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의 가마고개에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희곡 ‘파행(跛行)’은 길행(吉行) 즉, 혼례를 마치고 우귀(于歸)하던 양 집안의 가마와 신부가 올바로 제 길로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즉 파행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 이분법적이고 집단 이기적인 명분과 허위의식은 현재에도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을 통해 그 정치, 사회적인 병폐를 진단 및 비판과 함께 허례의식으로 잘못 인식되어진 조선시대의 참 예(禮)의 의미와 가치를 전통 예 형식의 고증과 재현을 통해 저세함과 동시에 보다 높은 완성도의 공연으로 관객에게 수준 높은 관극체험을 제공한다.
* 이 극은 경상도 지방의 내려오는 가마고개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설화는 당파를 달리하는 두 명문 사대가 집안의 가마가 높은 령, 좁은 외길에서 맞닥뜨린 것에서 시작한다. 두 개의 가마에는 혼례를 치룬 각각의 신부들이 타고 있었고, 좁은 길로 인해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해야만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문대대로 척을 지고 살아왔던 두 집안은 먼저 길을 비켜주는 것이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하게 된다. 절대 길을 못 내주겠다는 두 집안의 한결같은 고집은 결국 가마 속 신부에게 자살을 강요한다. 두 집안은 결국 신부를 절벽에 떨어뜨려버리고 빈 가마를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극은 200년이 지난 현재의 어느 밤. 가마고개에서 노루사냥을 하는 의원 두 명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루를 사냥하고 난 두 명의 의원은 노루니, 고라니하며 지루한 논쟁을 하고, 신부들의 혼령이 스며들 듯 흘러나와 이들을 데리고 혼례직전의 과거로 간다. 명문사대가의 집안임을 증명하듯 화려하고 격식 있는 혼례가 펼쳐지고, 의원들은 신부의 시아버지로 분해 신부들을 데리고 우귀(于歸: 신부를 신랑 집으로 데려가는 것)를 한다. 두 가마는 가마고개에서 맞닥뜨리고 곧 상대편 가마가 집안의 원수임을 알게 된다. 일순 숙종 연간의 예송논쟁 동안의 어전이 펼쳐지고, 이 두 집안이 원수가 되게 된 시발점이 밝혀진다. 의원들은 서인의 영수와 남인의 영수로 분해 죽은 임금의 복제(옷)을 가지고 논쟁하다 돌이킬 수 없는 원수를 지게 된다. 다시 가마고개로 시간과 장소가 바뀌고, 두 가문은 먼저 길을 양보해 줄 것을 주장하며 대치상태에 들어선다. 소식을 들은 각 집안의 문파의 무리들이 몰려와 천막을 치고, 응원하기 시작한다. 첨예하게 대치된 상태로 몇 달이 흐르던 어느 날, 이 고개에서 숯을 구워먹고 살던 숯막아비가 이들 가문의 싸움에 휘말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의 어린 아들, 딸을 남겨둔 채. 그날 밤, 찌는 듯한 더위와 좁은 가마 속에서 힘겨워 하던 신부들이 울음소리에 이끌리어 밖으로 나왔다가 순임을 만나고, 도와 염을 해준다. 그 사이 순석은 누이를 기다리다 싹이 돋은 감자를 날로 먹어 복통을 일으킨다. 신부들은 싸늘히 식어가는 순석을 살리기 위해 옷을 벗겨 몸을 부비기도 하고, 자신들의 몸으로 체온을 나누기도 하지만 끝내 순석은 죽고 만다. 그리고 이 광경을 의원들이 지켜보게 된다. 한없는 대치상태에 지쳐있던 두 가문은 신부를 죽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암묵적인 합의에 다다르고, 신부에게 가문을 위해 죽어줄 것을 강요한다. 지는 저녁놀 속 감감히 죽음을 기다리는 두 신부 뒤로 거대한 열녀비가 세워지고, 두 집안은 빈 가마를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다시 200년이 지난 현재, 의원들은 여전히 노루를 사냥하고 있다.
순임이 서치라이트 불빛에 쫓기에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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