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김명화 재창작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

clint 2018. 9. 25. 14:21

 

 

 

 

 

40분 길이의 이 작품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장의 주인공, 즉 햄릿. 오필리어, 분장사가 긴 독백을 하는 장면으로 구성됐다.

무대상황은 '햄릿' 공연의 마지막 날 분장실 안. 1장은 분장사가 오필리어 분장을 하고 있는 사이 대사를 연습하고 있는 햄릿 역 배우, 2장은 햄릿의 분장 때 자신의 역에 대해 넋두리를 하는 오필리어 역 배우, 3장은 관객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분장사의 독백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독일 현대극작가 하이너 뮐러의 '햄릿기계'를 연상케 한다. 극중 햄릿 역 배우의 독백은 끝없이 이어지며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정치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가수의 애절한 노래는 끝나지 않았건만 암살자의 총에 비명횡사한 저 아버지가 내 아버지인가, 새벽녘 호위해줄 경호원도 없이 바위 위에서 몸을 날려 온몸으로 으깨어져야 했던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인가. 아버지 어디 계세요?" 이 대사는 가치관의 혼돈 속에 빠져있는 이 시대 국민의 모습을 그려낸다. 또한 오필리어의 대사 중에는 남성지배 역사에 대해 독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작품은 햄릿과 오필리어와 분장사 각각의 독백은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나 각 장간 이음매가 헐거워 작품 전체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후기

오랜 세월 수정을 거듭하는 작품이 있고, 초연 공연으로 완결되는 작품도 있다.

2001년 가을에 정보소극장에서 공연하였던 이 작품은 후자의 경우다. 초연 당시의 제목은 햄릿, 죽음을 명상하다’. 그 무렵 정보소극장을 운영하던 몇 극단이 공연예술전용 공간지원에 신청했다 선정된 프로그램으로, 여섯 극단이 <햄릿>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였다. 내가 그 정보를 접한 것은 공연 두 달 전의 술자리, 우연히 정보를 접하고 관심을 표하면서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과욕이 없던 소박한 프로젝트였다. 큰 지원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그것을 여섯 팀이 나눠 써야 했다. 극장도 2011820일에서 925일까지 여섯 팀이 함께 사용하는 계획이었다. “햄릿업데이트라는 타이틀로 외부에 소개된 프로젝트의 이름은 근사했지만 실상은 워크숍처럼 극단의 젊은 단원들에게 작업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운영되었고 대부분 공동창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사정이었고, 공동창작이 아닌 작가로서의 내 몫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혼자서 현대화 하는 것이었다. 공연은 두 달 후. 대본을 빨리 쓰는 면도 아닌데 가능할까? 제작진에게 연습할 시간을 주려면 내게 남겨진 시간은 고작 이삼 주였다. 작품을 쓰기 전에 극작과정에서 고려해야할 몇 가지 사항을 연출을 맡은 이성렬씨와 상의했다. 가장 큰 요구사항은 분량. 여섯 팀이 극장을 나눠 쓰다보니 세 팀씩 같은 날 공연을 한다며 사오십 분 정도의 분량을 요구했다. 등장인물도 세 명 정도로 제작 방식이 간단하면 좋겠지만, 햄릿은 꼭 등장하면 좋겠다고 했다. 내용과 연관해서는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박정희인지 노무현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라이트 세력이 부각되던 보수정권의 초기였다. 고작 몇 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정치 상황에 국민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던 시절이라 그런 시절의 반영도 필요할듯하여 연출의 의견을 수용했고 작품 속 특히 햄릿의 대사에 그런 혼란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다 큰 역할을 한 것은 정치보다 죽음 아닐까.

 

 

 

 

 

그 무렵 나는 갑상선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휴식을 취하던 시절이었다. 무료하던 차에 집중할 만한 일이 생겨 즐겁게 작업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열흘 남짓 만에 작품을 탈고했다. 사오십 분의 단막 분량이라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이십대 이후로 그렇게 빨리 작품을 써본 적이 없어 스스로 놀라면서 탈고했던 기억이 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햄릿, 오필리어, 원작에 없던 분장사 세 명이고 그 외 원작에서 묘지기들이 가지고 놀았던 해골이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 해골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도 아니었고 갑상선 쪽은 진전이 느리다는 상식 정도는 있었지만, 심지가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햄릿>을 읽으면 죽음의 이미지에 우선 시선이 갔다. 그런 내 무의식이 창작과정에 은연 중 스며들었던 것 같다. 죽음은 불순물이 없는 순도 높은 주제였다. 그 순도 높은 주제와의 대결에선 극적 형식이라고 부를만한 관습적 틀도 정치도 무의미했다. 나는 보통 관련 문헌을 읽고 기존의 연극적 틀을 의식하며 작품을 오래 준비하고 쓰는 편이다. 겨울녘 돋보기로 태양 광선을 모으며 불을 지폈던 어린 시절의 놀이처럼, 내 안에서 무언가 모아지고 숙성되는 시간을 사랑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 나조차 기억할 수 없어지겠지만 내 안에서 축적되며 작품의 각을 형성하였을 순간들, 그 무형의 에너지들을 신뢰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돋보기를 들이댈 시간이 부족했으니, 불티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듯 단도직입 달렸다. 기본전제는 죽음이라는 보편의 운명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며, 모든 인물이 주인공 햄릿이라는 것, 그래서 죽음을 앞둔 세 명의 등장인물이 서로를 전복하며 그들 구불구불한 내장 속에 담긴 말을 공명하게 떠들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떠들어 댔으니 작품을 탈고하고 결정한 타이틀 역시 햄릿, 죽음을 명상하다였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연습 막바지에 나는 내가 죽음에 대해 썼지만 실은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음을 깨달았다. 작가의 말(공연 프로그램)에서 언급하였듯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절망과 분노와 장광설의 저 넋두리들 모두, 죽음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해서 출판을 준비하며 제목을 변경하였다.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세 팀씩 같은 날 공연을 올리다보니 제대로 된 리뷰조차 없다. 약간의 기록을 남긴다. 초연 당시 정재진(분장사), 김승철(햄릿), 박윤정(오펼리어)A, 백수광부 단원들만으로 구성된 B팀은 임진순, 김현중, 윤서정이 맡았다. 무대는 손호성 디자이너가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을 암시하듯 목조의 기둥을 양옆에 세워 좁은 정보소극장을 시각적으로 넓어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6편의 <햄릿>이 모두 이 무대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