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6년 4월 24일 「매의 우물가에서」의 첫 공연 3주일 후, 700여 년에 걸친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에 도전하는 쉰 페인 주도의 부활절 봉기가 더블린 시내를 흔들었고, 이 봉기는 곧 영국 정부에 의하여 철저히 보복되었다. 이 사건은 예이츠의 창작적 상상력과 양심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후 그의 작품은 아일랜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포용하는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된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과거의 도전과 공포의 기억은 그가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노극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매의 우물가에서」의 성공 이후, 예이츠는 즉시 쿠헐른의 전설에 대한 또 하나의 무용극 「이멀이 바란 단 한 가지」를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극 구조상의 어려움에 부딪치자, 그는 이 작품을 잠시 미루고 부활절 봉기 이후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영국의 아일랜드 침공의 원인과 결과를 다룬 다른 작품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주제는 그레고리 백작부인이 그녀의 비극 「드볼길라」에서 다룬 것이기도 하다. 그레고리 백작부인의 극은 밀리폰트를 배경으로, 이제는 죽어가는 드볼길라의 극단적인 경건함과 자비로움이, 그녀의 과거에서 시작된 다른 이들의 증오로부터 그녀를 지킬 수 없는 것, 특히 '젊은이들의 눈 깜짝하지 않는 끔찍한 판단’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이츠의 작품 역시 이 같은 틀을 따르고 있지만, 주요한 차이가 있다. 즉, 그레고리 백작부인의 극이 역사적 사실주의의 관습을 충실히 따르고, 그녀의 주인공은 다음 세대의 분노에 마주 치는 것에 비해, 예이츠는 수백 년간 쌓여온 아일랜드 인들의 드볼길라와 그녀의 연인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노극의 전통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이러한 분노는 민족주의적 대의를 신봉하는 젊은 아일랜드 병사로 재현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예이츠가 나의 노극'이라고 지칭한 유일한 무용극이기도 하다. 비록 일본 작품 니쉬키기에서 세밀한 부분을 차용하기도 하였지만, 극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예이츠의 정교하게 계산된 극적 기교와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이츠는 쥐얼위 드와 드볼길라 그리고 한 청년의 비극적 운명을 순환적 진행에 따라 정제된 스타일로 옮겨 놓고 있는데, 무대 위의 액션을 엄격히 양식화함으로써, 감독과 배역, 그리고 관객들에게 해석에 대한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으며, 이 극을 하나의 이야기로, 상징으로, 또는 심리적 단계에서 즐길 수 있게 하였다. 극작가로서의 그의 인생에서, 예이츠는 처음으로 이러한 정제된 양식화가 전체 무대의 액션을 강력한 은유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들 또한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극의 세계에 몰입하고, 그들의 각 경험에서부터 극의 의미와 해석을 창출할 수 있게 한다. 예이츠는 「뼈다귀들이 꾸는 꿈」이 아직 아일랜드와 영국 양국이 부활절 봉기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정치적으로 강한' 색채를 띤 작품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 공연 시기를 걱정하였고, 그리하여 이 작품은 1931년 12월 6일에서야 애비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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