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 1953∼)는 1960년대 이후 정치 사회적 성향이 매우 강한 영국 연극의 흐름을 주도한 작가이다. 1960년대, 70년대 정치 사회극 운동은 인간성 회복과 인간해방을 그 궁극적 목표로 하되 그 목표가 사회주의 사회의 확립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정치 사회극 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은 본드를 비롯하여 존 아든(John
Arden), 아놀드 웨스커 (Arnold Wesker), 데이비드 해어 (David Hare), 하워드 브렌튼 (Howard Brenton), 데이비드 에드가(David Edgar), 카릴 처칠(Caryl Churchill) 등이다.
이 정치 사회극 운동에 대한 논의에서 본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극작의 초기부터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기의 심각성을 폭력 현상 속에서 인지하고 이런 위기의식을 희곡으로 형상화한 작가이다.

본드는 1971년 시어터 쿼털리(Theatre Quaπerly)와의 인터뷰에서 불합리한 사회에서 야기되는 폭력의 악순환 현상을 “폭력의 변증법(Dialectics of Violence)" 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그는 폭력의 역학관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구조적 폭력 못지않게 이에 대한대응수단으로서의 폭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이는 대항폭력이 불의를 징벌한다는 면에서 일시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해도 곧 더욱 심화된 폭력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구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 현상 자체를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이러한 본드의 관점은 그의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폭력의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권력 구조에서 야기되는 폭력이 더 큰 대항폭력을 낳는 폭력의 연쇄적인 심화 현상은 그의 작품에서 전쟁과 되풀이되는 혁명 과정을 통해 표출된다. 특히 전쟁을 도덕의 옹호라는 명분하에 살육 행위를 자행하는 집단 광기의 표출이라고 정의 했던 본드에게 전쟁에 대한 비판은 극작 행위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본드의 비판의 초점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행위가 결국은 그럴 듯한 명분으로 미화된 소수 권력 집단의 이해가 관철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 모아진다.
1978년 발표된 ‘여인’ (The Woman)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사의 하나로 꼽히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근거한 전쟁과 국가 간의 약육강식 적 관계를 풍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치 폭력의 본질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는 본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어’ (Lear 1972)와 상당히 유사하나, 폭력의 본질을 보다 사회구조적
시각에서 탐색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폭력의 문제를 한 인간의 도덕적 각성을 통해 극복해 보고자 했던 초기 극에서의 신념만으로는 그가 추구하는 합리적 사회의 실현이 요원하다는 인식에 비롯된다. 즉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서 개인의 도덕적 각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본드로 하여금 사회의 구원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케 한 것이다. 본드에게 있어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은 인류 역사를 다시 조명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인’에서 그는 역사의 황금시기로 인식되고 있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해 봄으로써 현대의 비합리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고자 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최대의 참사인 트로이 전쟁을 「여인」의 출발점으로 하여, 정치적인 교훈극을 시도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인간의 행위가 신탁과 인간의 동기로 이루어지는 반면 신이 증발한 「여인」의 세계에서는 행위의 모든 책임이 인간에게로 돌려지는데 이는 폭력과 전쟁은 다른 어떤 외부의 힘이 아닌 인간의지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드는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과 「헤큐바」를 「여인」의 골격의 테두리로 삼고 있는데, 1부는 「트로이의 여인들」과 2부는 「헤큐바」와 유사하다. 그 예로 「여인」의 1부에 등장하는 헤큐바의 이미지, 트로이 함락, 헤큐바의 손자 아스티야낙스의 살해, 전쟁의 야만성, 그리고 2부의 헤큐바의 반격과 복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피루스에 의한 프리암의 살해가 「여인」에서는 트로이 함락을 앞지르는 자연사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나, 아스티야낙스의 어머니인 안드로마케를 카산드라로 대치시키고 있는 것은 원작과 다르다. 십 년의 포위기간은 오 년으로 단축되고 그리스와 트로이를 통치하는 독선적인 집권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히로스(Heros)와 헤큐바의 아들(Son)이다. 고전과의 가장 큰 차이는 헬렌이 행운의 여신상으로 대치되어 이 여인상의 획득이 극의 구심점이 된다는 점이다. 여신상은 원래 아테네인들의 재산이었는데 프리암이 트로이의 회춘을 위해 몰래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상은 트로이에 행운 대신에 흑사병과 파괴를 가져왔다는 아이러니를 통해 민중들의 복지나 평안과는 무관하게 집권자들의 헛된 야망으로 인해 야기된 전쟁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특히 「여인」은 패리스와 헬렌의 사랑, 헥터, 아킬레스
등의 영웅담, 목마 등의 모든 신화적 요소와 낭만적 영웅주의를 제거함으로써 현대와의 관련 속에서 전쟁의 보다 현실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또한 헤큐바의 두 자녀 폴리세나와 폴리드러스의 살해에 대해 헤큐바가 아가멤논과 공모하여 행하는 개인적 차원의 복수가 「여인」에서는 아테네 은광에서 도망친 노예인 다크맨(Dark Man)과 결탁하여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행동으로 확대된다.
