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에드워드 올비 '바다 풍경'

clint 2016. 11. 7. 10:59

 

 

 

 

 

제1막
낸시와 차알리는 결혼 말년기의 편안한 노년을 맞고 있는 부부로서, 멀리 바다가 보이는 모래 언덕에 누워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낸시는 이러한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살자고 차알리에게 제안한다. 그 또한 어렸을 때 바다속 풍경과 삶을 동경하여 물고기가 되고 싶은 꿈을 지니고 있었던 소년이었지만 단조롭고 안정되지 못한 생활이 될 것을 염려한 차알리는 찬성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되는 낸시와 차알리와의 대화는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말상대를 위한 말싸움 격으로 진행되지만, 정작 이들은 싸우지 않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여러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감있고 끊임없이 계속한다. 이 때에 낸시와 차알리는 레슬리와 세라를 발견하는데 (그들은 도마뱀이며 부부이다) 처음 매우 놀란 그들은  몽둥이로 쫓아내려고 노력한다.

 

 

 

 

 

제2막
차알리 부부와 레슬리 부부는, 처음에는 서로간 대화를 나눔으로써 이상하고 놀라움을 각각 표현, 경계하고 있었지만, 차차 그들간에 의사소통이 됨을 알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레슬리와 세라는 그들의 삶이 단조롭고 싫증이 나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고 있던 중이라고 말한다. 여러 이야기를 통해 친해진 이들은 서로간의 풍습과 모습들의 차이점에 대해서 의아해 하고 우스워도 해 가면서 많은 질문을 한다.그러나 사람과 도마뱀 사이에는 이해하기조차 힘든 수많는 차이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늘을 나는 새, 비행기, 인간의 가슴, 데카르트 등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세라에게 레슬리는 자세하게 설명하려 들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차알리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대화는 계속되어 인간과 동물(파충류)에 대한 진화설로 이어지는데 결국 이들은 처음에는 모두 같은 연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로써 레슬리와 세라가 차알리 부부에게 지니고 있었던 성냄을 잊고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더욱 밝은 분위기의 긍정적인 작품은 올비에게 두번째 퓰리쳐 상을 안겨준 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챨리와낸시 부부가 삶의 방향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이번에도 안일한 삶에 안주하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로 부터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찰리이다. 작품 제목은 극의 세팅을 의미하지만 또한 '도피'의 의미로 해석될수도 있다. 이때 레슬리와 사라부부가 바다로부터 진화하기 전의 인간의 상태인 말하는 도마뱀의 모습으로 올라온다. 그들도 조용하고 친숙한 바다 속의 삶에 안주할 것인지 경이와 두려움에 가득찬 세상에 머물것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찰리는 깨달음을 갖게 되고 그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인간으로 변신하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경이와 환희도 있지만 실망과 좌절, 슬픔 또한 포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삶과 현실을 직ㅁ년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이 깨닫게 되면서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극은 막을 내린다 .

 

 

 

 

 이 작품들은 미국 사회의 핵을 이루는 기본체제인 가정이 병들어 있으며, 불모의 상태이며,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이 가장의 권위와 구실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공격하고 있다. 이 작품들이 갖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환상의 파괴적인 속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원 이야기>의 피터로 부터 시작해서 이 극들의 남자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안일함에 안주하여 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이들이 결국 현실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개안을 하게 되는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한 자기와의 직면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느정도의 고통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점점 긍정적이 되며 오히려 많은 희극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미국적 꿈>에서 가장 부정적이고 허무적이다. 왜냐하면 등장 인물들에게는 아무런 깨달음이 일어나지 않으며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할머니는 무대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위의 작품들이 비교적 사실주의 성향을 띄기는 하지만 올비의 부단한 실험성은 각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부조리 극의 영향을 가장 많이 보이는<동물원 이야기>와<미국적 꿈>에서의 언어의 유희와 상징,<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의 제의적 구조, <바다 풍경>에서 말하는 도마뱀의 사용, 그리고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희생된 아기의 모티프 등은 현대 미국 연극이 안고 있는 한계를 용감하게 직면하며 극복하려는 노력의 표출이다. 이러한 그의 과감성은

<작은 앨리스>, <박스-마오-박스>, 그리고 여러 소설의 각색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노출된다. 이렇게 볼때 그는 60년대의 폭발적 실험 연극 부흥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었으며 그의 연극에서 부단히 추구하였던 직면의 주제를 몸소 실천했던 극작가라고 할 수 있다.

 

 

 

 

