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폴커 브라운 '변화 앞의 사회'

clint 2018. 9. 25. 11:16

 

 

 

베르톨트 브레히트, 하이너 뮐러와 함께 동독을 대표하는 극작가인 폴커 브라운에 따르는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동독의 체제를 인정한, 하지만 순응하지는 않은 작가. 브라운은 그의 동료작가들처럼 더 나은 동독에서의 더 나은 사회주의를 갈망했고 이를 위해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동독의 체제를 인정한 사회주의 작가다. 통일 전 창작 활동 중에 당으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던 그는 다른 수많은 동료들처럼 서독으로 떠나갈 수도 있었지만 동독에 머물렀다.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동독사회의 모순과 당의 불합리성에 눈을 감지도 않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타협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주 삐딱하게 생각하는 사람또는 뷔히너의 형으로 불렸다.

모순에 순응하지 않는 삐딱한 글쓰기는 고교 졸업 후 당으로부터 대학 입학 자격을 얻지 못해 3년간 노동 현장에서 힘들게 일할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과정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라이프치히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고교 졸업 직후 의무 실습 기간에 실습 종료 며칠을 앞두고 무기한 해고당한 뒤 입학 허가가 취소되었던 것이다. 그 후 라이프치히대학 철학과에 진학해 그가 쓴 시 <나를 위한 도발>을 슈태판 헤르블린 (Stephan Hermlin)이 예술원에서 낭독한 일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제적 위기에 몰렸으나 한스 마이어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제적 처분을 면했다. 이렇듯 그의 청소년기는 모순 세계의 중앙에서 시작되었다. 브라운은 자주 사석에서 자기 세대를 모순이 양육한 세대라 일컫는다. 청년기의 사회적 변혁, 정치적 압박과 부적절한 현실들이 자신의 창작 활동을 강요했다고 말한다. 그가 고교를 졸업한 뒤 동독에서 체험한 이러한 모든 사회적 모순들과 당에 의해 행해진 여러 부당 함들은 여기 <변화 앞의 사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묘사되고 있다.

 

 

 

 

폴커 브라운은 자신의 첫 희극 작품인 <변화 앞의 사회>1982년에 썼다. 하지만 초연은 동독이 아닌 서독의 도시 브레멘에서 1987424일에 이루어졌다. 출판이나 공연 허가를 받지 못한 그의 이전 작품들처럼 <변화 앞의 사회> 또한 동독에서 곧바로 공연될 수 없었다. 특히 극작품 <팅카(Tinka)> (1975)와 관련된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으리라. <팅카>는 베를린 소재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공연하기로 기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허설 중간에 상연이 금지되어 브라운의 강력한 이의 신청 후에 지금의 캠니츠에서 겨우 공연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그와 지인들이 막 기차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공연을 보기 위해 캠니츠로 갈 사람들은 기차에 타지 말라는 방송을 들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공연장으로 향했고, 그들이 그곳에서 본 것은 전부 타버린 극장이었다. 배우들의 총연습이 끝난 뒤 화재가 발생해 초연이 무산된 사건이었다. 브라운은 이 사건을 여전히 자신의 공연을 방해하기 위한 방화로 기억하고 있었다

<변화 앞의 사회> 는 서독에서 공연되고 1년 뒤 인 1988530일 베를린의 막심 고리키 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19908월에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의해 촬영되어 114일에는 동독의 DFF 방송국을 통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그때까지 동독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었던 <변화 앞의 사회>로 폴커 브라운은 1988베를린 신문에서 수여하는 비평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당시의 동독이 보다 향상된 국가체제로 도약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관해 관객에게 묻는다. 하지만 브라운의 작품에서 이러한 도약, ‘뛰어넘기는 과거의 특정 시대에만 한정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비평가이기도 한 브라운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나아가는 상황을 직시하며 그 사회가 어떠한 모순을 지니고 있고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보다 나은 사회로 진입할지에 관해 숙고한다. 그는 뷔히너 상 수상연설에서 빵을 주지 않는 혁명일자리를 빼앗는 민주주의사이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길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브라운은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 또한 자신들이 처한 한계상황을 왜, 그리고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지에 관해 숙고하게 만든다.