「여인」의 제 1부는 행운의 여신상 소유권 문제를 놓고 아테네와 트로이 두 제국이 벌이는 전쟁을 다루고 있는 데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측과 이를 저지코자하는 측의 팽팽한 힘의 대결이 묘사돼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즉 히로스와 아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파괴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이즈메네(히로스의 아내)와 헤큐바의 민족을 초월한 반전의식이 극화된다.
헤큐바에게 정권이 이행되었다는 소식은 히로스에게 전쟁을 종식시킬 절호의 기회로 포착된다. 히로스의 부인 이즈메네는 여신상을 보내주면 트로이를 약탈 없이 떠난다는 조건을 협상하기 위해 테르시테스와 함께 헤큐바에게 가기로 결정한다. 헤큐바와 만나기 전에 자신의 임무의 정직성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이즈메네에게 히로스는 교활하고 빈틈없는 정치가의 신중한 연설을 통해 자신의 진의를 감추며 미래의 행동에 대한 어떤 확신도 제공하지 앓는다. 이처럼 자신의 아내를 속이면서 까지도 얻으려고 하는 행운의 여신상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로이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침략자 자신까지도 파괴시키는 베일에 싸인 저주이다. 석상의 획득과 트로이의 멸망은 역사적 필연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더 큰 권력에 대한 히로스의 야심을 가리는 명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현실과 히로스가 내세운 거창한 명분사이의 괴리를 통해 그의 명분에 내포된 허위성과 부도덕성을 드러내 보여 준다.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남성 집권자들의 행위는 히로스와 더불어 트로이 진영의 아들에 의해 더욱 부각된다. 트로이 성직자들에 의해 헤큐바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아들은 자신의 권력행사에 방해가 되는 헤큐바와 이즈메네를 감금한다. 아들의 이와 같은 광폭한 태도는 그가 석상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중시킴으로써 결국은 자신의 암살과 트로이 시의 멸망을 촉진시킨다. 트로이는 아테네 군의 침략이전에 아들을 우두머리로 하는 군부에 대한 트로이 빈민들의 반란에 의하여 붕괴된다. 극도의 위기 속에서 아들을 암살한 지배층과 반란을 일으킨 민중들은 아들의 제거에는 동조하나 지배층의 허울 좋은 애국주의는 민중이 처한 비참한 현실과 근본적으로 대치된다. 즉 지배층은 적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며 민중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적을 몰살시키기 위한 전쟁을 찬미한다. 그러나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온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여 국가 전체에 엄청난 참상을 초래한 지배층에 대한 불신은 성난 민중을 폭도로 변모시킨다. 아들의 암살 후에 민중은 행운의 여신상을 사원에서 끌고 나와 아테네인에게 주고자한다. 이들은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고 행운을 가져올 목적으로 탈취한 여신상이 실제로는 인간을 오도하고 구속하는 수렁임을 인식한다. 우상을 던져버림으로써 흑사병, 전쟁, 기아를 종결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태도는 지배층과는 달리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여신상을 돌려받았음에도 민중의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히로스가 이끄는 아테네 군인들이 저지르는 가옥 파괴, 인명 살상, 약탈행위는 히로스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이 확산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로이 여인들의 만류, 헤큐바의 간청, 이즈메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히로스가 헤큐바의 손자를 성벽 위에서 떨어뜨려 살해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제 1부 전체에서 히로스로 대변되는 폭력의 잔학상을 가장 충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남성 집권자들의 행위와는 대조적으로 이즈메네와 헤큐바는 직관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전쟁의 평화로운 종결을 촉구한다. 이 작품의 제목을 가제목 「트로이의 여인」에서 「여인」으로 교체한 이면에는 폭력을 불사하는 비이성적인 남성 본위의 사회에 대해 현실을 냉철히 지각하는 이성적인 여성을 대비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작가는 ‘여성의 관점’ 으로부터 쓰기보다는 인류의 역사를 통찰해 볼 때 전쟁과 권력에 더 집착한 것은 남성이었으므로 극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을 ‘보다 정상적인 존재’로 다루려고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작가가 이 작품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문제의 해결책이 이 두 여성의 의식과정 속에서 제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헤큐바와 이즈메네는
