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은 단란주점 이름이다.
2002년 4월 마로니에 극장 공연. (극단 나, 연출 한규용)
줄거리
청사초롱은 이중 구조를 지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복만과 영선의 슬픈 사랑을 주요 플롯으로 하여 주변의 등장인물이 하나의 원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청사초롱이라는 단란주점에 상주하는 얼굴마담 경순과 정미, 그리고 웨이터 장동건.... 이들은 각기 아픈 상처를 지닌 채 섬의 단란주점으로 흘러들어왔다. 복만과 영선은 부부사이이긴 하나 부적절한 관계이고, 그런 관계는 복만에게 영선에 대한 집작으로 이어져 결국 영선을 자신만의 공간 안으로 밀어버리고 영선에 대한 미련과 회한으로 섬에서 익사한 사람들의 시체를 건져 염을 해주게 된다. 청사초롱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경순은 생활력이 강한 여성으로 자신을 버린 남자를 가슴 한곳에 묻어두고 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알짜배기이다. 웨이터는 이러한 경순에게 연정을 느끼고, 그녀의 경제력으로 자신의 가게를 지니고 싶어 한다. 또한 정미는 어떤 목표를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 속에 자신의 상처를 묻어두고 살아간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청사초롱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만들어 간다기보다 일상을 체념으로 살아간다.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동물로서의 본성과 본능을 거부하거나 거부하기를 원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조차 인간은 자신의 본능과 본성을 버리고 사랑을 미화하고 이상화시켜 현실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실체라고 체념한다. 정말 진실 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실체가 그리움이고 아픔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번 공연에서도 난 사랑에 대한 질긴 의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다.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이 가슴을 울려왔다. 그러나 왠지 당혹스러웠던 것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이 각 인물들에게 각기 다르게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 속에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볼 때, 내 경험으로나 내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각기 다른 사랑을 했거나 하고 있고, 그 사랑에 대한 아픔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이 작품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마도 사람들은 현실 속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며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신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 속에선 그 이상을 깨뜨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가슴 아파하는 군상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아픔을 무대 위에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면 거북스럽게 느끼고 회피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픔을 회피하거나, 다른 대상을 찾아 아픔을 달래고 잊으려 한다. 오늘밤에도 내가 청사초롱에 들려 술과 노래에 취해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난 청사초롱에서 만났던 그리고 오늘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인물들을 그려놓고 싶다. 그늘에 가려진, 현실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왜 그들은 그렇게 현실에 밀려, 사랑에 아파하며 파도처럼 떠밀려갔을까! “셰익스피어의 여인들”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난 의문만을 던질 뿐, 뚜렷한 답안을 제시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나름의 아픔을 갖고 사랑했었고, 하고 있으며,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가진 자들의 사랑이 아닌 억압받는 자들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팔아야 하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의문을 통해 관객에게 다시 한 번 던지고 싶은 질문, “왜 우리는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 속에선 이상을 깨뜨리며 살아야 하죠?!” 하지만 현실을 탓하진 마세요. 그대 마음에 따르지 않으려거든 죽음이 더 아름답겠죠!
작가 박인혜
공연예술아카데미 8기 극작평론과 졸업 / 경기문화재단 특별공모 창작극부문 당선
탐미문학상 희곡부문 본상수상 / 청사초롱, 황가 맹가, 미망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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