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쿠르트 괴츠 '호쿠스포쿠스'

clint 2015. 10. 31. 19:50

 

 

 

코미디 호쿠스쿠스(마술사가 주문을 외을때 쓰는 말)는 베를린에서 작가 자신과 부인 발레리가 주연을 맡아 2년이나 장기공연을 할 정도로 관객이 끊이질 않았다. 첫장면은 셜록홈즈의 범죄소설처럼 긴장감과 의문으로 가득하다. 두번째 장면에서 비로소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재판극이 된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기소된 피고는 방청석뿐만 아니라 판사석까지도 사로잡을 만큼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다. 피고는 사형이 언도될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증거와 확실한 상황증명으로 무죄로 빠져나올 수 없는 입장이나 그녀를 구하려는 뭇사내들이 (9번이나) 여인의 남편을 살인했다고 주장한다. 피고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질수도 있는 이 재판을 관객은 한시도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이라고 의식하지 않게된다. 오직 익살과 긴장감 속에서 사건의 추이를 쫓을 뿐이다. 이 작품과 1932년에 초연된 외과의사 히옵 프레토리우스와 비교해볼만 하다. 음악, 사랑, 인생을 즐기는 의사 프레토리우스는 의문의 자동차사고를 당한다. 셜록 홈즈의 예민한 분석에 따라 제삼자가 현장에 있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아니라 우연한 사고로 판명된다. "여보, 어찌하여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규정짓는 인자를 찾지 못할까" 하는 프레토리우스의 질문에, 부인이 "그야 당신이 어리석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답하자 너무 웃다가 그만 나무에 차를 들이받았던 것이다. 초기에 발표했던 단막극 '죽은 아줌마'를 괴츠는 1945몬테비데오의 별장으로 새로 손질한다. 엄격하고 고루한 선생을 아빠로 둔 순진한 딸은 오래전 남미로 떠나간 고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 이 엄청난 상속에는 순진이가 결혼전 애를 가져야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엄청난 돈은 교회의 소유가 된다엄한 오빠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고모는 이제 복수를 하는 셈이다. 순진이의 애인이 다행히 혼전의 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결국 이 집을 상속 받게된다. 1939년 할리우드에서 부르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괴츠는 L.A부근에 양계장을 차리기도 했다. 1945년 유럽으로 돌아오나 독일이 아니고 지기 조상의 뿌리가 묻힌 스위스에 정착한다. 1959년 미니 3부작 (복수, 가을, 혼다대)을 끝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던 배우이자 작가인 쿠르트괴츠는 무대와 작별한다. 우아하고 섬세하고 익살맞고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풍자적인 그 사람의 작품만이 무대에서 이제 우리의 눈길을 기다릴 뿐이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은 괴츠에게 이렇게 말했다. "쿠르트 괴츠 씨, 내가 일생을 바쳐 작품 쓰면서도 성취하지 못한 바를 당신은 이룩했군요.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말이오.”
독일 희곡 문학에는 비극보다 희극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적다. 하지만 레싱(Lessing)의<미나 폰 바른헬름〉을 비롯해서 클라이스트 (Kleist)의<깨진 항아리>와 〈암피트리온>, 뷔히너의<레옹스와 레나>등 고전 희극이 있는가 하면 추크마이어(Zuckmayer)의 풍자극<쾨페니크 대위>,, 뒤렌마트의 희비극 등이 다양하게 있다. 특히 쿠르트 괴츠의 노골적인 통속 오락 극은 독일의 연극 무대를 더욱 밝고 가볍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무겁게 닫혀 있고 굳어 있는 독일 사람들의 마을 괴츠만큼 웃음과 유머로 열어 주고 사로잡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괴츠를 흔히 통속 오락작가로 분류한다. 통속 오락극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괴츠를 비롯해서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엘리엇(Eliot) 등이 꼽힌다. 통속 오락 극은 18세기 궁중 중심의 고전주의 희극에 반해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맞아 사랑받았던 희극 장르다. 노골적으로 오락성을 내세우는 고품격 희극이다. 재미있고 뼈가 있는 대사가 작품을 이끈다. 통속오락 극에서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나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보다는 특히 대사가 중심이 된다.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극의 흐름이 다른 사회 여건에 휘말리는 경우가 흔한데 여성 투표권, 자유연애, 자유 결혼, 사회주의의 정치적 현황 등이 예다. 불바르 희극 (boulevard comedy)과 유사하다. 또는 괴츠의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상황 희극으로도 분류한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로 사건이 얽히고 음모와 술수, 믿을 수 없는 우연의 결과로 급작스레 상황이 바뀌는 희극, 그러므로 상황희극에서는 상황 변화 비중이 실린다.

