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1. 해
새벽을 노래하는 시가 나온다. 새벽이 오는 것을 "쑤아 쑤아"하는 의성어로 나타낸다. 그러다 새벽에서 아침이 오는 것을 다시 "쑤욱 쑤욱"하는 소리 등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햇살이 밝아옴을 알린다.
2. 엄마
봉사인 객이 하나 남루한 옷차림에 지팡이를 두들기며 노래와 춤을 추며 무대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간다. 이어 아이하나도 '움마'를 부르며 지나간다. 아이2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간다. 또다른 아이도 풍선을 들고 지나가며 같이 놀자고 외친다. 계속 아이들이 뛰어 지나가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기도 하며 지나간다. 그러면서 각자 "같이 놀자"라는 외침과 "나와라"등의 외침을 부르짖는다. 이러던 중 아이들이 게속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아이가 장난감 총을 겨누며 위협하면서 "서라"고 외친다. 그러다 아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어른들은 필요없다"라든지 "남자는 필요없다. 여자만 나와라"등의 대사가 든 노래를 한다. 그러다 모두들 다 나오라고 외치는 노래를 한다. 그리고 제자리를 맴돌다 서로 "울 엄마 봤니"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소리쳐 '엄마'를 찾는다. 그런 뒤 운다. 울다가 서로 굴렁쇠, 총, 오이 등의 장난감을 가지고 툭탁거리며 논다. 그러다 서로 마구 때린다. 모두들 운다. 이때 객이 등장하여 "바우새"로 가는 길을 알려 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객을 겁내하며 바우새의 반대쪽으로 인도한다. 그러다 속았다고 서로서로 이야기하며 객을 맴돌며 객을 뺑뺑이 돌린다. 지팡이를 분지른다. 객은 일어나 다시 노래를 부르며 간다.
3. 편지
사람들이 하나씩 차례로 편지를 들고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로를 부르며 사라진다. 그러다 서로 모여 보내는 전갈을 읽자고 한다. 그리고 이 전갈에 틀림없이 아름다운 분의 말씀과 약속시간과 약속장소가 있으리라 말하며 서로서로 전갈을 쳐다본다. 그리고 서로서로 읽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한 사람이 전갈을 쳐다본다. 그리고 전갈로 얼굴을 감싸고 운다. 계속 사람들은 차례로 운다. 그러다 왜 울었는지 서로에게 묻는다. 사람1이 글을 모른다고 대답한다. 다시 사람들은 웃는다. 그리고 서로 뺨을 때리기도 하고 인사를 한다. 이때 객이 바우새로 간다며 이들의 사이를 노래를 부르며 지나치려고 하며서 자신이 전갈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객을 두고 그분이라고 웅성거린다. 그리고 서로서로 이야기하다 객의 말을 와전하여 옮긴다. 그 뒤 서로 '미친놈'이라고 부르며 객을 싸고 돌며 쓰러뜨리면서 아주 밟아눕힌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간만 버렸다고 하며 촌장에게 가자고 결의를 한다. 사람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 한다. 객은 천천히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걸어간다.
4. 새님
여자촌장과 사람들이 새님이 오실 것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촌장이 멈추라고 명령을 내리고 여기에 새님이 온다고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기다리라고 한다. 계속 촌장은 소란스러운 사람들에게 인내하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다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 오이, 고구마, 같은 것을 꺼내어 먹는다. 촌장이 이에 주의를 준다. 다시 사람들은 지루하게 기다린다. 각자 용변을 본다. 다시 촌장이 주의를 준다. 그러다 사람들이 사다리를 만들어 촌장을 올린다. 사다리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거짓부리라하면서 이야기한다. 촌장은 믿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고
하면서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촌장이 새님을 맞으러 나간다. 곧 뒤이어 촌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새님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어 오면서 새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실성한 듯 춤을 춘다. 춤이 멈추자 벌거벗은 객이 등을 뒤로 하고 천천히 걸어와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아이들만 남아서 엄마를 찾는다. 여인들이 나오며 아이들을 잡아간다. 덩치 큰 여인들은 아이를 하나씩 들쳐업고 제 갈길로 흩어져 버린다. 아이들이 '엄마야'라는 메아리가 들린다.
5. 달
달을 노래하는 시가 천천히 나온다. 달이 솟고, 달빛이 부서지고, 산이 춤춘다는 구절과 의성어들이 연속된다.

길은 한마디로 난해한 연극이었다. 난해(難解)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뭔가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 어려울 뿐이지 그 방법에 길들여지면 아주 쉽게 풀려 버릴 수 있는 것이 실은 난해란 말이다. 무대 밝아지면 정면에 산길이 보인다. 길은 꼬불꼬불 이어져 무대 앞의 넓은 공간으로까지 뻗어온다. 무대 왼편,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장승이 세워져 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그 앞에 성황신을 모신 것 같은 돌더미가 쌓여 있다. 무대의 천장에는 작은 수박등이 수십개 매달려 있어 다소 환상적인 분위기. 어둠 속에서 수박등을 손에 든 사람들 나타나서 곧 사라진다. (이 연극에서는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차지한다. 극에서는 무대 밖이라 할 수 있는 무대 한켠에 전자올갠을 앞에둔 연주자가 앉아 있다. 극중의 음악은 이 연주자가 연주하는 생음악으로 모두 채워지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연극안내 팜플렛에 보면 1.해 2.엄마 3.편지 4.새님 5.달 이라고 나눠 작품줄거리를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을 읽고 이 연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연출 의도란 것도 관념적인 말 투성이다.<'길'은 언어의 논리가 아닌 감성의 세계로 전개하는 부조리의 세계다.>알 듯 말듯한 이런 글은 비구상작품을 해설하는 미술평론의 모호한 해설과 아주 흡사하게 닮아 있다. 연극도 구상이 있고 비구상이 있는가. 아니 부조리극이란 말은 들어보았다.
