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방동원 '목소리'

clint 2015. 11. 24. 10:05

 

동아일보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한국에서 불법체류 상태로 근무하고 있는 파키스탄인 노동자 시논은 한 달 전, 작업 중 사고로 인해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시논은 병원에서 3주간 물리치료를 할 것을 권유받고는 회사 측에 치료비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후 시논이 일하고 있던 공장의 사장은 인권센터 소장으로부터 시논의 사고에 대해 노동부에 산업재해로 처리하고자 요양 신청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사장은 산재처리를 하게 되면 다음 공사를 수주 받는데 큰 지장이 생긴다는 생각에 시논을 사장실로 부른다. 사장은 이제까지 그래왔듯 시논의 마음을 사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먼 타국에서 어렵게 노동 중인 시논의 처지를 이해한다며 급하게 술자리까지 마련하지만 회교도인 시논은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이는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주잔만 비워나가던 사장은 시논과 시논의 나라, 시논의 종교 등에 대한 몰이해와 비난을 드러내면서도 듣기 좋은 말로 시논을 회유하려 하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시논에게 사장의 은유적인 화술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기만 하다.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조금씩 뒤틀려간다. 자신의 현명한 대처 덕분에 세 개 잃을 뻔한 시논의 손가락을 두 개밖에 안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라거나,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이야기, 먹고 싶은 거 다 참아가면서 자수성가한 이야기 등등을 늘어놓으며 ‘못 사는 나라’의 ‘근면하지 못한 사람’인 시논에 대해 절대적인 우월의식을 보이던 사장은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묘한 열등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결제대금을 독촉하는 거래처의 전화와 아내의 잔소리까지 반복되면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조급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가 시논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말들은 시논의 어눌한 한국어로 인해 옆길로 새나가기 일쑤다. 결국 사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산재처리를 하지 말아달라고 직접적으로 부탁하면서 돈이 든 봉투를 내민다. 시논 역시 산재처리가 되면 자신도 강제 출국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인권센터 소장에게 충고 받은 대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금을 요구한다. 사장은 마지못해 시논에게 돈이 든 봉투를 추가로 내밀며 한 지를 더 제안한다. 그는 회사가 어려운 지금의 시점에서 입찰한 공사를 못 따내면 아주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경쟁업체의 공사 입찰가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 경쟁업체는 시논이 전에 일했던 곳이자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파키스탄 친구가 본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장은 그 친구를 통해 정보를 빼내오길 원하지만 시논은 단번에 제안을 거절한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그 사장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경쟁자와 비교 당했다는 느낌이 들자 사장은 이제껏 참아왔던 감정이 술기운과 함께 폭발한다.

 

 

방동원
△1974년 전주 출생
△한양대 안산캠퍼스 국어국문학과 졸업
△극단 ‘여기’ ‘연어’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당선소감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그 꿈이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충격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있는 것처럼 얘기하거나 적당히 넘어가는 방법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요. 나에게는 이런 꿈이 있어요, 라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애드립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꿈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크지는 않아도 절실하다면 그게 바로 나의 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서 오래오래 웃으면서 같이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그런 절실한 마음이 바로 나의 꿈! 희곡의 매력을 알게 해주시고 좋은 희곡을 쓸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가르침을 주시는 영산대 연기뮤지컬학과 김재권 교수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 형수님, 조카 소윤이와 소준이, 든든한 예술적 지원군 삼선교 작은 이모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미완성으로 장롱에 있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래서 이렇게 빛을 받을 수 있게 결정적 역할을 해준, 사랑하는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인 지후, 고맙습니다.

 

심사평
‘Theatrum mundi’, 극장이 곧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극장은 여러 타자들이 만나는 공간이고, 희곡은 타자들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글쓰기여야 한다. 신춘문예에 지원한 희곡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 전제가 일정부분 확보되었고. 작품도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올해의 당선작인 방동원 씨의 ‘목소리’는 불법체류자인 노동자와 사주의 대화를 통해 다문화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군더더기 없는 대사로 재치 있게 표현하였다. 단순히 이주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빚어낸 소통의 문제점을 포착한 것이 적절했고, 이런 구체성이 아직은 관념적이거나 모호한 여타의 후보작들과 비교할 때 단단하게 느껴졌다. 첫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마지막까지 거론된 후보작은 차재영 씨의 ‘아버지의 여름’으로 짧은 여름밤을 배경삼아 죽음과 탄생, 어긋난 삶의 여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나 연극성의 결핍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 외 삶의 폭력성을 낯설면서도 산뜻한 감각으로 그려낸 강현선 씨의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고단한 샐러리맨과 뿔 잘리는 사슴을 병치한 정소정 씨의 ‘뿔 자르는 날’이 함께 거론되었다.
 - 박근형 극작가 연출가·김명화 극작가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