 

 


“호쿠스포쿠스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지만 어원이 분명치 않고 해석이 분분하다. 현재는 마술을 부릴 때 쓰는 주술용어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신부가 성찬 예식 때 쓰는 기도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호크 에스트 에님 코르푸스 메움(Hoc est enim corpus meuni, 이는 나의 몸이니라)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는 이 소리가 "호-쿠스-포-쿠스 (ho-kus-po-kus)” 정도로 들렸을지 모른다. 예수의 성체를 뜻하는 이 말은 결국 주술을 욀 때 마력을 불러오는 용어가 되었다. 신교는 예배를 볼 때 라틴어를 몰아내고 토착어를 사용하면서 가톨릭의 경직된 의식을 빈정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17세기경 주술을 욀 때 "호쿠스포쿠스(hocus pocus)"란 말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말은 마법사를 뜻한다고 하는데 17세기말 《호쿠스 포쿠스(Hocus Pocus)-마법사》라는 책이 독일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우선 작품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 페어 빌레는 서커스에서 마술을 부리고 극 중에서도 마술을 보여 준다. 처음에 "수리수리 마수리” 정도로 번역했다가 이 또한 순수한 우리말도 아니어서 "호쿠스포쿠스”로 정하게 되었다.

 

 

 

<호쿠스포쿠스>에서 재판장 집에 창문을 통해 유령같이 남자 하나가 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출현을 정확하게 미리 알려 두었다. 이 남자는 재판장이 오늘밤 살해될 거라고 경고한다. 재판장은 런던의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재판장은 친구와 함께 유령 같은 이 남자의 마술에 노리개가 된다. 영국에서 건너온 변호사 친구는 순식간에 재판장을 죽이려고 찾아온 살인자의 혐의를 받는다. 재판장은 순간 친구를 의심한다. 당황한 친구는 경찰을 부르러 뛰어나간다. 그제야 남자는 재판장의 친구가 반대로 왜 살인자가 아닌지 마술을 부리듯 증명해 보인다. 한밤중에 온갖 마술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날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남편을 살해한 여인의 공판 날이다. 이 남자는 그 여인이 무죄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주인공 페어 빌레는 원래 서커스에서 마술을 부리고 묘기를 부리고 순식간에 그림을 그리는 재주 좋은 젊은이였다. 아그다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후 서커스를 집어치우고, 법률을 공부하고, '제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된다. 하지만 늘 아그다에 못 미치는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심지어 질투와 의처증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어느 날 이들은 보트 놀이를 나간다. 말다툼을 하다가 둘은 물에 빠지고 만다. 젖은 옷 때문에 아그다는 집에 먼저 돌아가고 페어 빌레는 뒷정리를 하고 천천히 귀가하기로 한다. 귀가 중 빌레는 피곤한 나머지 기차 안에서 졸게 되고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게 된다. 그런데 그곳 정거장에 우연히도 자기가 일했던 옛 서커스단이 공연을 위해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아끼던 애마를 만나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추억에 깊이 빠진다. 그날 저녁 자기도 모르게 서커스 공연에 휩쓸려 들어가 다시 한 번 예전 솜씨를 뽐내며 회포를 푼다. 그 사이 호숫가에 익사체가 떠오른다. 아그다는 자기 남편인 줄 알고 장례를 치른다. 실제 죽은 이의 부인이 나타나 설명하려 했지만 가난한 이 부인은 자기 남편의 장례가 부유하게 치러지는 것에 만족하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 뒤늦게 빌레는 아내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린다. 빌레가 죽은 줄로 알고 있던 아그다는 하지만 남편의 생사를 감춘다. 남편이 죽은 것으로 알려진 후 갑자기 그림들이 잘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그다는 이웃집 여자의 고발로 체포되고 남편살해 의혹을 받게 된다. 이로써 기상천외한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공방전이 벌어진다. 살해되었다는 남편이 살아 있으니 살인 혐의를 쓴 아그다는 진술을 계속 번복하고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면 간단히 실신해 버린다. 이에 변호사는 의뢰인의 살인 혐의에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하고 변호를 포기한다. 페어 빌레는 직접 아그다의 변호를 맡는다. 살인하지 않았다는 과부는 과부가 아니고 살해되었다는 익사자는 죽지 않고 이제 변호를 맡는다. 재판정은 끝내 사랑의 진실 게임장이 된다.

