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렌마트는 뛰어난 소설들을 여러 편 썼지만 오늘날 극작가로서 더 높게 평가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라디오 방송극을 여러 편 쓰다가 3막극 '노부인의 방문'이 나오면서 일약 세계적인 극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1956년 발표되어, 1950년대 말 취리히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1968년 12월 극단 '가교(架橋)'에 의해서 초연되었고, 그 후에도 다투어 무대에 올랐다. 뒤렌마트는 인생은 무의미하며 인간은 쉽게 타락하는 존재로 본다.
그의 희곡에는 권력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가 등장한다. 인간은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의식하고 일생 동안 뭔가를 성취하려 들지만 그런 노력은 죽음의 공허 앞에서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과, 권력은 선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면서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소유한 자에 의해서 타락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노부인의 방문'은 뒤렌마트를 세계적인 희곡 작가로 발돋움시킨 작품으로 그는 이 작품에서 인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며, 인간 정신에 대한 그 자신의 환멸을 드러내고 있다.

【줄거리】
『소도시 귈렌의 시민들은 노부인 클레어 자하나시안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고 지금은 백만장자가 되어 고향도시를 방문하는 것이다. 몰락해가는 도시의 시민들은 그녀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지만 클레어는 오래전에 자신이 당한 부당함에 대한 복수를 하러 오는 것이다.
19살의 알프레드는 17살의 클레어가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자 이를 부정하고 클레어가 제기한 소송에서 증인을 매수하여 승소했던 것이다. 고향을 떠난 클레어는 아이도 잃고 매춘을 하다가 유전(油田)소유자와 결혼하여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되었다. 소상인 알프레드는 환영식장에서 백만장자 클레어와의 친분을 과시한다.
노부인 클레어는 거액의 금액을 제시하며 시민들 모두에게 경제적인 부를 약속하면서 동시에 과거에 자신을 불행으로 빠뜨렸던 알프레드의 처벌을 요구한다. 시민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부당한 요구를 “인간성의 이름으로”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돈의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그들은 시간이 그의 죄를 없애지는 못한다면서 알프레드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고 처벌을 받아들인다. 노부인이 약속했던 수표는 발행되고, 합창단은 행복의 찬가를 부른다. 한편 언론은 알프레드의 죽음을 “기쁨에 겨운 죽음”으로 기사화한다.』

『미국에서 대부호가 된 고급 창녀인 클래어 차하나시안은 나이가 들어 고향 방문한다. 실연의 슬픔을 안고 떠났던 몰락해 가는 고향 귈렌 시를 30여 년 만에 찾아온다. 그녀는 젊은 시절 이곳에서 청년 일(ILL)과 사랑을 나누었으나 배신을 당해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방문 목적은 일(ILL)의 목숨을 빼앗는 데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일의 배신으로 그녀는 실연을 당하게 되고, 당시 일의 아기를 가졌던 그녀는 친부 확인 소송을 제기 했지만 일에 의해 매수된 두 증인의 위증으로 패소하였다.
그 결과 그녀는 귈렌 시를 떠나 창녀로 전락하게 되고 아이는 죽게 된다. 나중에 그녀는 백만장자와 결혼하여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부인이 되고 일도 부잣집 딸과 결혼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귈렌 시를 도와주는 대신의 일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며 그녀는 이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 도시에서 10억 마르크를 기부하면서 45년 전에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정의를 사려고 한다. 그녀는 고향 사람들에게, 배신하였던 옛 애인 일 씨를 살해하면 10억 마르크를 내놓겠다고 제의한다.
파산한 귈렌 시는 노부인에게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나 처음에는 귈렌 시장을 비롯한 시민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지만 시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일의 가게에 지게 된 시민들의 빚이 늘어나자 귈렌 시민들은 일의 죽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결국 살인이 저질러지고 그 살인 행위가 민주적인 절차까지 거쳐 진행된다. 그리고 그 부인은 일 씨의 시체를 가지고 고향 도시를 떠나고 사람들은 시의 복지와 번영에 감사하는 노래를 부른다.』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는 생동력 넘치는 활력과 효과력이 강한 무대적 상상력을 지니고, 독특하고 비인습적인 경향을 지닌 재능 있는 극작가로 전통적 비극을 부정, 부조리연극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기발한 착상과 탐정적 소재를 즐겨 취급하고, 직접적인 상징을 통해 관중의 비평적 태도를 위한 소외효과를 노린다.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상연된 작품으로서, 특히 미국에서는 'The Visit'로 알려져 있다. 외관상으로는 순전한 비유처럼 보이는, 그것도 마치 전후의 독일이 마아셜 플랜으로 부흥하는 과정을 비유극으로서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는 이 작품의 후기에서 그러한 해석을 거부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클레어 짜하나시안은 정의를 표현하는 것이며 그 노부인은 있는 그대로의 여자다. 그 여자는 그리스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며, 마치 운명의 여신처럼 절대적이고 잔인하다. 그 여자는 그것을 즐길 수가 있다. 그래서 유머가 있다. 그 여자는 인간에 대해서 상품처럼 거리를 가지고 있고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거리를 가지고 있다. 기묘한 우아, 악의적인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적인 질서의 테두리 밖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화석이 되거나 우상이 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 여자는 시적인 선상에 있으며 그 수행원도 고자들까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사실주의적으로 무덤덤하게, 고자의 음성으로 할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동화처럼 조용하게 유령처럼 하여야 한다. 클레어 짜하나시안이 냉정한 태도를 취하게 되자 옛 애인인 일 씨가 주인공으로 바뀐다.
그는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희생이 되며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말살되었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남자다. 그러나 비로소 공포와 경악을 통해서 최고의 개성적인 것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죄를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정의를 체험하게 되고,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위대해지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위대한 동시에 무의미하다. 주인공들과 더불어 귈렌 시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다. 그들의 행동은 일 씨를 죽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그저 경솔하고 모든 것이 곧 잘되리라는 허망한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노부인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차차 빚을 지게 된다. 제2막은 그렇게 상연되어야 한다. 페터씨 네 창고의 장면에서 방향이 전환된다. 숙명은 그 이상 회피할 수 없다. 그 때부터 귈렌 시민은 서서히 살인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끝까지 인간적인 약점에서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 전 시민이, 이 작품에서 유혹에 빠졌던 학교 교사처럼 점점 유혹에 빠져 들어가는데 이 점이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빈곤은 너무나도 혹독하고, 유혹은 커서, 약한 인간들은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악의에 찬 상연이 되어서는 안 되며, 분노가 아니라, 비애와 유머가 뒤섞인 인간적인 상연이 되어야 한다. 그런 것이 비극으로 끝나는 이 희곡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물적인 진지성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중심 이야기는 차하나시안이 내놓은 제안이 어떻게 실현되는가이다. 그 제안이 갖는 비인간적인 성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의 힘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황이 대조를 이룬다. 일에게 처참히 짓밟힌 기억이 있는 차하나시안은 일의 목숨을 대가로 1,000억을 내놓는다.
차하나시안은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일의 죽음만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용서와 화해보다는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만이 정의인 것이다. 차하나시안은 과거의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했던 코비롸 로비를 노비로 사들여 장님과 고자로 만든 일이 있다. 이 역시 차하나시안의 정의는 돈의 정의이기도 한다. 과거 일과의 재판 과정에서 차하나시안은 진신을 밝히는데 실패했다. 그녀에게 재판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녀는 돈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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