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앞에 등을 들고’는 구원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묘사한다.
‘아무런 죄도 고통도, 치유될 상처도 없다면…또 어둠 속에 살아야 할 추악한
짓거리가 없다면, 그래서 완전무결하게 깨끗하다면 왜 우린 그곳에
(구원을 얻는 곳) 가야 하나요?’
사람들은 그곳에 가기 전날 더 많은 피를, 더 많은 악을 저지르기 위해 몸부림친다.
신은 무력하거나 오히려 인간에게 더, 죄 짓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곳에 가서 구원이 아니라 버림을 받고 쫓겨난다.
이때 사람들은 그 높은 곳에 의존해서 살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자끼리 서로
구원을 주며 살아가야 될 것을 깨닫는다. 휴머니즘 사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원의 마을 사람들은 충분한 죄를 짓기 위해 몸부림치며 구원의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떠나기 전날 밤 우보라는 타방사람이 마을에 찾아온다.
우보는 구원의 길을 함께 떠나려 하지만 마을 삶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절망에 빠져 있는 우보에게 직녀가 찾아온다. 직녀는 우보와 몸을 섞어
우보를 그 마을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갑자기 직녀의 남편 석보가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우보가 석보를 죽이고 직녀를 취하도록 부추긴다.
우보는 칼을 들고 석보를 찾아가지만 죽이지 못한다.
우보는 다시 절망에 빠지고 석보는 안도의 숨을 쉰다.

사람들은 모두 구원의 길을 떠난다. 사람들은 자기가 더 많은 죄를 저질렀고,
더 빨리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다툰다. 사람들은 자기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헐뜯는다. 늪녀가 갑자기 주저앉는다.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우보는 늪녀를 구하려 하지만
늪녀는 늪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여러 날 동안의 고행길 끝에 사람들은
동굴에 다다른다. 동굴을 지키는 개할멈은 사람들의 죄를 보고 동굴에
들어가게 한다. 그러나 우보는 지은 죄가 없어 들어가지 못한다.
개할멈은 우보의 손에 이빨 자국을 내주며 들어가라고 한다.
직녀는 썩은 이빨 자욱 하나로도 들어 올 수 있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온갖 음행과 죄가 덧없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구원자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절망한 사람들은 방황한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석보가 훔친 물건으로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부끄러움을 얻는다.
석보는 좌절하며 사람들을 떠난다. 눈 속을 헤매던 석보는 고통이 자신의 삶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석보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기로 한다.
사람들은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석보가 돌아오자 모두들 반가워한다.
석보는 거적 밑에서 늪녀를 발견한다. 늪녀는 부끄러워한다.
사람들은 늪녀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모욕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지만 사람들은 당당하게 앞선다.

일상적인 회화에서 詩的이며 은유적인 대사로, 구체적이며 논리적인 극작에서 비구상적이며 환상적인 의식세계로 발돋움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 연극은 죄악, 불안, 절망, 고통들로 병든 현대인의 절박한 구원의 소망을 역설적 수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원의 마을'이라 믿고 탈진한 모습으로 찾아온 '우보'라는 사내는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 마을은 구원의 마을이 아니었고 오히려 죄악의 마을이었다. 날이 밝으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구원의 城을 향해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의 城에만 들어가면 구원을 받으리라 믿고 있다. 그런데, 구원의 城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가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날 밤은 모두가 罪를 얻기 위하여 날뛰는 것이다. 살인, 강간, 시기, 질투, 자해.…. 마을은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런 속에서 '우보'는 온갖 유혹과 공포에 직면하게 된다. '직녀'는 남편인 '석보' 몰래 '우보'와 간통하므로서 죄를 얻으려 한다. ‘석보’는 그 누구보다도 추악하고 많은 악행을 저지른다. '구원'을 위해서는 그의 동서도 처형도 가리지 않고 살인해버리는 파렴치 한 인간이다. 날이 밝자 마을사람은 길을 떠난다. 몇 날 몇 일을 걸려 구원의 城에 당도하게 되는데… 원죄설을 인정한다면 인간에게는 罪를 씻는 삶이 필요하게 된다. 罪를 씻는 삶이란 남을 구제하는 삶인 것이다. 이 작품은 결국 죄를 짓고 구원을 받으면 된다는 현대인의 무모하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환상적 의식세계의 수법으로 대담하게 고발하는 실험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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