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의 한 송이〉는 멀지 않은 과거 80년대의 ‘아픈 상처’를 주제로 한다. 여 기자는 여기서 80년 4월 당시 정세를 기상정보에 빗대어 사회면 머리기사로 올려 계엄사 보도 처에 끌려갔다가 척추를 다친 뒤 조국을 등지는 신문사 편집기자다. 김요섭은 동료기자로서, 문제 기사의 편집 대장을 계엄군에 넘긴 뒤 수배령을 피해 ‘윤’과 함께 광화문 뒷골목 후미진 여관방에 은신했다가 사흘 만에 체포되는 김요섭으로 등장한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동료이자 연인인 두 사람은 짧지만 처절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작품은 이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18년 만에 낯선 외국 땅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연극은 두 주인공이 격렬한 감정의 맞부딪힘 끝에 짧았던 여관방에서의 사랑을 재확인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긴 이별과 짧은 해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화해의 몸부림을 통해 연극은 지나간 세월을 되묻게 한다. ‘지난 시절을 가슴에 묻고 90년대를 떠나보내는 우리는 과연 어떤 희망을 발견했는가?’ 라고.
〈가시밭의 한 송이〉는 이처럼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지만 작품 전체의 빛깔은 차분하고 따스하며 훈훈하다. 이윤택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절제미가 돋보이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민주화 물결이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군화에 압살되던 80년, 실제로 거쳤던 사람들이면 더욱 공감이 되는 작품이다.
<가시밭의 한 송이>는 1999년 9월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한 동안 큰 무대에서 주로 작업하다 15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단 세 사람의 배우들과 작품을 꾸민 이윤택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어쩌면 20 세기를 떠나보내는 이윤택 자신의 송가(送歌) 였는지도 모른다.〈가시밭의 한 송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윤택의 자전적 요소가 훨씬 짙게 배어있는 작품이다. 40대 중반을 넘기는 남자와 40대 중반을 향하는 여자는 99년 어느 날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은 모 신문사 동료 기자였고 당국의 수배를 받아 쫓기는 처지였으며, 도피 중 여관방에 투숙하여 함께 밤을 보내다가 이튿날 새벽 따로따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소식이 끊어졌다. 그러므로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그들의 재회는 분명한 현실이되 정말로 비현실적인 사건이다. 기억은 20년 전 저편에 박제되어 남아있고 함께 보냈던 밤의 기억도 부분, 부분 엇갈린다. 애당초부터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합리화를 위해 기억을 재조립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20년 전, 그때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었는지, 지금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기서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든 일이 혼란 투성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후일담 문학의 한 샘플로 분류할 수 있다.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한국 문학에 범람했던 사소설(私小說), 80년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그 와중에서 소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영위되었는가를 자근자근 회고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후일담 문학은 이제 진부하다. 주제가 진부하다는 말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너무나 여러 번 거듭하여 반복되었기에 도무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문학 외적인 환경도 달라졌다. 세월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다. 21세기의 관객들은 이런 이야기를 더 이상 절실한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주제에 공감하는 관객들 숫자는 상당히 줄어들었으리라.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러한 약점을 넘어서는 장치가 있다. 내레이터의 존재는 이 연극이 단순한 후일담 연극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다. 내레이터는 해설자 역할을 수행하다가, 남자와 여자의 독백을 도와주며 두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되었다가 때로는 관객들과 함께 작품 여기저기를 넘나들기도 한다. 내레이터가 시용하는 매우 의식적인 문어체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중 현실이 펼쳐졌던 시대를 되새겨 보도록 도와주는 기억의 열쇠로 기능한다. 이윤택은 197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한다. 고교입시가 살아있던 시대, 당대 명문의 하나인 경남고 졸업생이 연극학교에 진학한다는 건 그 자체가 하나의 스캔들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어지간한 비난 정도는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단칼에 날려버릴 배짱이 필요했으리라. 그런데, 당시의 사회적 편견을 뚫고 진입한 연극의 메카에서 이윤택은 불과 한 학기 만에 학업을 중단한다. 79년 2월 방송통신대 초등 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7월 부산일보사 편집부에 입사할 때까지 그 7년간을 이윤택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86년 1월 부산일보를 퇴직하고 같은 해 7월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한 이후의 행적은 비교적 명료하게 밝혀져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7년'을 포함한, 72년부터 86년까지의 열네 해는 여전히 신비한 안개 속에 모호하게 남아있다. 그가 신문사에 적을 두고 있던 세월은 부마사태와 10.26을 거쳐 12. 12를 겪고 5.17로 이어졌던 격동의 세월이다. 고도의 정보가 모이고 이를 정리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신문사'라는 송수신 탑 안에서 그는 어떻게 그 시대를 조망하고 관찰했을까. 1989년 작 <시민 K>에 그 흔적이 묻어있지만, <시민 K>는 객관적 관찰자 시점으로 시종하는 연극이다. 반면에, <가시밭의 한 송이>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서 발원하는 마음속의 물줄기다. 사건이 벌어지고 20년 쯤 지난 뒤에야 이윤택은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 것일까. 고향 스테르트포드 어픈 에이본(Stradford.-upon-Avon)을 떠나 런던에서 극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셰익스피어의 일생 가운데는 학자들의 추적이 불가능한 7년의 세월이 있다. 극장의 마구간지기를 했다더라, 매일 저녁 싸구려 좌석에서 연극을 보았다더라,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기에 이 7년을 배경으로 하여 셰익스피어에 대한 숱한 신화와 전설이 끊이지 않고 피고지고 피고진다. 이윤택의 잃어버린 7년은 '시민'과 '춤꾼 이야기'라는 두 권의 시집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며 지냈는지, 두 권의 시집은 이윤택의 잃어버린 7년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자세한 사정을 털어놓지 않는 한, 공연을 통해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조각난 단서에 의지하여 그때 그 시절을 복구해 갈 수밖에. 세상이 이윤택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상의 영향을 받은 이윤택은 이를 연극으로 재조립하여 다시 세상에 던져놓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의 연극을 보며 세상을 느끼고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한다. 그렇다면, 이윤택의 일생은 이미 개인의 사적인 역사가 아닌 것이다. 잃어버린 7년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연들이 거기에 얼마나 쟁여있을는지. 40인의 도적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려면 부지런히 이윤택의 연극을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열려라 참깨인지 열려라 찹쌀인지, 오직 공연을 봐야만 금은보화가 가득한 동굴로 들어가는 암호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구부러진 것이 펴지는 <가시밭의 한 송이>의 마지막 장면은 7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번역극 <꽃피는 체리>의 마지막 장면과 닮은꼴이다. 휘어졌다 펴지는 물건(?)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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