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편지들] 역자의 말
다른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극작가에게도 늘 동일한 고민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예술가들의 고민은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자는 소위 말하는 소재와 주제에 대한 문제이고, 후자는 스타일에 관한 문제다. 예술의 소재는 제한이 없는 게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무엇이든지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주제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작가 특유의 시각을 통해 정제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의 편지들]은 특유한 형식을 빌려 쓰여 진 작품이다. 순전히 편지만으로 구성되어진 보기 드문 희곡이다. 두 남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가지고 엮은 이 희곡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일대기이면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들 사랑의 뼈아픈 기록이기도 한 셈이다. 비록 현대 사회에서 편지란 일종의 죽어가는 예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내밀한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인 것만은 틀림없다. 작가 A.R. 거니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것이다. 그러나 편지라는 제한된 소재로 엮은 작품이라서 어쩔 수 없이 연극적 형태보다는 문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에는 지시사항이나 지문도 거의 없다. 좀 더 비판적 지적하자면 연극성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작가 자신이 극작 노트에서 언급했듯이 두 배우가 서로 쳐다보지 않고 관객을 향해 나란히 앉아서 대본을 읽는 것으로 되어 있다. 등장할 때와 퇴장할 때를 빼놓고는 두 배우는 전혀 움직임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연기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읽기 또는 낭독]이라는 개념으로 썼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Aristotle이 말한 연극의 3대 요소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품이 있고 연기자가 있고 관객이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두둑한 뱃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만큼 관객의 상상력 발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연극성의 부족이 작품의 공연을 불가하게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미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어 대 성황을 이룬 작품이다. 마치 연극성이 풍부한 다른 연극에 비하면 [Fast Food] 정도에 속하지 않겠느냐 하는 느낌을 던져주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배우가 긴 시간을 투자하여 연습을 하거나 대사를 암기할 필요도 없다. 다만 공연 전 몇 번의 절차를 점검해 보는 것으로 족하다. 시간이 없는 스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 잃지도 모른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고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참으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서 1시간 이상 관객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기란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배우가 각자 역량과 개성을 한껏 발휘해야만 할 작품이기도 하다.
제작자의 측면에서는 보면 꽤 신바람 나는 작품이다. 복잡한 세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화려한 의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일일이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 긴 연습기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적은 투자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쉽게 공연을 시작하여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연을 그만 두어도 부담이 없게 되어 있다. 배우들의 복잡한 스케줄에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되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른 배우들을 데려다가 쓸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제작자로서 얼마나 편한 작품인가!
그러나 연출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원칙적으로 이작품은 특별히 연출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출자가 없어도 그만이지만 굳이 있어야 한다면 퍽 당혹스러울 것이다. 연출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따지면 챔버 뮤직 정도로 생각하면 될지도 모른다. 챔버 뮤직에 뭐 거창한 지휘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이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이처럼 연출도 이 작품에서는 별로 할일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공연의 전체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연출로서는 연극성 부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것이 커다란 고민거리로 대두될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문을 배제함으로서 연출에게 모두를 일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원래 작가가 지문을 의도적으로 빽빽이 늘어놓는 것은 배우나 연출을 도와주는 몫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강한 목소리를 실음으로서 배우나 연출의 고삐를 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형식상으로는 연출을 하나의 [코디네이터] 이상의 역할을 주지 않으면서도 공연의 승패 전부를 책임지우고 있는 셈이다. 이럴 경우 연출의 선택은 자연히 출연자 선정에 기울 수밖에 없다. 만인이 보기를 원하는 소위 말하는 스타를 내세워 환상적인 소리와 리듬으로 승부를 걸려고 할 것이다. 어찌 보면 TV가 등장하기 전 라디오 시대를 연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상력의 발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꽤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TV가 등장하고부터 인간의 상상력은 퇴보를 거듭한 것이 사실이다. 제공되어 지는 시각으로 인해 상상력은 그만큼 할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작가 A.R.거니가 낡은 예술인 편지를 들고 나온 것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A.R.거니는 주로 가족관계의 어두운 면들을 들춰냄으로서 사회가 얼마나 피상적이냐 하는 문제를 추구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 <칵테일 마시는 시간><식당><완벽한 파티><지난여름에 했던 일><또 다른 안티고네> 등의 제목들이 보여주듯이 주변의 사소하면서도 낡은 의식들을 들춰내어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만들어준다. 그 외에도 <아이들><미국인의 생활에서><리챠드 코디><중년이라는 나이) 등등의 작품들을 가지고 있다.

제1부
앤디가 가드너씨의 집에 초대되어 멜리사를 알게 되면서 이들은 서로 편지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멜리사는 앤디가 생일 선물을 해준 것에 감사의 편지를 띄우고 앤디는 성탄축하 편지를 보낸다. 멜리사는 앤디에게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하고 앤디가 부모의 뜻대로만 행동하는 것을 불평한다. 앤디는 멜리사에게 자신은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멜리사는 파티장에서 앤디가 자신에게 춤을 신청하지 않은 것을 불평하고 앤디는 허리가 아팠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들은 서로 성탄축하 엽서를 보내고 둘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멜리사는 부모가 자신을 수녀원으로 보낸 것을 불평하고 앤디는 자신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앤디는 계속해서 멜리사에게 사랑을 보내지만 멜리사는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여러 남자와 연애를 한다. 앤디는 멜리사를 댄스파티에 초대하지만 멜리사가 여러 남자와 어울리는 것을 보고는 실망해서 당분간 편지를 중단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멜리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앤디에게 사과하지만 앤디는 답장을 쓰지 않는다. 멜리사는 앤디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있다고 단정한다. 앤디는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다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멜리사의 만나자는 제의도 거절한다. 앤디는 멜리사가 여성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비난하고 멜리사와 앤디는 서로 욕을 하며 심하게 싸운다. 멜리사는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앤디는 예일 대학에 입학해서 서로 안부 편지를 보낸다. 앤디는 학교 경기에 멜리사를 초대하지만 여러 가지 일로 인해서 자꾸 약속을 취소하게 된다. 막상 이들은 기대에 차서 만나지만 편지로 인해서 서로 환상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멜리사는 편지를 중단하고 서로 전화로 연락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앤디는 진실된 마음은 손수 쓴 편지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전화 연락하는 것을 반대한다.

