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브라니슬라브 누쉬치 '수상한 자'

clint 2015. 10. 31. 19:39

 

 

 

 

 

 

세르비아 최고의 희극 작가로 알려져 있는 브라니슬라브 누쉬치 (Branislav Nusic, 본명 알키비야드 누샤: 1864년, 스메데레보 - 1938년, 베오그라드)는 어린시절부터 연극을 즐겼던 이른바 연극광이었다. 이미 20세에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희극 '국회의원(Narodnoposlanik)'을 발표했으나 작품에 드러난 신랄한 풍자로 인하여 상연된 것은 11년이 지난 뒤였다. 사실, 누쉬치의 희곡작품들의 대다수는 발표 후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무대에 오르게 된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 관리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풍자가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랍고 위험스러운 시도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만한 수준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서 누쉬치는 '수상한 자'를 비롯한 자신의 주요 희곡작품들이 러시아의 대극작가 고골의 영향 하에 쓰인 것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수상한 자'의 최초 원고에 '2막의 고골 류 희극'이라는 부제를 달아 작품의 영감을 고골의 '검찰관'에서 받았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고골의 작품들이 웃음 끝에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하는 진한 비애감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누쉬치의 작품들은 모두 행복하게 결말지어지며 작품 속의 웃음은 매우 건강하고 밝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작가가 부정적인 주인공들을 가차 없이 매정하게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크로아티아의 문학가 마또쉬는 이와 같은 누쉬치의 낙천적 경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는 고대 아테네인이나 현대 프랑스인들을 닮았다. 직업으로 재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기질적으로 항상 남을 웃기고 농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저 말하는 대로 쓰고 쓰는 대로 말하는데, 그가 자신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매료시키는 것은 그가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유사한 소재를 유사한 기법으로 묘사한 두 작가의 작품의 기조가 이처럼 다른 것은 일차적으로 두 작가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장중한 민요들이 세르비아 합창단에 의해 연주될 때 서유럽 인들의 귀에 좀 더 밝게 와 닿는다는 평가가 있는 이 작품은, 인상주의적 비교일 수도 있겠으나 누쉬치와 고골의 작품의 성향 차이를 이 같은 민족적 정서나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자 서문의 내용 중 특히 역자의 주목을 끌었던 것 은 1887년 혹은 1888년(저자 자신이 탈고 연도를 1887년 또는 1888년으로 기술하고 있다.)에 완성된 원고가 35년이 지난 뒤 무대에 올려 지게 될 때까지의 길고도 극적인 여정이었다. 그것은 마치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유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수상한 자'는 완성 후 십여 년 동안 세 명의 왕립극단 장에 의해 평가를 받게 되는데, 세 명 모두 작품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금기시되었던 왕조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 등을 문제 삼아 상연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세 명중의 한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누쉬치 자신이었다. (1900년 왕립극단장 취임). 작가 스스로가 극장 운영자의 입장에서 공연 불가 판정을 내린 작품은 작가의 서류함에서 또 1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1915년, 누쉬치가 스꼬플레 극장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었을 때 그 지역에 전란이 일어나자 누쉬치는 가족과 함께 피신하게 된다. 작가는 피신 도중에 짐을 줄이는 과정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수상한 자'의 원고를 버리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다른 작품들은 지인 집에 맡겨두게 된다. 그러나 그 집에 보관했던 작품들은 적군의 가택수색 과정 중에 모두 불타버리고 오히려 어느 알바니아인 집에 버리고 왔던 '수상한 자'의 원고가 그 집 주인의 보호 속에 살아남아 3년 후 망명을 마치고 귀국 한 작가 수중에 돌아오게 된다.


 

 

누쉬치 작품의 풍자 대상이 된 것은 구체적으로는 19세기 세르비아 왕조의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이지만,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수상한 자'들로 가득 차 있는 관료주의 그 자체이었다. 누쉬치 작품에서 묘사되고 있는 희극적인 상황들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생생하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실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희극적인 장면을 '누쉬치 작품에서처럼' 이라고 한다든지 또는 재치와 유머를 갖춘 사람을 가리켜 '누쉬치의 유머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세르비아인들에게 있어서 누쉬치는 해학, 풍자, 역동적인 상황 묘사의 대가로 각인되어 있다.

 

 

 

 

브라니슬라브 누쉬치 (Branislav Nuic )
1864년 10월 8일 베오그라드 출생. 초등학교 시절 지방 순회 극단의 공연을 보고 연극에 매료되었음 .매우 급한 성격과 다혈질 적인 성격의 보유자로 일생 동안 많은 도시로 이사 다니며 각각 다른 직장 생활을 하면서 희곡 집필을 하였음, 세르비아 전쟁 이후 알바니아, 이태리, 스위스에서 거주함.
주로 사회 풍자형의 작품이 많았으며 그 중 ‘민중의 대표’ (1883), 수상한 사나이 (1888)등은 우수한 작품이나 지나친 비판적 내용으로 당시는 공연을 못함 ( 1896,1923년에 각각 공연되었음) 67세가 되던 해부터 다시 왕성하게 집필을 시작하여, Ms.Minister (1931);Mister Dollar (1932); Belgrade Now and Never (1933); The Bereaved Family (1934); Pigs (1935); Dr.(1936) ; The Deceased (1937); Authority (1937- 미완성)을 발표하였고,1935년에 전 작품 희곡집을 발간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