(연출자는 우리의 전통 연회 양식인 가면극 판소리, 굿, 과 같은 것, 다시 말해 동양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서양적인 연극 문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얘기인 것이다. 따라서 이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대사다운 대사를 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따라하기와 짧은 말의 반복과 몸짓연기가 놀이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침이다. 해가 떠오르고 산길이 또렷이 햇살 속에 드러난다. 장님 걸인이 등장. 걸인이 소리지르는 말뽄새를 보소. 이건 말이 아니라 소리다."나누노―! 누노―나누노."
장님이란 사물을 보지 못한다. 게다가 말이라고 소리지른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장님과 의미없는 소리의 외침이 벌써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아이들의 등장도 그렇다. 한명씩 "놀자"를 소리지르며 등장했다가는 사라진다. 7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무대에 나타났다가는 무대 밖으로 달려 나간다. 여자 아이 하나는 굴렁쇠를 들고 나와 놀자를 외치고, 다른 여자 아이는 인형, 또 다른 여자 아이는 고무줄, 멀대 같이 키 큰 남자 아이 하나는 머리에 바가지를 덮어 쓰고 나무칼을 손에 들었다. 다른 머저리 같이 생긴 남자 아이는 대나무총을 손에 들고는 "쏜다"라고 소리지른다. 여기에 뚱뚱한 여자 아이, 여자 같이 생긴 작은 소년(실제는 여자가 분장을 한 듯) 이 모두 한무대에 서게 되면 무덤같이 적막하던 무대는 돌연 활기를 띠게 된다. 하지만 처음엔 재미있고 쉽게만 보일 것 같은 연극이 관객들에게 왠지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질과 개그스런 표정연기와 몸짓에 소리내어 웃다가는 어느 순간 관객들은 얼어붙은 듯이 침묵해 버린다. 연극이 진행되어 나가는 폼새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이크,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난감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겁낼 건 없다. 사람이 만든 건 사람이 풀 수 있는 것이다. 작가나 연출자가 처음부터 관객들을 일상적 체험을 무시하고 난해함 속으로 몰아가면 관객들도 나름대로 이해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장님 걸인을 두들겨 패고 퇴장할 무렵부터 이 연극은 상상력에 기대어 이해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상상력에는 시간도 공간도 자유자재다. 먼저 기존의 서양식 연극의 문법이 갖고 있는, 갈등과 피라미드식 구성을 걷어치워버려야 한다. 그리고는 현재와 과거 미래의 시점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우리의 마당극이나 연희극을 보는 시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상상력이란 키를 손에 들고 나의 유년시절의 길로 거슬러 올라갔다.(물론 연극을 보면서)
유년시절 "길'은 늘 미지의 세계로 열려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닫힌 장소인 마당이 아니면 열린 공간인 길 위에서였다. 마당은 안정된 장소이지만 길은 미지로 열려 있고 왠지 두렵고 불안한 곳이었다.
대개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이 연극에서도 아이들은 길 위에서 낯선 장님 거지를 만나고 어른들은 미지의 새님을 막연히 기다린다. 우리 속담에 '길 떠나면 고생' 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길이 주는 이미지는 막연하고 두려우면서도 그것이 끝나는 곳에 미지의 그무엇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다. 마치 산마루 넘어 숨어 있는 해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하루종일 밖에서 놀다가 우리는 곧잘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 끼리 한창 놀다보면 그 놀이의 공간에 빨려들어가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때가 있다. 심지어 밥먹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집을 떠나 모험과 미지의 세계를 찾아 마을의 동구밖을 벗어나 길을 떠나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 길이 집에서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놀이는 신이난다. 물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길을 떠난 거리만큼이나 늘어날 것이지만.
길은 집과 반대의 개념이다. 길은 미래이고 집은 과거를 토대로한 현재인 것이다. 길이 희망이고 두렵고 불안한 그 무엇이라면 집은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곳이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는 늘 집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어머니는 거의 집안에서만 지냈다. 어머니는 그러니까 안정된 집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길의 이미지다.
이 연극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찾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길은 비로소 끝자락을 보이고 사라지는 것이다. 아이들의 쥐불놀이와 풍물놀이, 촌장과 제의 의식은 하나의 의도된 연출자의 장치일 뿐이다. 나는 상상력이란 키를 쥐고 이 연극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다. 연출자도 아마 내 이런 해석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연출자는 일방적으로 관객들을 난해함 속으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해석은 관객의 몫인 것이다. 비록 그것이 연출자의 의도와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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