 

 

 

범죄 통속극'<호쿠스포쿠스>는 쿠르트 괴츠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상황 희극으로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1930년 우치츠키 감독이 처음 영화로 만들었는데 괴츠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부인과 함께 주인공도 맡았다. 이 영화는 독일어 버전과 영어 버전으로 동시에 제작되었다. 영어 버전의 제목은 “시한부 과부(The Temporary Widow)”로 물론 독일어 버전과는 다른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1920년 대 후반에 유성영화 기술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미흡한 상태였기에 이 영화를 찍은 1930년에는 녹음기술이 아직 걸음마단계였다. 주인공을 제외하면 배우들은 독일, 영국 영화에 모두 겹치기로 출연했다. 우치츠키 감독은 이때 무성영화도 만들었다. 시나리오는 연극 대본과 약간 차이가 있다. 연약한 키티 켈러만(연극 대본에는 아그다 크예룰프)은 보트 놀이를 나갔다가 남편 폴(연극 대본에는 힐마르 크예룰프)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남편은 별 볼일 없는 화가다. 이윽고 신원불명의 피터 빌(연극대본에서는 페어 빌레)이란 사람이 자신이 살인자라며 법정에 나타난다. 경찰에 억류되어 있던 빌은 도망친다. 살해된 자가 없기에 살인 사건은 결국 살인자가 없는 코미디임이 드러난다.
1953년 호프만<Kurt Hoffmann) 감독이 쿠르트 괴츠와 부인 팔레 리 마르텐스 주연의<호쿠스포쿠스>를 만들었다. 1965~1966년에 호프만 감독은 세 번째로 이 작품을 천연색 영화로 만들었다. '호쿠스포쿠스' 혹은 '남편 감추기'라는 제목을 붙인 이 영화의 주인공은 뤼만<Heinz Riihmann) 과 풀버(Liselotte Pulver)가 맡았다. 호프만 감독의 영회는 내용상 연극 대본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그다 크예룰프 부인은 유명 화가인 남편을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보트 놀이를 하러 갔다가 수영을 못하는 남편을 호수에 처넣어 익사시킨 협의다. 시체는 찾지 못한 상태지만 모든 상황증거는 이 여인을 남편 살해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점점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면서도 아그다는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한다. 변호인은 변호를 포기한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이즈음 담당 재판장은 살해위협을 받게 된다. 재판장은 친구인 영국인 변호사 그러햄을 불러들인다. 두 사람은 사태 수습을 의논한다. 한밤중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방문객이 찾아든다. 페어 빌레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사람은 두 사람에게 아그다 크예룰프의 무죄를 증명해 보인다. 그러고는 소리 없이 들어왔듯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다음 날 언론은 페어 빌레가 아그다 크예룰프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고 요란스레 떠든다. 빌레는 풍부한 언변과 유머러스한 달변으로 방청객을 매료시킨다. 증인의 증언으로 이 변호인이 바로 죽었다는 남편임이 발각된다.
페어 빌레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한다. 영화든 연극이든 이 작품은 살해된 사람 없이 살인자를 찾는 익살극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교훈극이다.

