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드리드에서 1967년 막이 올려진 『채광창』은 1968년 여름까지 시즌 내내 공연이 계속되었을 정도로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던 부에로 바예호의 대표작이다. 이러한 성공은 작품 자체의 질적 우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작품이 그동안 스페인 사회에서 논의의 주제로 금기시되어 왔던 내전을 연극 무대에서 처음으로 조명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3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내전의 트라우마는 스페인 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전에 대한 언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왔었는데 1960년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한 검열 덕분에 연극에서 다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사회적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고 극중에서 한 등장인물이 "전쟁을 일으키는 놈들은 모두 저주받아야 해!” 라고 외치는 순간 극장 안에는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전형적인 내전의 패배자들이다. 패배자로서의 상황은 무엇보다도 승리자들이 활보하는 밝은 거리를 올려다보아야 하는 반지하의 소외되고 어두컴컴한 거주공간에 의해 상징된다. 이 고립된 공간에 외부의 빛이 유입되는 유일한 통로는 채광창뿐인데 채광창은 실재하지 않고 무대 앞면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가정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집 안쪽 벽 (무대 뒷면)에 투사되는 행인들의 다리 그림자로 채광창의 존재를 인지할 뿐이다. 반 지하 아파트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둘째아들 마리오가 살고 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실성한 아버지, 고정 된 직장이 없이 교정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마리오, 그리고 남편을 돌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가난한 삶은 큰 출판사의 높은 직위에 있는 큰아들 비센떼의 부유한 삶과 대비된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이들의 대조적인 삶은 과거의 한 사건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즉 나중에 밝혀지듯 큰아들 비센떼만이 다른 가족의 희생을 뒤로 한 채 귀환 기차에 올랐고 이 사건이 결정적으로 그를 내전의 승리자 편에 속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의 운명이 과거의 사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작자는 몇 가지 연극적 장치들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병치시킨다. 비센때의 이기적 행동 때문에 희생당한 어린 딸 엘비리따는 현재의 시점에서 비센떼의 비서인 엔까르나로 등장하여 또다시 희생을 강요당한다. 또 엔까르나는 마리오의 연인인 까닭에 결과적으로는 마리오 역시도 비센떼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의 채광창은 과거의 기차에 대한 메타포임이 분명한데, 비센떼를 비롯하여 밝은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차에 탄 사람들' 로서 내전의 승리자인 반면 그들의 발밑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반 지하 아파트의 가족들은 '기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 로서 내전의 패배자들이다. 실성한 아버지는 채광창을 올려다보며 과거의 기차 사건을 말함으로써 그의 의식이 과거의 그 순간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시키는데, 이로써 현재와 과거의 결박은 분명해진다. 아버지가 큰아들을 죽이게 되는 마지막부분은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는 순간으로서 현재에서 과거의 일을 함으로써 과거의 과제를 청산하는 의미를 부여받는다.

형식적인 면에서 특이한 점은 사건이 벌어지는 여러 장소들이 한 무대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과 『시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 도입 부분에 관객들에게 직접 극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연구원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화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과 관객들은 30세기의 사람들로서 관객 들은 20세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 실험을 감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무대에 여러 장소를 동시에 설치해 놓은 것이 나 공연의 관객을 실제의 관객이 아닌 미래의 사람들로 상정한 것은 관객에게 스스로가 속해 있는 시간적, 역사적 환경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봐 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즉 보여 지는 사건이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해 있는 특수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숲을 보기 위해서는 나무를 보아야 한다.”는 대사는 바로 구체적인 상황이 보편적인 것임을 말해 주기도 한다는 작자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채광창』은 단순히 그 시대 그 사회의 가려져 있던 심층부를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역사적, 다큐멘터리 적 가치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늘 있어 왔던 전쟁이 남기게 돠는 심리적 상흔과 이로 인한 비극적 결과를 훌륭히 형상화했다는, 보편성으로 승화된 문학적 가치를 부여받는다.
두 명의 화자는 작품 중간에도 종종 등장하여 극적인 상황을 관객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는데 이로써 이들의 말은 중심 서사에 거울로서 작용한다. 물론 이러한 메타극적 장치는 브레히트적인 것이다. 하지만 중심 서사가 보여 주는 극적인 갈등의 상황들은 강력한 감정적 흡입이 유도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에 부에로의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감정적 동일시 메커니즘과 브레히트 적 거리두기 효과는 절충적으로 혼합된다.

내전의 트라우마와 관련해서 『채광창』이 보여주는 부에로의 사고는 이전의 많은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언급되던 것과 일치한다. 예컨대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의 주인공 이그나시오의 입을 통해, 불행을 애써 잊어버리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며 오히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던 부에로는 『채광창』에서도 역시 아픈 기억이지만 진실을 찾아가야 하고 진실 위에서만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아버지가 끊임없이 던지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바로 정체성과 관련하여 개개인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채광창』은 내전이라는 사회적 층위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지만 종국에는 개인의 행복과 존재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고 있고, 따라서 스페인 현대사의 한 사건에 대해 발언하고 있으면서도 세계인의 보편적인 정서에 작용하며 공감과 감동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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