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태수 '나비는 천년을 꿈꾼다'

clint 2018. 3. 26. 15:06

 

 

 

김태수 작가의 신작 '나비는 천 년을 꿈꾼다'는 그 부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 말해 주듯 불교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인연, 그로 인한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의 문제를 땅 끝 마을에 위치한 미황사 라는 이름의 절과 그 옆 산장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특유의 탁월한 언어적 감각으로 다루어지는 번뇌와 해탈에 관한 이야기는 사건을 쫓기보다는 철학적 성찰에 더 중점을 두고 있으며 형식적으로는 최근 작가가 주력해온 "환타지 리얼리즘"(fantasy-realism)을 택하고 있다. 자칫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는 작품 중간 중간에 삽입된 환상 씬들, 춤과 음악, 그리고 전체를 관통하는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 등을 통하여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이미지"(image)는 이 공연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섬세하게 제작된 소품들,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 작품이 될 무대, 음향효과와 음악 등은 연기나 플롯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단순히 분위기 연출을 넘어서 심리를 표현하는 조명, 향냄새, 객석에 깔릴 낙엽 등으로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공연이 되도록 한다. 다시 말해서 "이미지 연극"이 리얼리즘 연기와 결합한다고 보면 된다. 그것을 편하게 퓨전 연극이라 부르기로 한다. 대개 이런 형식의 연극은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치우치기 쉬운데 한국적 정서에 맞는 탄탄한 대본은 그러한 함정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줄거리

병으로 아내를 잃은 동혁은 오로지 창작에만 매진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와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을 계획하면서 땅끝마을에 위치한 미황사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미황사의 주지를 만나 예전의 가르침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동혁은 그곳의 산장에서 묵으면서 산장 주인인 여정과 미황사의 또 다른 스님 해운을 만나게되고, 각각 다른 이유로 두 사람에게 매료된다. 여정의 비극적 아름다움은 그에게 삶에 대한 마지막 열정과 자신의 번뇌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해운은 번뇌를 짊어진 동혁에게 "대문을 연다고 콧구멍 없는 소가 들어오겠나"라는 화두를 던지며 다시 한 번 삶을 반추할 것을 요구한다. 정신적 고통에 육체까지 잠식당한 동혁과 여정은 알 수 없는 동지의식을 느끼면서 하룻밤 술자리를 같이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단 하룻밤의 인연으로 여정의 삶의 전부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혁은 감동 받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고백을 낯선 사람에게 남긴 여정은 다음날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 여정의 죽음으로 해운은 그 지독한 인연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게 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부질없기만 하다. 동혁은 비로소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고.....

 

 

 

 

이 작품은 불교적 차원의 인연과 윤회에 관한 수묵화같이 정갈하고 단아하며 슬픈 연극이다. 단 한번의 인연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사는 여정의 처절한 가슴앓이가 희곡 곳곳에 배어있으며 죽기 위해 땅끝 절 미황사에 온 동혁과의 피치 못할 아픈 만남이 또한 연극의 날줄로 엮어져 있다. 동혁과 그의 아내, 그리고 산장 여주인인 여정, 종업원인 과부 벌교댁, 미황사 해운 스님 등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인연이 서로 부드럽게 얽히며 가슴 아픈 슬픔의 흔적을 관객들의 마음에 내내 멍울처럼 쌓아가며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되는데...... 극의 종말에 이르러 등에 나비 문신을 새겨넣게된 여정의 상처를 알게 되고 그건 엄청난 크기로 동혁에게 다가간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현세와 내세 등이 바라춤과 함께 펼쳐지는 이 극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연극으로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여운이 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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