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조지 오웰 '1984'

clint 2018. 5. 14. 21:31

 

 

 

 

 

'20세기를 가장 잘 정의한 소설'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의 '1984'는 '빅브라더'의 감시 하에 모든 것이 통제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음울하고도 생생하게 담은 걸작. 당에 의심을 품게 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를 중심으로 전체주의 체제에 반기를 든 개인의 심리와 최후를 냉철하게 그렸다. 2014년 올리비에 연극상 희곡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이 작품은 원작의 '부록' 부분을 '북클럽에 모인 사람들의 토론'으로 치환해 원작의 묵중한 주제의식을 다양한 시점을 넘나드는 독특한 전개로 풀어냈다.

 

 

 

 

 

그의 가슴이 뛰었다. 당원들과 수십 번이나 그 짓을 했다고? 차라리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이었으면 싶었다. 그 어떤 것이든 당원들의 부패를 암시하는 것을 듣거나 볼 때마다 그의 내부에서는 강렬한 희망이 솟구쳤다. 당이 그 내부에서부터 썩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당원들이 불굴의 투쟁을 예찬하고 자기를 부정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부패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에게 나병과 매독을 전염시킬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당을 부패시키고 약화시키고 전복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리라! 그는 그녀를 바짝 끌어당겨서 함께 무릎을 꿇고는 얼굴을 맞댔다. “이봐요, 당신과 관계한 남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당신을 더욱 사랑할 거예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네, 이해해요.”   “나는 순결도 증오하고, 선(善)도 증오해요. 어떤 곳에도 도덕이니 덕성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하길 바라지 않아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뼛속까지 썩기를 원해요.”

 

 

 

 

 

미래의 어느 시점 '북클럽' 회원들이 모여 책의 내용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이들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참석자 중에는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도 있다. 토론에는 끼지 않은 채 뭔가 멍하니 생각하는 윈스턴. 토론이 마무리될 무렵 갑자기 불이 꺼지고 윈스턴이 쓰러지면서 연극은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간다. '빅브라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며 지배하는 사회에서 체제에 불만을 키워가던 윈스턴. 그에게 오브라이언이 나타난다. 오브라이언은 당의 고위 간부지만 반정부단체인 '형제단'을 비밀스럽게 소개하며 윈스턴을 형제단으로 이끈다. 그러나 윈스턴은 이내 체포돼 고문을 받게 된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이야기인 만큼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고 우울하다. '사상범, 반역자'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소녀나 '2분 증오' 시간이 되자 격렬한 증오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섬뜩하다. 잊힌 과거를 상징하는 노래로 등장하는 영국 전통 동요 '오렌지와 레몬'의 가락은 음울하게 귓가를 맴돌며 공포영화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하이라이트는 정체를 드러낸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고문하는 장면이다. 잔혹한 고문 방식도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당을 비판하는 윈스턴과 윈스턴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오브라이언 두 사람의 대결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뭘로 우리를 무너뜨릴 건가'를 물을 때는 극장 객석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다. 이 순간 관객은 윈스턴의 답을 기다리며 동시에 자신의 대답을 생각해보게 된다.

연극은 다시 북클럽 회원들의 토론장으로 돌아와 끝이 난다. 이들이 읽은 책이 뭔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윈스턴이 쓴 일기일 수도, 1984일 수도 있다. 북클럽의 호스트는 "윈스턴 스미스는 존재한 적 없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윈스턴은 토론장에 함께 있다. 미래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이지만 극중 미래와 과거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극중 현실과 환상의 구분도 모호하다. 이런 모호함은 1984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강하고 센 역할을 많이 했던 연희단거리패의 배우 이승헌이 윈스턴 역을 맡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저음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배우 이문수는 오브라이언 역을 맡아 목소리만큼이나 묵직하게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의 주인공인 윈스턴의 눈을 통해 국가에 의해 인간 기본권리가 훼손되는 세상을 그려나간다  국가를 지배하는 독재정당의 당원인 윈스턴. 그는 당과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당원들을 경멸하며 그가 맡은 역사의 삭제,  조작의 작업 또한 불신한다. 텔레스크린을 통한 24시간 감시체제. 스파이단과 같은 밀고 시스템의 적극적 이용. 빅브라더라는 허상. 기성의 체제에 불만과 불심을 품지만 체념과 복종에 길들여진 그는 어느 사건을 통해 인생에 큰 변화가 오게 된다.   

유신시절 판매금지 판정을 받았던 이 작품은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한다는 내용 덕택에 금서목록에서 제외되었던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비단 스탈린주의뿐만이 아니라‘  전체주의’ 그 자체이다.  국가가 다수, 또는 권력의 이름하에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침해하는 시스템. 군부독재 시절과 매우 유사하며, 아직도 그 그림자를걷어내지 못하는 북한의 현재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전체주의의 비인간성을 차갑게 표현하면서 다수를 억압하는 그들의 탐욕 또한 강조를 한다.  윈스턴이 여러번 되뇌이는 말 ‘희망은 무산계급에게’ 어떤 인물에게 부정을 당하기도 하며 그 자신도 그 믿음을 잃기도 하지만 희망은 무산계급에게 있다. 촘스키가 여러번 인용했던 이 작품은 1949 년에 발표되어 1984 년의 미래를 그린 작품이지만 2018년 현재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1984년은 우리에겐 이미 흘러간 과거지만   이 가상의 1984 년은 현재 진행 중이다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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