 

 

 

 

작품의 줄거리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동독 사회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사건의 장소는 특정한 도시나 지역 또는 일정한 영역으로 확정 되지 않고 있다. 사건은 세 자매의 죽은 아버지의 기일과 막내 이리나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이 겹친 어느 날 시작된다. 이날 오후부터 저녁때까지 집에서, 그리고 집 가까이 위치한 정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장면은 고요한 가운데 정적으로 시작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 어떠한 분명한 도발적인 사건도 없다. 브라운의 이전작품인 <키퍼>, <위대한 평화>와는 반대로 줄거리는 처음에는 활기 없는 분위기에서 시작해 작품 끝에 가서야 다소 역동적으로 변한다. 막이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단지 몇 개 장면으로만 되어 있다. 극 진행은 내용에 따라 크게 다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 무대는 정원 장면기본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연극의 발단에 속한다. 무대 앞으로 신문을 읽고 있는 빌헬름과 운전사 프란츠가 등장한다. 그 외 세 자매와 손님들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2단계는 비행 장면이다. 연극의 절정에 속한다. 세 자매의 남자형제인 발터와 그의 연인 메테가 등장하고 여러 인물들의 상이한 생각들이 서로 부딪친다. 3단계는 정원장면2’코미디 장면으로 되어있다. 극이 마무리되는 결말 부분이다.

 

브라운은 창작과정에서 브레히트의 희곡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적극 수용했다. 브레히트는 <서푼짜리 오페라>를 영국 극작가 존 게이의 작품 <거지 오페라>에서, <어머니>를 러시아작가 막심 고리키의 극작품 <어머니>에서, <카라 부인의 총>을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단막극 <바다로 가는 기사들> 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했다. 그리고 브라운은 이 작품 <변화 앞의 사회>를 러시아작가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본보기로 완성했다. 이와 같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각색하는 것은 자신들의 작품을 관객들이 더 신속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사용된 사회나 정치 상황의 소재를 자기 작품에 가져와 시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작품의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브라운은 희망 없는 상태에서 등장인물들이 오로지 모스크바만을 동경한다는 <세 자매>의 줄거리를 차용함으로써 국민들이 너무나 소극적이고 현재의 삶에 순응하며 막연히 유토피아를 추구하던 당시 동독의 사회상을 고발한다. 나아가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상이한 인생관을 보여 주며 그들을 채워 주지 않는,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거나 결코 행운이 따라 주지 않는 삶에서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이러한 무감각하고 부족한 삶에 대한 감정은 등장인물 이리나의 대사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극작론적인 특징은 아마도 브레히트와 브라운, 두 사회주의 작가가 처한 상황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겠다. 통제된 사회에서는, 함축적 표현을 사용하는 시나 소설과는 달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시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희곡 장르에서 신화전설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차용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라운의 <변화 앞의 사회>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체호프의 <세 자매>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인물 구성과 화재라는 소재, ‘옮겨가기와 같은 소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소재 · 구성상의 일치에도 브라운의 <변화 앞의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전진과 지속과정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기 위한 극이란 점에서 체호프의 <세 자매>와는 차별화된다. 당시 호네커의 집권 하에 있던 동독을 상징하는 하나의 공간으로서 을 표현해 모순적인 사회구조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그 극복에 대한 요구를 재촉한다. 그래서 타 버린 집은 동독의 멸망을 바라거나 동독의 몰락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사회로의 이행 기능성을 보이기 위한 장치로 이해된다. 상이한 나이와 직업을 가진 여러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는 좀 더 나은 상태로 옮겨가기 위한 순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이행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우선은 이행하는 상황에 존재하는 모순들이 극복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1970년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작품은 사회주의에서의 전진과 그 지속 과정에 대한 논쟁을 야기하는 것이다. 당시의 이러한 상태는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한탄을 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힘든 삶에 대한 표현은 단순한 고발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극복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보다 나은 사회로의 이행을 방해하는 불만의 대상들을 사회 발전을 위한추진력으로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브라운은 자신의

인물들이 현존하는 모순들에 관해 보고하도록 한다.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국가 의식을 다루면서 하나의 논쟁의 여지가 있는, 파괴력이 강한 정치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브라운에 따르면 시민들이 더 직접적이고 의식적으로 힘을 실행하면 그럴수록 국가 의식은 더 강해진다. 브라운에게는 정치의식의 퇴보가 아니라 정치적 대중의 퇴보가 더 안타까운 것이다. 이 작품은 행동하지 않음, 체념,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한 막연한(수동적인) 기다림을 비판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개인의 지속적인 사회적 전진을 위해 작용하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추진력을 요구하기 위해 쓰였다. 이와 같은 브라운의 작품은 계도의 색깔을 많이 띠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탁월한 지식으로 남을 깨치어 이끌어 주는 계도는 아니다. 강연이 아니라 토론과 논쟁 가운데 관객 스스로 일깨도록 하는 것이다. 브라운에게 등장인물들은 세계사의 점진적 흐름 가운데 놓인 하나의 요소로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심리적으로 세밀하게 형상화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전형적 입장의 대변자들이다. 이 작품은 단념과 불만족으로 점철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나이와 직업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인물들의 불만족을 드러낸다. 개인의 행복을 저해하는 대상을 명백히 밝혀내고 이를 함께 제거하길 바라는 작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개인적인, 사회적인) 이상적인 변화를 소망한다.

 

 

폴커 브라운(Volker Bra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