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치언 '얼굴들'

clint 2016. 2. 26. 15:25

 

 

 

 

주상복합건물. 커다란 건물 안에는 형체와 정체가 없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건물 2층에는 인간을 상품화하려는 성형외과가 있다. 자본주의 유혹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잃은 얼굴들이 몸부림친다. 건물의 꼭대기에서는 모든 이들을 감시하는 경비원이 있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세상과 그를 이어주는 것은 CCTV.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관음증이라는 병에 빠져 있다. 지하실에서는 또 다른 얼굴들이 고통 받고 있다. 아픈 남자와 그를 떠날 수 없는 아내, 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이가 있다. 무서운 바람 소리와 쿵쿵거리는 구두소리 속에서 이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각자의 방으로 고립되어 가는 인물들로 구성된다. 마치 커다란 주상복합 건물이 다양한 셀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꽤나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난해함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다락방에 사는 병든 가족의 두려움에 찬 외침(마치 유령의 외침처럼 들려온다. 죽음을 부르고 있다)이 무대 왼편 끝 쪽에서, CCTV 감시자의 관음 적 도취와 인간에 대한 냉소가 무대 정면 상단에서, 마지막으로 무대 중앙과 오른편을 가로지르며 자기의 얼굴을 도둑맞았다고 외치는 여자의 도발적인 웃음과 비웃음이 뒤섞여 들려온다. 동시에 울리지는 않고 시간차를 두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절망의 삼중창으로 생을 어둡게 노래하고 있다. 무대를 활처럼 감싸며 노래하는 코러스처럼 다가온다. 세 개의 파트로 나뉜 성가단원들처럼 그들은 고통스럽게 의식의 말들을 뱉어낸다. 관객들은 불편할 것이다. 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말들을 특별한 맥락 없이 뱉어내고 있으니. 하지만 제겐 이런 외침이 에드가 앨런 포의 시를 읊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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