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유진 '비듬'

clint 2018. 1. 1. 14:11

 

2018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대는 미용실이다 객석을 향해 거울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 손님 앉을 자리가 세 개이고 수건과 미용 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원장은 투게더라는 글씨가 보이는 자주색 에이프런을 걸치고 손님 머리를 손질하고, 더부룩한 장발머리의 손님은 정장차림이고 미용의자에 앉을 때는 역시 투게더라는 글씨가 인쇄된 백색 가리개를 걸친다. 당일 결혼을 하는 여성 손님은 꽃 관을 쓰기도 한다. 뻐걱거리는 미용실 문을 열고 나타나는 첫손님은 더벅머리 장발의 남성이다. 몸보다 커 뵈는 정장차림이고, 1년 가까이 머리를 감지 않아 비듬과 부스럼까지 생겼다는 설정이고, 머리 냄새가 심해 미용실 여주인은 물론 객석에까지 냄새가 전해오는 느낌이다. 잠시 암전이 되었다가 밝아지면 단정하게 깎은 머리모습과 미남형의 얼굴이 드러나면서 여성관객도 차츰 남성에게 호감을 기울이게 된다. 남성의 머리를 감지 않는 내력이 소개가 되고, 뒤이어 당일 신혼을 앞둔 신부가 머리 손질을 하러 등장한다. 원장여인과 남성손님 그리고 여성손님의 내력이 소개가 된다. 원장은 이혼녀이고 남성손님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더 이상 상처받기가 두려워 홀로 지내고, 여성 손님은 혼자 사는 것이 견딜 수 없어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 손님끼리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차츰 하나하나 생각차이가 나타나고 갈등요소가 되면서 남성의 “혼자 사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다.”라는 소리에 여성손님은 벌컥 화를 내며 남성과 다투기까지 하게 된다. 결국 원자의 제지와 결혼시간 촉박으로 다툼이 중단이 되지만 “혼자 살 자신이 있는가?”라는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갈등요소가 되어 부각된 연극이다.

 

 

 

 

심사평 - 극적 재미와 삶의 의미, 두 마리 토끼 다 잡아

 

희곡이건 시나리오건 글쓰기의 기본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체, 즉 스타일을 갖추는 것이다. 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작품이 '나는 정재훈입니다', '비듬', '면접'(이상 희곡), 'Sleep' (시나리오) 4편이었다.

'나는 정재훈입니다'는 불치의 병으로 어려서 죽는, 그러면서도 계속 태어나는 아이의 시선으로 삶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존재를 별과 병치시키면서 개인과 우주의 연관성을 이어가는 작가의 세계관이 넉넉함을 확인할 수도 있다.

'비듬'은 당장 공연돼도 무방한 수작이다. 희곡이 성격이며, 구체적인 대립과 갈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면접'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상황 극이다.

'Sleep'은 시나리오로서는 보기 드문 구성력을 보여주는데, 왜 결말 부분에 설명적인 암매장 장면을 넣었는지 안타깝다.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면 삶의 추상적인 불안과 공포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당선작은 공연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극적 재미와 삶의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 '비듬'을 당선작으로 선택한다. 앞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해 봄 직하다. (심사위원 이윤택)

 

 

 

당선소감 - 많은 사람 위로하는 작은 별 같은 작품 쓸 것

 

희곡 공부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설렘과 재미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갈 곳 없는 작품이 늘어갈수록, 뭐가 맞고 뭐가 틀렸는지 모른 채 혼자 싸우고 고민하며 글을 쓸수록, 공허함과 불안감은 커졌습니다. 지구에서 퉁겨져 나와 우주를 떠도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변함없이 돌아가는 지구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난 그저 우주 어딘 가였고, 지구 밖이었습니다. 비록 시작 단계지만 중력을 벗어난 삶은 아득하리만큼 고요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은 지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위로를 받은 기분입니다. 이 소감을 읽고 있을, 십 분 전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많은 작가 지망생 여러분. 조금만 더 힘냅시다. 우린 지구에서 내팽개쳐진 게 아니라,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처음부터 여기였습니다. 언젠가 이 아득함도 아름답게 느껴질 겁니다. 부족한 작품에서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사랑하는 우리 가족, 내 사람들, 너무 감사합니다.

스물일곱은 아직 많이 어립니다. 그러니 더욱더 열심히, 지구 밖 이곳에서 치열하게 빛을 밝히겠습니다.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밤하늘 작은 별 같은 작품을 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약력: 1991년생.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졸.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고나 '가난 포르노’  (1) 2018.01.02
이소연 '마트료시카'  (1) 2018.01.02
이수진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  (1) 2018.01.01
정재춘 '조용한 세상'  (1) 2018.01.01
오태영 '빵'  (1) 201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