서로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쌍방 간의 갈등이 상쇄된 후에는 서로를 격려한다. 이즈메네는 히로스가 석상을 탈취한 후에 살육, 방화, 약탈을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 없이 헤큐바와 대면한다. 헤큐바는 이즈메네로 하여금 현실을 냉정히 직면하게 하여 지역적인 연고를 초월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즈메네는 남편, 국가 등 모든 종류의 보호벽을 거부함으로써 엄청난 시련을 감수하게 된다. 그녀의 평화에 대한 갈망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확고한 반전사상으로 바뀐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의도에 역행하는 상황만을 초래하는 히로스에 대한 실망으로 그녀는 극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그녀는 트로이군에 의해 수송되는 가운데 아테네 군인들을 향해 ‘전쟁은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 는 집권자들의 말을 거부하라고 외친다. 그녀는
자유를 수호하는 전쟁’ 이라는 구호 하에 전쟁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위선적인 집권자들을 도살장으로 양떼를 몰아기는 양치기에 비유한다. 국가, 지유, 정의와 같이 위대하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고, 모든 희생과 죽음의 와중으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고 믿는 병사들에게 이즈메네는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의 실체를 경고한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병사들의 외침 소리와 북소리에 묻히고 만다. 트로이 참사 전날 트로이를 포위한 아테네군의 군사 재판에 회부된 이즈메네는 혈연이나 지연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애국을 표방하는 전쟁을 비난하고, 히로스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이기 이전에 국가의 존위에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 돌무덤에 생매장시킨다. 전쟁의 폭력성은 마침내 이즈메네의 정신 이상을 가져오는데 이는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화에 대한 이즈메네의 절규가 얼마나 무력한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헤큐바는 이런 참상에 대해 절망과 분노 속에서 자신을 장님으로 만든다. 헤큐바의 실명은 히로스에 의해 자행 되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비관하며 극도의 고통 속에서 행하는 절망의 표현이지만, 극이 전개됨에 따라 단순한 절망을 넘어서 삶의 진실에 대한 통찰력을 획득했음을 의미하는 매개체로 나타난다.
제1부는 이와 같이 집권자 히로스와 아들이 한결같이 극도의 위기의식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온 국민을 동원함으로써 국가 전체에 엄청난 참상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광신적 애국주의는 나아가 자신의 가족마저도 잃어버리는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제 2부는 아테네 군에 의해 파괴될 위기에 처한 한 섬을 배경으로 히로스의 비합리성과 헤큐바의 합리적인 태도를 대조시키며 나아가 헤큐바의 현실인식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극화한다. 제 1부가 전쟁의 본질, 전쟁이 야기 시키는 고통을 다룬다면 제2부에서는 당대의 사회를 종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본드는 문제의 해결책에 접근한다. 과거의 문화적 황금시대에 대한 그의 이 같은 새로운 접근은 각 시대를 계층과 생산 양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재해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본드는 계층을 현실의 갖가지 모순을 얽혀놓고 있는 많은 고리의 하나로 주목하고 폭력의 원인을 정직하게 파고 들어가면 계층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희랍의 집권자들, 군대의 대장으로부터 졸병, 아테네에 갇혀 있는 노예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 인물들 간의 상호 관계를 중심주제로 부각시킨다.
아테네로 실려 가던 도중에 파선으로 아테네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도착하여 십이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헤큐바와 이즈메네는 현실을 외면하여 살고 있다. 히로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헤큐바는 이 조용한 섬에서 전쟁의 참상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통해 자신이 처해 있는 고통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이런 그녀의 심적 상태는 한 쪽 눈의 시력이 회복 가능한
상태라고 믿으면서도 계속 안대를 매고 있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평화로운 이 섬에 석상을 찾기 위해 헤큐바를 방문한 그리스군의 도착은 헤큐바와의 필연적인 대면을 예고한다. 석상의 획득 여부가 1부에서처럼 2부의 구심점을 이룬다.