[역자의 글] 신정옥 - <<노을 속에 얼어붙은 목소리>>
1975년 새해를 맞이해서다.뉴욕에 있는 슈버트극장에서다. 그 갈채는 우뢰 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그 감동은 모래톱을 뒤덮는 출렁거리는 강물과도 같았다고 한다. 올비의 <바다풍경>의 막이 내리자, 갈채 소리와 감동의 물결은 관극한 사람들의 가슴을 한없이 쳤다고 한다. 년전(年前)이다. 뉴욕에 갔을 때, 올비 자신이 연출한 그 감동적 무대를 보려고 했으나 이미 막이 내린 때라 나의 간절한 숙원(宿願)을 이루지 못해 내 마음이 겨울바다처럼 삭막했던 일이 새삼스럽게 기억된다. 이해도 머잖아 빗장을 잠그게 되는데 <바다풍경>을 우리 나라의 무대에서 보게되니 기대와 기쁨 또한 적지 않다. 나의 기대와 기쁨을 치솟게 한 것은 <바다풍경>이 우리 나라에서 초연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올비의 최신작이라는데도 있지 않다. 항상 미국의 현실에 끈덕지게 밀착하면서 그 절실한 시대의 고뇌(苦惱)를 언제나 의식하고 묘파(描破)하는 그 주제(主題)의 신선함에 있으리라.
<바다풍경>의 번역이 끝날 때까지 여주인공인 낸시의 얼굴이 내 눈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의 풍경은 내 가슴을 적셔주곤 했다. 낸시에게는 젊음이 있었다. 꿈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피와 숨결이 가슴 속에 소용돌이 쳤다. 말하자면 지난 날의 그녀의 삶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들판이 아니라 꽃밭의 계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모래밭 위에 앉아있는 낸시는 생존의 기반에 얽매여 있는 자기 그림자의, 그리고 노쇠해가는 자기의 삶과 아무런 의미없이 마멸되어 가는 자기의 생명을 발견하고 놀랜다. 낸시는 생의 모래밭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친다. 그것은 하나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불꽃 속에 타오르지 않으면 안되듯이 상실한 인간의 고향을, 자기 존재의 얼굴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낸시는 자기 가슴에 바다풍경이 자리잡기를 목마르게 갈구한다. 바다의 숨결을 바다의 푸르름을 바다의 외침을 그리고 바다의 정열(情熱)을 말이다. 그러나 낸시가 외치는 소리는 끝내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 얼어붙은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소외(疏外)와 고독(孤獨)>>올비 역시 손튼 와일더나 윌리암즈처럼 초기에는 단막극(單幕劇)으로 명성을 얻었고, 우리나라에도<동물원(動物園) 이야기><미국(美國)의 꿈>같은 단막극과 최초의 장막인<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등이 소개되어 올비가 한국관객에게 생소한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경향은 기법에 있어서나 사상적 측면에서 볼때 부조리극(不條理劇)에 가깝지만 그가 사실적(事實的)인 것을 완전 배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조리(不條理) 작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이클 루텐버그나 노리스 호오톤 같은 이론가(理論家)들은 올비를 전후세대(戰後世代)를 대변하는 반항적(反抗的) 극작가(劇作家)로 규정하고 있다. 올비를 이처럼 반항적(反抗的) 극작가로 보는 것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 때문이다. 올비는 오늘의 미국사회(美國社會)와 미국인(美國人)이 앓고 있는 소외(疏外), 좌절(挫折), 고독(孤獨)의 문제를 매우 비관적(悲觀的)인 각도에서 해부한다. 그는 초기 단막극에서 주로 미국사회의 이단자(異端者)들을 다루었는데 이는 사회악(社會惡)에 감염(感染)된 사회병리(社會病理)를 파헤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그는 미국(美國)정신의 불모성(不耗性)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질환(疾患)을 노정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묘사하는 삶은 지치고 그러면서도 불만에 가득찬 우리시대의 아픈 삶이고 이런 삶을 비관적(悲觀的)인 각도에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올비의<미국(美國)의 꿈>과<모래상자>같은 작품은 현대미국사회를 파헤친 와일리의<독사뱀의 세대(世代)>나 리스먼의<고독(孤獨)한 군중(群衆)>에 나타난 사회문제를 극화(劇化)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올비가<미국(美國)의 꿈>의 서문(序文)에서 "이 작품은 미국적 상황(狀況)에 대한 분석(分析)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진실(眞實)된 가치(價値)가 인위적(人爲的) 가치(價値)로 대체(代替)되어가는 것에 대한 공격이다. 즉 자만(自慢)과 가혹성(苛酷性)과 거세(去勢)와 공허(空虛) 그리고 이방적(利邦的)인 우리 사회의 모든 허구(虛構)에 대한 통렬한 저주를 담고 있다."고 한 것은 그의 중요한 작품세계의 일부를 요약한 말이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부도덕성(不道德性), 이기주의(利己主義), 진실한 삶의 부재(不在) 등을 상징적(象徵的)이고 시적(詩的)이며 감동적(感動的)인 대사로 그리고 있다.

 

 

     

에드워드 올비

[작품설명] 1975년 1월 26일 뉴욕 슈버트 극장(Shubert Theatre)에서 에드워드 올비 자신(自身)의 연출로 막을 올린<바다풍경(風景)(Seascope)>은 관객과 극평가의 환호와 갈채를 받은 이해의 최우수 작품으로 등장했다. 에쿠우스(피터, 쉐퍼작) 아일랜드(아돌후가드 작) 등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물리치고 올비는 이 작품으로 75년도 풀리처 상을 획득했다. 1959년 동물원 이야기(Zoo story)로 미국 극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올비는<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로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다졌으며 <아메리카의 꿈>, <모래상자>, <베시스미스의 죽음>등 일련의 부조리연극 계열의 작품들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발표하여 미국의 새로운 목소리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올비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한편 극형식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실험을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에 일관되어 나타나는 테마들은 주로 인간 실존의 허무, 부부간의 위선과 심리적 갈등, 의사소통의 불가능,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감 등인데 특히 살갗을 벗기는 듯한 통열하고 박력있는 대사와 신랄한 위트로 엮어간 희극성, 심리적 갈등을 교묘히 처리해 나가는 극작술은 일품이라 할 수 있다. 바다 풍경은 원숙기(40대(代))에 들어선 그의 최신작이며 대표작으로 부부의 꿈(幻想)과 사랑과 섹스를 올비 특유의 기발한 익살과 유려한 시적 다이얼로그로 펼쳐나간 전통과 반극(反劇) 사이를 넘나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