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내가 까마귀였을 때'

clint 2016. 3. 4. 12:01

 

 

 

 

 

13년 만에 잃어버린 막내아이를 찾아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는 철저히 자기 욕망을 죽이며 살아왔고, 한때 ‘까마귀’로 불렸다. 먹을 것만 보면 훔치는 버릇 때문이었다. 처벌이 불가피하여 경찰서에서 신원조회를 하다가 부모에게 연락이 된 것이다. 곧, 아이의 친근한 태도로 인해 집안은 생동감이 넘치고, 이제야 비로소 완벽한 가족으로 만났다는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13년간 아이가 몸담았던 세계. 그곳은 철저히 이 세계의 바깥이었다. 아이는 비참했던 자신의 과거를 무기삼아, 가족들의 죄의식을 건드리며, 점점 그 집의 주인으로 자리 잡는다.

아이는 자기가 경험했던 저 바깥 세계의 삶을 이 집에서 드러내 보이고자 시도한다. 그것은 아이가 자기 속에 있던 어둠과 분노, 절망을 밀어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며, 다른 가족들에게는 진심으로 아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는 이대로 자기를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아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가족들은 서서히 그 진실을 대면하기 시작한다.

 

 

 

 

 

13년 전 아이는 버려졌다. 그리고 두 아이는 더럽고 좁은 방에서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불행했던 과거의 그림자를 감추며 살고자 했지만, 삶의 極限속에서 다시 희망을 붙잡았던 순간 역시 그 속에 있었다. 가족들은 한 번도 말은 하지 못했지만, 자기의 삶이 아이를 향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서야 부부는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는 서서히 가족들을 용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를 까마귀라고 소개한다. 슬픔을 물어다 버리고 돌아오는 까마귀.

 

 

 

 

"냄새 좀 맡아봐. 이젠 집안 곳곳에서 냄새가 나." 13년 만에 잃어버린 막내가 들어온 이후 집안 곳곳은 변해 갔다. "멀쩡해 보이는 건 다 깨부수고 싶어." 분노 섞인 막내의 말처럼 평범해 보이던 집안에 상처들이 수면 밖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는 13년 만에 아들을 찾은 평온하고 평범한 듯 보이는 가정집 속 상처받은 인간이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다룬다. 불안한 듯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는 막내는 "어제는 혼자였는데 오늘은 가족이 생겼어요. 누나와 형이 있다니 꿈만 같아요."라고 말하며 자신을 찾아준 가족에 대해 고마움을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기 시작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 한다.

 

 

 

 

 

장면전환이 이어질 때마다 긴장감은 더해진다. 잃어버린 아들의 찾은 기쁨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감정들로 바뀌어 간다. 막내는 지난 세월동안 많은 일탈 행위로 '까마귀'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대신 더 늦기 전에 변할 것을 바란다. 이런 가족들의 요구는 그를 더 자극하는 듯하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들도 변화한다. 감추려고만 했던 가족사를 하나 둘 꺼내고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진실을 덮어두는 것보다 밖으로 드러내 얽힌 고리를 풀어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품은 "기다린 건 확실한데 우리가 만난 건 건 그 애가 아니었어. 우린.. 보고 싶은 것만 보잖아. 우린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 라는 누나의 대사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고연옥

인물의 어두운 내면과 극적인 사건을 구성해 내면서 현대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가는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꿈이라면 좋았겠지’ 가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2001년 청송보호감호소의 수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룬 <인류 최초의 키스>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올해의 우수희곡에 선정되었고, 2003년, 한 독거노인의 죽음을 통해 물질만능시대의 단면과 죽음의 의미를 짚은 <웃어라 무덤아>가 역시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03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에 선정되었다./ <꿈이라면 좋았겠지>(1996), <인류 최초의 키스>(2001), <웃어라 무덤아> (2003), <일주일>(2006), <백 중사 이야기>(2006),<발자국 안에서>(2007), 뮤지컬 <두 번째 태양>(2007), <달이 물로 걸어오듯>(2008) 외 다수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정웅 '상사몽'  (1) 2016.03.04
박춘근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1) 2016.03.04
정영문 '당나귀들'  (1) 2016.03.03
김지훈 '길바닥에 나앉다'  (1) 2016.03.03
박인혜 '청사초롱'  (1) 201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