트로이의 멸망과 노예들의 노동으로 캐낸 은을 통해 치부하여 건설한 새로운 아테네를 조금의 뉘우침도 없이 자랑하며, 순은으로 건립된 사원에 세워질 행운의 여신상을 찾으러 온 히로스는 완전히 광인의 논리 속에서 행동하고 있다. 바다에 잠겨 있는 석상을 구하겠다는 히로스의 이러한 태도는 전쟁을 자유와 정의의 수호를 위해 다수의 희생을 치루더라도 수행해야 할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히로스는 트로이에서 일어난 참화에 대해 책임지기를 회피하며 예나 다름없이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모든 일에 접근한다. 이즈메네에 대한 접근도 석상을 찾고자 하는 그의 계산적인 의도에서 비롯된다. 히로스는 인간에 대한 무차별한 파괴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합법적 수단으로 이즈메네에게 설교한다. 그의 철학은 트로이를 멸망시켰을 때와 조금도 변함없고 오히려 더 비인간적으로 변모했을 뿐이다. 이즈메네를 설득하다 무위로 끝나자 자제력을 읽고 옛 아내를 위협할 때 그가 내세우는 명분의 허위성과 부도덕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여신상을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집념이 결국은 그를 헤큐바의 처분에 맡기는 오류를 저지르게 만든다. 바다에서 석상을 찾으려는 히로스의 어리석음이 그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고 있음이 네스터 장군의 눈에도 명백히 보인다. 더욱이 2부에서는 극중 인물 가운데 오직 히로스만 여신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바다 속에 가라앉은 한갖 돌덩이를 찾기 위해 죽음을 자초한다는 면에서 그의 어리석음과 비현실성이 더욱 강조된다.
히로스의 등장으로 헤큐바는 이 평온한 섬이 더 이상 현실의 은신처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가 몰고올 폭력으로부터의 도피가 불가피함을 깨닫게 된다. 한편 히로스의 등장은 이즈메네에게 전쟁의 공포를 상기시키는데 그녀는 정신 이상 상태에서도 헤큐바의 현실도피를 비난한다.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처하기로 결심한 헤큐바는 12년 만에 안대를 떼어내지만 완전히 장님이 되었음을 발견한다. 안대를 떼는 순간 그녀는 트로이의 공포가 다시 찾아온 듯 느끼지만 자학하거나 슬픔에 잠기는 대신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즈메네를 격려한다. 현실도피에서 현실참여로의 인식의 전환을 거친 헤큐바의 태도는 극이 전개됨에 따라 점점 더 적극성을 띠게 되며, 종국에는 억압과 폭력으로 상정되는 아테네에서 도망쳐 나온 다크맨과 공모해 히로스와 정면 대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헤큐바와 이즈메네의 동조 관계가 헤큐바와 다크맨의 관계로 확대되면서 사회구조적 시각에서 폭력의 본질을 탐색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는 더 뚜렷하게 부각된다. 아테네 은광에서 도망친 노예인 다크맨의 등장은 국가 간의 전쟁을 다룬 제1부의 횡적인 구조에서 당대 사회의 계급 문제라는 종적 구조로 관객의 관심을 전환시킨다. 본드는 지금까지 민주주의 사회의 전형으로 알려진 아테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극의 초점을 제국주의, 노예제도에 맞춘다. 즉 작가는 다크맨을 통해 희랍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함으로써 당대 사회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을 제공한다.

극에서 다크맨은 인물이라기보다 하나의 상징에 가깝다. 아테네는 문명사회를 대표하고, 섬은 문명에 물들지 않은 가장 원시적인 사회를 나타낸다고 볼 때, ‘바다에 둘러싸인 섬”은 물자체의 원형적 상징으로 인하여 죄의식과 억압의 세계와 분리된 별개의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다크맨의 탈출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상정한다고 하겠다.
