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재춘 '조용한 세상'

clint 2018. 1. 1. 10:54

 2018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대는 다섯 가지 색상의 테이블이 무대에 자리를 잡은 커피숍이다. 다섯 명의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남녀가 등장해 연극을 이끌어 간다. 휴대폰 시대에 걸맞게 휴대폰 불통이 연극의 주제가 되고, 불통이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태가 되는가를 예측케 하는 연극이다. 극중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는 시나리오 작가가 손님들의 커다란 휴대폰 통화소리에 견디지 못하고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친 것과 동시에 커피숍 손님들의 휴대폰 불통이 전체 손님들의 휴대폰 불통의 원인제공자로 카페 손님들의 오해를 받게 되고 집단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휴대폰을 각자 신체에 대고 두드림으로 해서 다시 개통이 되면서 작가의 오해가 풀리게 되고 공연은 마무리가 된다.

 

 

 

 

 

[희곡 부문 심사평] 뛰어난 통찰력, 현시대 꼬집는 촌철살인

 

응모작의 경향은 다양했다. 가정 폭력과 후일담부터 인공지능 같은 초현실적 설정과 알레고리까지 형식도 다양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재가 음모와 폭력 속에서 전개됐고, 표면 이외의 다른 것은 읽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와 통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재춘씨의 조용한 세상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핸드폰을 소재로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한 작품이지만, 어느 순간 능청스럽게 세태를 꼬집고 현대인의 허약함을 성찰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그 작은 물건을 분실하는 순간 일상이 마비되는 공포를 한두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이 작은 물건은 어느새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배자가 돼 버렸다. ‘시끄러운 세상을 사느라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공감할 조용한 세상을 통찰하는 작가의 안목, 또 일상의 사건을 소용돌이처럼 몰아가며 현시대를 꼬집는 촌철살인의 대사나 구조가 돋보였다. 아직 세태 풍자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의 근원적 공포와 직면해도 좋을 것이다.

또 한 편의 문제작으로 마지막까지 고심한 작품은 언어 구사력이 빼어났던 조지민씨의 선인장 키우기였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재난이 현실에 매복해 있으나 그럼에도 작은 꽃 한 송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을 묘사했는데, 읽고 난 뒤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연극은 시가 아니다. 성속(聖俗)을 모두 갖춘 저잣거리의 예술이다. 아직 성()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이 작품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선인장 꽃으로 사막에서 피어날 것을 기대한다. 그 외에도 최원석씨의 ‘Ast, Ast, Ast’, 정희정씨의 옷장에 구더기등이 가능성 있는 후보작으로 함께 거론됐음을 밝혀둔다

 

 

 

[희곡 당선소감] 1만 시간의 道程아직 할 말이 많다. - 정재춘

일파만파라더니. 당선 소식을 받고 얼결에 지음(知音) 몇에게 연락을 보냈다. 드디어 네가 일을 내는구나,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이들은 나보다 더 날 예감하고 있었나? 아마도 빈말이겠지. 그래도 기분 좋다. 어느 창작자인들 자신의 천재성을 바라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고의 세월에 예봉(銳鋒)은 무뎌지고 자기 확신마저 바닥에 닿는 비참을 느끼며 산 지 몇 해 됐다. 난 왜 이 모양이지? 내가 어느 지점에 와 있나 회의하고 있을 때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을 알았다. 일가를 이루는 데 걸리는 필수불가결의 시간. 나는 1만 시간의 도정에 있다. 아니, 어쩌면 2, 3만의 시간을 향해 무작정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할 말이 많은 인간인 모양이다. 앞으로 더 많은 말을 할 것 같다.

자발적으로 자본의 타자의 길로 접어든 철없는 남편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아내에게 못내 미안하다. 이번 당선이 조금이라도 아내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 이재명 교수님, 양수근 작가, 정지아, 김민경, 그 밖의 글 도반들. 또한 극단 삼각산식구들. 감사할 분이 너무 많다. 빚진 분이 너무 많다.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점 심심히 사과드린다. 모자란 작품 뽑아주신 조선일보사와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1965년 서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2011년 계간 미네르바신인상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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