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전. 추리할 수 있는 반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조금은 사회비판적인 시각. 모두 진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들추지 않는다. 진실이 추잡한 현실을 공격하지 않도록 돕고 있는 시스템들. 하지만 이 작품은 사회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뒤렌마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내용보다는 서스펜스적인 추리물의 느낌을 더 강하게 주고 있다.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을 주지는 못한다.
한 유명한 작가가 등장하여 자신이 지금 요양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윽고 그의 예언대로 누군가가 들어온다. 한 남자. 그는 작가의 팬이라면서 작가에게 접근해 언제나 살인을 중요한 소재로 하고 있는 작가의 모든 작품들이 결국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제법 근사한 추리를 한다. 이어서 밝혀지는 것은 그 남자가 이제껏 이 유명한 작가를 쫓아 다니면서 뒷조사를 꾸준히 해왔다는 것과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유명작가라는 이유로 역시 매스컴과 대중들의 호의를 사고 있기 때문에 결코 체포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작가에게서 뒷걸음치다가 발코니에서 떨어져 즉사한다. 다시 평온을 되찾은 작가는 관객들에게 남자의 등장으로 끊겼던 연극처음의 자신의 대사들을 계속하면서 막이 내린다.

1921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뒤렌맛트는 스물두살 때, 당뇨병으로 몇년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갑자기 밀어닥친 죽음이라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전공인 물리학을 중단하고 나머지 자기인생의 의미를 찾고저 희곡을 쓰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비극과의 투쟁,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문학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으며, 사형선고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독일뿐 아니라 전유럽과 미국, 아니 전세계에 이르기까지 연극사적 거인으로 당당히 군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극복을 우리에게 증명해냈음을 알 수 있다. 뒤렌맛트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유죄자도 무죄자도 없다. 다만 희극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희극이 반복되어 어느 한 순간에는 비극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뒤렌맛트는, 자기들이 창조해낸 현대문명속에서 그것때문에 항거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가엾은 현대인의 운명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음미해볼 점들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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