 

 

 

쿠르트 괴츠
저자 쿠르트 괴츠는 마인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계 스위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혈통을 물려받은 독일 여인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쿠르트를 데리고 고향인 독일로 돌아가 조그만 병원을 차렸다. 어머니는 쿠르트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음악적 재능이 돋보이자 의붓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첼로를 가르쳤다. 그는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의붓아버지의 권유와 주선으로 베를린 배우 학교에서 배우 수업을 받은 후 1907년 연극배우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뉘른베르크 극장에서 배우로 활약하다가 1911년 베를린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극단(베를린소극장, 레싱극단, 독일예술극장 등)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입센, 셰익스피어, 스트린드베리, 버나드 쇼의 작품에 주연배우로 출연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통속적인 작품(Boulevard- piece)을 쓰기 시작했다. 이름도 쿠르트 괴츠(Curt Goetz)로 바꿨다. 1912년 배우 니터(Erna Nitter)와 결혼하지만 1917년 헤어지고, 이후 여러 무성영화에 배우로 출연했으며 많은 무성영화 시나리오도 썼다. 1923년 팔레리 폰 마르텐스(Val?rie von Martens)와 결혼했다. 자신이 쓴 <잉게보르크> 공연에서 괴츠는 팔레리와 주연을 맡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주인공으로 무대에 함께 등장했다. 1927년, 늘 꿈꾸던 자기 극단을 창단해서 순회공연을 떠났다. 괴츠는 1911∼1933년 베를린에서 연기자로서 여러 배역을 맡아 활동했다. 처음 맡은 배역은 백 살 먹은 노인이었다. 젊은 브레히트를 이끌어 주기도 했던 베를린 최고의 연극 비평가 이어링(Herbert Ihering)은 괴츠에게 최고의 독일 코미디 연기자라는 귀족 칭호를 부여했다. 베를린에서 괴츠는 <잉게보르크>, <호쿠스포쿠스>, <산부인과 전문의 욥 프레토리우스> 등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고, 작품들을 영화로도 만들었다. 1933년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괴츠는 스위스에 머물고 있었다. 제3제국 즉 나치 독일의 언어는 괴츠가 즐겨 쓰는 유머 섞인 그런 언어가 아니라 무섭고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받아 읽던 독일 신문을 모두 사절하고 독일어로 작품을 쓰는 것까지 포기했다. 1939년 3막 희극 <사기꾼과 수녀>가 완성됐고 MGM 영화사와 계약하고 많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 여행 중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남았다. 집필에 공동 참여한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두 얼굴의 여인(Two-Faced Woman)>이 성공하자 영화사는 5년 계약을 제안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더 공부하겠다며 이를 거절했다. 더구나 그는 미국식 사고방식과 맞지가 않았다. 대신 비벌리힐스 근방에 양계장을 사들였다. 괴벨스나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낯짝을 들여다보느니 병아리 새끼들을 보는 편이 마음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염소젖을 먹이자 닭들은 노른자가 두 개 든 달걀을 낳았고 괴츠는 ‘기적의 닭 박사’로 크게 성공했다. 캘리포니아에 살며 많은 소설과 희극 작품을 집필했는데 그중 <호쿠스포쿠스>와 단막극 <죽은 아줌마>를 개작한 <몬테비데오의 별장>으로 크게 성공했다. 1945년 이 작품으로 팔레리와 함께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미니아투렌≫이 초연되었던 1958년은 괴츠가 70세 생일을 맞은 해이기도 했다. 괴츠는 그로부터 2년 후 죽었고 부인 마르텐스는 1985년 남편을 기리는 사업으로 코미디 작가에 수여하는 ‘쿠르트 괴츠 반지(Curt Goetz-Ring)’ 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5년마다 수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