 포스트 모던적 연극의 화려함을 잠시 거둔 이윤택은 모처럼 지성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발언한다.
주인공인 윤(윤석화)과 김요섭(송영창)은 독재에 무기력하게 굴종하지도, 치열하게 투쟁하지도 못했었다. 1980년 4월, 일간지 편집기자로 일하던 둘이 저지른 '거사'란 고작해야 '비가 내린다.… 삼라만상에'라는 날씨 제목을 사회면 톱으로 올려 암울한 세상에 우회적으로 발언한 것뿐이었다. 그 대가는 너무 컸다. 연행됐다 돌아온 여성은 등이 굽어졌고, 남자는 발목을 (그것도 '왼쪽'발목을) 삐었다. 망가진 것은 몸뿐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해 움츠리게 됐고 사랑조차 식었다. 그렇게 18년을 떨어져 보냈던 남녀가 대면한다. 모스크바로 떠난 여성 '윤'을 찾아간 김요섭이 석탄난로가 타는 잿빛 방에서 기억 속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꺼낸다.

연극의 묘미는 지난 시절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반성과 사랑에 대한 반추가 대위법의 두 선율처럼 만났다 떨어졌다 나란히 달린다는 점이다. 화톳불처럼 간직한 사랑의 불씨를 다시 지펴보려는 남녀의 이야기라는 껍데기는, '타락한 세상에 대한 긴장된 맞섬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알맹이를 감싼다. 연극은 "세상엔 '아직도' 쓸모없는 말들로 쓰레기하치장이 되어 있다"고 노골적으로 발언한다. 관념적일 수 있는 테마지만, 윤석화와 송영창의 무르익은 연기는 대사에 의존하는 연극을 볼만한 무대로 만들었다. 몸을 잃은 영혼의 고통을 절규하고, 그 고통 속에서 더 커졌던 내밀한 기쁨을 섬세하게 고백하는 연기들이 관객들 가슴에 다가온다. 윤석화 연기는 종래 연기의 가식을 상당 부분 털어내 진솔하다. 묵은 세월의 기억에 붙어있는 사랑이나 평화 같은 것들을 다시 꺼내, '바람 불면 함께 맞던' 시절의 희망을 끌어내고 싶은 바램이 연극에 진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한번 하자'고 여자에게 달려드는 남자의 몸짓은 연극전체를 관통하는 수사법의 대표 격이다. 해석의 여지가 좀더 풍부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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