제2부
멜리사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앤디는 하던 공부를 계속한다. 그리고 이들은 성탄축하 카드와 생일축하 엽서를 계속 교환한다. 앤디는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한다. 멜리사는 앤디가 일본여자와 살림을 차렸다고 생각하고 앤디를 비난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앤디는 답장하지 않는다. 멜리사는 다윈이라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 곧 결혼한다. 그리고 딸을 낳은 것을 앤디에게 알려준다. 앤디에게 축하의 편지가 오고 앤디는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앤디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계속 멜리사에게 안부 편지를 띄우지만 답장이 없다. 그동안 멜리사는 마약 과다 복용으로 요양소에 입원한다. 남편과 이혼하고 애들도 빼앗겨 버렸다. 멜리사는 요양소를 나와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앤디는 유명한 변호사가 되고 선거에서 승리한다. 멜리사는 개인 작품전을 열어 앤디를 초대하지만 앤디는 나타나지 않는다. 앤디는 상원의원이 되어 스캔들에 주의하기 시작한다. 앤디는 충직한 공인이 되고 자신은 타락한 작가가 되어버린 현실을 멜리사는 자학하기 시작한다. 앤디는 그런 멜리사에게 그림을 다시 그리도록 권유한다. 멜리사는 다시 개인전을 열지만 망한다. 앤디는 기금 모금을 위한 디너 파티에서 연설을 한 후에 멜리사를 만난다. 멜리사는 계속 앤디를 만나기를 바라지만 앤디는 다가오는 선거 때문에 고민한다. 다시 선거에서 승리한 앤디는 멜리사에게 연락하지만 멜리사에게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앤디는 멜리사 어머니로부터 주소를 알아내어 그녀를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멜리사는 추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외모와 꿈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줄 수없다며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얼마후 멜리사는 죽고 앤디는 가드너 부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앤디는 훌륭한 가족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일생동안 멜리사와 편지를 통해서 복잡한 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에게 삶의 균형감각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멜리사의 급작스런 죽음은 앤디의 삶에 큰 구멍을 남긴다고 말하고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은 드디어 오랫동안 멜리사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동갑내기 남녀 주인공 앤디(Andy)와 멜리사(Mellisa)는 초등학교 2학년 떄 처음으로 만난다. 멜리사는 아주 부유한 집안의 딸이지만, 어머니의 잦은 결혼과 이혼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 영향으로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녀는 결국 사랑을 갈구하는 화가로 성장한다. 한편 앤디는 중류층의 화목한 가정 환경 속에서 예일, 군 생활, 변호사 등 안정적인 단계를 밟으며 정치인이 된다. 그들은 20대 초반까지 엇갈리는 우정과 이성애를 가지면서 인생의 절친한 친구로 지낸다. 그런데 일본에서 군 생활을 하던 앤디가 일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멜리사는 상류층 남자와 결혼하여 두 딸을 낳고, 앤디 역시 제대 후 중류층 직장 여성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게 되면서 그들은 각각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멜리사는 이혼, 딸들에 대한 양육권 패소, 알코올 중독 등으로 불안정한 화가의 삶을 이어 가고 앤디는 상원의원을 거쳐 유망한 정치인이 되면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원해진다.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서로의 오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앤디와 멜리사.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헤어짐을 강요하고, 급박한 편지가 오고 간 후, 멜리사는 삶을 마감한다. 인생의 사랑이었던 그녀를 보내기 힘들어 하는 앤디, 멜리사는 그의 가슴 속에서 말한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고마워!”

1930년에 태어난 Gurney는 윌리암 대학 졸업후 미국 해군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다. 그는 개인적으로 군인 생활을 즐기기 위해 몇 개의 '쇼'를 쓰게 되고, 이때의 경험은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8년 첫 뮤지컬 'LOVE IN BUFFALO'를 예일대학에서 올린 뒤, Gurney는 상당한 호응을 얻게 된다.
이후 'THE DAVID SHOW'(1968) , 'SCENES FROM AMERICAN LIFE'(1970), 'CHILDREN'(1974)등을 거쳐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힌다. 1982년 뉴욕에서 공연된 'THE DINING ROOM'은 그에게 많은 찬사를 안겨 주었고, 1988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LOVE LETTERS', 'ANOTHER ANTIGONE' 'THE COCKTAIL HOUR'를 통해 전 세계의 집중을 받는다.
별명이 'Pete'(금고)인 A.R.Gurney는 별명만큼 '많이 쓰고 공연되는 작가'로 소문나 있다. 그의 작업은 주로 '중류층 미국인들의 솔직하고 삶의 모습과 문제점'을 담는 것에 있으며, 그의 꾸밈없고 소박한 작품은 많은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어지고 있다. Drama Desk Award, Rockefeller Award, 그리고 Lucille Lortel Award를 두 번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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