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고나 '가난 포르노’

clint 2018. 1. 2. 22:13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무대는 쪽방 촌이다. 상수 쪽이 갓 임신을 한 신혼부부의 거실이고 하수 쪽이 노파의 거실이다. 노파 쪽의 방은 마치 쓰레기 더미 같이 보이고 쓰레기 속에 노파가 누워있어 쉽사리 발견하지를 못한다. 신혼의 남편은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와도 실직자라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당연히 부부의 티격 태격이 일상이 되면서 이웃 방의 노파관련 소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소문인즉 노파가 엄청난 부자라는 소문이다. 남편은 도스토예브스키의 <죄와 벌>을 연상하게 되고 노파 살해를 염두에 두게 된다. 죄와 벌이 집필되던 당시는 러시아에 사회의 불의를 시정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허무주의적인 초인사상이 유행했던 시기였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런 사상 소유자이다.

“다른 삶에게 해를 끼치는 노파가 있어. 그 노파는 자기가 왜 사는지 몰라.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돼. 그런데 도움을 받지 못하면 좌절하고 말 젊은이가 있어. 그 사람은 그 돈이 자기 손에 있다면 그 돈으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을 올바르게 가도록 인도하고, 가난한 삶들을 도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계획을 세웠단 말이야. 그 청년이 노파를 죽였다고 해봐. 작은 범죄 하나로 수천가지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그 청년의 잘못인가?”   

이런 생각으로 남편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활하는 노파를 방문한다. 가족 없이 폐지를 수거하며 생활하는 노파, 몸도 바르게 세우지를 못하는 늙어 꼬부라진 노파, 이 모습을 보고 범의의 불타는 젊은 남성에게 노파는 아이 엄마가 산달이 가까워오니 가져다 먹이라며 딸기 한 상자를 내민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는 자신의 재산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당신내외에게 주겠노라며 다정함을 표시한다. 남편은 충격을 받고 딸기를 들고 돌아와 아내에게 준다. 아내는 노파를 죽였느냐며 따져 뭇는다. 대답을 못하는 남편을 힐책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과 옆방에서 쓰러기더미 위에 엎으러져 숨을 거두는 노파의 모습이 대비가 되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심사평 - 21세기판 죄와 벌제목에 담긴 콘셉트 집중해 긴장감 유지 - 고연옥·장성희

 

2018 신춘문예 희곡부문은 완성도를 갖춘 응모작들이 늘어났다. 작품의 경향과 정조 면에서 눈에 띄는 차이점은 비극적이거나 감상적이었던 정서가 줄어들고, 사회와 인간성에 대한 풍자적 조롱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최종까지 거론된 작품은 세 편이었다.

가난한 앨리스들의 지하세계 모험을 다룬 공동의 쥐는 빈자들의 삶의 절망과 위로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뉴미디어와의 협업이나 설치미술 등을 통해 표현될 때 보다 매력적일 수 있겠다. 후반부에서 언니의 지하여행과 귀환 부분에서 이야기가 더 확장되지 못하고 주저앉은 느낌이다. ‘경비실은 갑을관계 속에서 을의 패배를 다룬다. 고용기회를 앞에 두고 벌이는 갈등 양상과 신참의 방관 태도가 리얼하다. 늙은 경비원의 수용과 체념이 담긴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애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태를 충실히 담아낸 데서 그친 아쉬움이랄까, 반격의 한 수를 바라는 결말, 삶의 안쪽 한 겹을 더 보여줬으면 하는 갈증이 남는다.

가난 포르노21세기 판 죄와 벌의 세계를 다룬다. 노파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젊은 부부의 자기합리화와 적의를 유지하기 위한 분투 상황이 씁쓸하다. 고독사를 두려워하는 독거노인의 동기와 그로 인한 선의뿐인 관계설정이 아쉽다. 그러나 제목에 담긴 콘셉트를 일관되게 집중하고 있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지속하고 확장시켜 가는 재능이 믿음을 주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한다.

이 밖에도 소우주’, ‘구멍’, ‘비디오를 사세요등 주목할 만한 작품이 많아 선자들은 행복한 주저 속에서, 희곡의 미래에 대한 낙관 속에서 심사할 수 있어 기뻤다.

 

 

 

당선소감 - 최고나

실패는 나쁜 거라고 배웠습니다. 포기하는 순간 패배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카페 구석 어딘가에서 자신의 글이 읽힐 날을 기다리며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뭔가를 쓴다는 건 저에게 습관 같은 거였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든 안 받든 저는 여전히 글을 썼을 겁니다. 추운 겨울이 따뜻하게 바뀐 건 오롯이 내 몫이 아님을 압니다. 미샤 노먼부터 욘 포세까지. 당신들이 없었다면 제가 감히 희곡을 쓸 수나 있을런지요읽는 재미를 알게 해주신 김성중 선생님, 보는 재미를 알게 해주신 김나정 선생님, 늘 배려해주시는 강옥희 교수님, 같은 꿈을 꾸는 문우들. 감사합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이자 날카로운 비평가 빛나씨, 든든한 지지자 가족들, 늘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감히 사랑 말고 어떤 단어를 당신들에게 떠올릴 수 있을까요! 올해 우리 가족이 된 운이와 곧 태어날 조카, 곁에서 지지든 비난이든 기꺼이 함께하는 친구들, 졸작을 고려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한 분 한 분, 5일을 함께하는 또 다른 나의 직장 식구들, 그저 감사합니다.

담담히 쓰겠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묵묵히 걷겠습니다. 다리가 아프면 조금 쉬겠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오래도록 쓰겠습니다. 지금도 추운 겨울을 버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당신들의 노고를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최고나 1980년 서울 출생 상명대 문화기술대학원 소설창작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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