그는 결코 이즈메네의 낭만적인 연인도 아니고 히로스와 정면으로 승부하여 승리를 탈취하는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다. 처음 등장할 때 이즈메네에게 접근하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나, 헤큐바와 이즈메네에게 간지럼을 태우는 천박하고도 희극적인 장면은 다크맨에 대해 갖는 감정의 동화를 철저히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다크맨에 대한 감정적 동화 없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채 그를 새로운 계급의식을 대표하는 인물로 직시하게 하고자 하는 본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신체적 불구는 히로스로 대변되는 죄의식과 억압의 세계에서 비틀려버린 인간의 상태를 시각화하는 것으로 그가 처음 무대에 등장할 때에는 불구의 정도가 보다 심하게 표현되고 그의 인식 과정과 병행하여 보다 자유롭게 표현된다. 즉 그의 신체적 불구의 정도는 그의 지아 인식과 사회의식 상태를 시각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그의 자각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다크맨은 헤큐바의 도움으로 현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시각과 자신감을 얻게 되는 한편, 헤큐바는 그를 자신의 공모자로 삼기로 결정한다. 히로스의 죽음만이 섬을 히로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임을 인식한 헤큐바는 사람들에게 두 국가 간의 전쟁의 원인이 된 여신이 자신의 꿈에 나타나 이제는 바다를 떠날 준비가 되었는데 함께 갈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히로스와 다크맨의 경주를 제안했다고 공표하면서 히로스를 음모에 끌어들인다. 그녀는 경주의 승자는 여신상을 소유할 것이며 패자는 살해될 것임을 조건으로 내세운다. 히로스가 절름발이인 다크맨과의 경기를 위해 자신의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말할 때 그의 광기는 절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헤큐바는 아직 한 눈을 통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리 도착 지점에 다크맨을 대기시킨 뒤 섬 둘레를 달려온 히로스를 향해 경주의 과정과 결과를 발표한다. 여신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히로스를 정신적인 면에서 장님의 상태로 만든 데 비해 장님 헤큐바는 실명을 통해 인생을 훨씬 정확하고 관조적으로 조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헤큐바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그녀 자신의 지혜와 통찰력에 덧붙여 섬 주민들의 단합된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섬 주민들이 합심하여 축제를 열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히로스의 군인들의 시선을 히로스와 다크맨의 경주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에 히로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주거나 경기 과정을 제대로 관찰한 제삼자를 발견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경기에서 패하고 마는 것이다.
히로스와 다크맨의 대결은 넓은 의미에서 폭력과 평화, 권위와 자유, 죽음과 삶의 갈등을 상징한다. 히로스와 다크맨의 경주에 참여한 인물들은 역상의 다양한 힘들을 대변하며, 이 경주는 이런 다양한 힘들이 폭력, 권위, 죽음의 종식을 위하여 뭉쳐지는 과정과 결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헤큐바의 명령에 따라 다크맨이 히로스를 죽이는 것은 폭력과 기만을 일삼는 사회의 경직된 지도층에 대한 전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히로스의 죽음은 그의 비이성적인 태도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비합리적인 사회는 내부에 자멸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다크맨의 승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간 능력에 대한 신념의 표명이며 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촉구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히로스의 죽음을 초래한 경주가 있던 밤에 헤큐바는 속죄양으로서 죽음을 맞게 된다. 태풍이 심하게 부는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 중 유독 그녀만 파도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계시 받은 비천의 대가라고 보여진다. 해변에서 발견된 그녀의 시신은 정통 그리스 비극에서 보여 지는 주인공의 장엄한 죽음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물 회오리가 지나가자 헤큐바의 머리와 눈이 찢겨지고 그녀의 젖꼭지
가 칼처럼 곤두서고 그녀의 얼굴은 나사로 편듯이 찌그러지고 길고도 가는 혀는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는 다크맨의 묘사는 우리가 흔히 영웅의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비극성을 절감시킨다. 즉 작가는 그리스 비극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모순점들을 들쳐 내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이 나를 사랑해준 이후로 내 정신이 맑아졌어요."라는 이즈메네의 대사는 이즈메네와 다크맨의 앞에 다가올 희망을 제시한다. 히로스의 잔인성 때문에 정신 이상이 되었던 이즈메네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정신 이상에 시달리던 이즈메네가 헤큐바가 죽은 다음 날 정신을 찾는다는 점에서 헤큐바가 이즈메네를 통해 부활하여 그녀의 생존의 투쟁을 이어갈 것임이 암시된다. 또한 섬사람들이 그물을 수선하는 모습은 그들의 질서가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본드는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이는 트로이 전쟁, 희랍사회, 신화적 인물들에 대해서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보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고 있는 폭력의 본질을 간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본드의 작품에서 소수의 권력 엘리트들에 의해 자행되는 ‘도구적’ 전쟁들은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닌 범죄 행위로 비판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성에서 야기된 전쟁은 타인뿐만 아니라 파괴자 자신의 육체와 정신까지도 파괴하고 만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본드는 극작의 초기부터 폭력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의 구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노력해온 작가로서 이 작품에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인간의 궁극적인 능력에
대한 신뢰를 다른 어떤 극에서 보다 확고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헤큐바, 이즈메네, 다크맨 등 여성과 사회에서 가장 천시되는 계층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소외계층의 잠재된 인식력을 일깨워 이를 사회 변혁의 도약판으로 연결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은 그의 다른 극에서는 보기 힘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의 제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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