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상범 '청문'

clint 2018. 1. 8. 11:57

 

 

 

자결 의지로 한강에 투신한 한 사람, 우리시대의 아버지. 그는 왜 투신자살하려는 걸까.

그의 아내는 왜 남편을 저버렸을까. 그의 아들은 왜 아버지에게 등을 돌렸을까.

그의 딸은 왜 자살했을까.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잘 나가던 그 집안, 남들의 부러움 사던 그 집안, 왜 풍비박산이 난 것일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친구는 왜 찾아왔을까.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왜 신을 버렸을까.

그의 마지막 길에 이웃은 왜 배웅을 나왔을까. 그의 마지막 길에 어머니는...

그의 자결의식의 주례자, 혹은 방해꾼인 또 다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의 무자맥질 속에서 대한민국의 몸부림을 읽어라.

그의 절규 속에서 대한민국의 몸부림을 읽어라.

그의 변명을 통해 우리의 치부를 직시하라.

그의 절망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찾아라.

누가 세상을 바꾸는가. 누가 역사를 이끄는가.

나에서 우리, 개인에서 공동체로의 의식전환의 시대,

무한경쟁에서 상생으로의 가치전환 시대, 총선과 대선을 목전에 둔 정쟁의 시대,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연극은 무엇으로 화답할 것인가.

아름다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을 꾸리려면 나, 너 그리고 우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자. 역사 앞에서 청문하자. 저항하자. 죽지 말고 죽이자.

다시 살자. 제대로 살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일렁이는 강물을 표현한 무대 위에 누운 한 남자가 대뜸 소리친다. 무슨 억하심정을 품었는지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는 끊임없이 비명에 가까운 말을 토해내더니 더러운 세상 그만 살기로 결론을 내린다.

지금은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한 남자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도 행복한 가족이 있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던 가족의 가장은 한순간 세상의 낙오자가 됐다. 아내와 아들은 그를 버렸고, 어린 딸은 자살했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 그러나 어떠한 보답도 주지 않은 세상을 등지려 그는 다시 강물에 몸을 던진다. 남자가 무대에서 사라지자 검은 옷을 입고 분장으로 무서운 얼굴을 한 또 다른 남자가 무대 저편에서 일어난다. 세상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던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인생에 대한 청문을 시작한다

한강을 상징화한 공연장은 리본 모양으로 크게 접힌 스티로폼으로 가득 채워졌다. 더 이상의 무대 장치는 없다. 무대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없을 땐 정적인 강이 된다. 움직임이 있을 땐 강물을 표현한 스티로폼이 그들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동적인 무대가 된다은 개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떼어낼 수 없는 무엇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개인의 주변을 맴돌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나타낸다. 빨강, 파랑, 백색 단 세 가지 색 조명만이 사용됐다. 청문에 세워진 개인에게는 진실 자백을 하라는 듯 백색 조명이 쏟아진다. 저승사자 같은 차림새를 한 역사에게는 파란색 조명을 상대적으로 많이 비추어 가공의 인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빨간 조명은 개인이 인생에서 저지른 과오를 고백할 때 사용돼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청문]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상범 연출가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구체제와 신체제가 넘어가는 시점에 살고 있다. 이럴 때 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며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세대와 신세대의 중심추가 50대 아버지 개인이다. 처절하게 그를 청문해 시대 의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또한, 관객 모두 청문에 참석해 자신을 돌아보고 비판하는 시간을 마련했다며 집필의도를 전했다.

60여 분간 진행되는 공연은 비교적 짧다. 결코 단순한 작품은 아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대사는 역사가 개인의 삶과 연관된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낼 때, 개인이 자기 자신을 변호할 때 등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연극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공연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외면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명확한 경고와 각성의 메시지는 이 연출의 의도대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결 의지로 한강에선 남자, 그를 철저하게 추궁하는 또 다른 남자.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나아가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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