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칼 추크마추크마이어이어 '쾨페닉의 대위'

clint 2015. 11. 16. 09:39

 

 

 

 

 

 

 

'쾨페닉의 대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 작품의 계기가 된 실제 인물 빌헬름폭트의 생애와 ''실제 사건”을 간단히 소개한다.

빌헬름 폭트는 1849년 2월 13일 오스트프로이센의 틸시트에서 출생하여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고향에서 주둔 군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병정놀이를 하면서 성장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싫어 그는 14살때 가출해 괴니히스베르크로 가는데, 그곳 경찰에 잡혀 구걸했다는 죄목으로 48시간 구류처분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는 전과자가 된다. 그 후 그는 해군에 자원입대하려 하나 전과자란 이유로 거절된다. 17살 때 그는 베를린의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다가 우편환의 액면금액을 위조하여 타내는 범행을 몇 차례 거듭하다가 발각되어 12년간 교도소 신세를 진다. 그는 모아빗 교도소에서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도중에 권력이 법에 우선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수형생활을 하는 도중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재혼한다. 그는 출소 후 고향으로 돌아가나 머물 수 없음을 인식하고 고향을 떠난다. 폭트는 제화공으로서 기계작업 기술을 익혀 여러 도시와 외국을 전전하다 독일로 돌아오는데, 무슨 오해 때문에 다시 1년 간 교도소 신세를 진다. 이때 그가 칼렌베르크를 알게 된다. 그는 칼렌베르크의 종용에 따라 법원에 침입해 금고를 털다가 체포되어 다시 감옥에 갇힌다. 그는 외국에 가려고 여권을 신청하지만 세 번이나 거부당한다. 그는 출소 후 교도소 목사의 주선으로 비스마르의 구두공장에 취직한다. 그러나 그는 단단한 직장이 있고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비스마르에서 추방당한다. 이때 쾨페닉 범행의 구상이 시작된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누나가 제본업자와 혼인해 베를린 근교의 릭스도르프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는 베를린으로 와 구두공장에 취직하고 누나의 배려로 누나네 집에 기거하게 되나 다시 베를린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전과 때문에 거주허가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여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고 그 방법으로 쾨페닉 행각을 계획하여 1906년 10월 16일 실행에 옮긴다. 그는 이른 새벽 대위 복장을 차려 입고 쾨페닉에 가서 현장을 답사한 후 베를린으로 돌아와 거리에서 만난 일단의 군인들을 데리고 쾨페닉 시청으로 가서 시장을 체포한다. 경찰 책임자는 졸고 있었다. 쾨페닉이 시라여권을 발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으나 다른 군청에 가서 같은 범행을 되풀이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단념한다. 시 재정관이 그날 들어온 현금 4천 마르크를 그에게 건네주자 그는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그 돈을 수령한다. 그러나 금고에 들어 있는 2백만 마르크 상당의 유가증권, 국채에는 손대지 않는다. 현상금 3천 마르크를 탐낸 칼렌베르크의 신고로 폭트는 체포된다. 그는 이 범행으로 4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되나 20개월 뒤 황제의 사면으로 석방된다. 그는 쾨페닉에서의 범행으로 일약 유명인물이 되어 출소할 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진사들의 표적이 된다. 그는 독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대위 복장을 한 자신의 사진에 서명을 해서 팔기도 하고 쾨페닉의 대위로 외국의 쇼 무대에도 출연한다. 그는 1909년 자서전을 출판하고 1912년 룩셈부르크에 정착해 살다가 1922년에 죽는다.

 

 

 

1930년 여름 장난꾸러기 익살꾼 오일렌슈피겔(Eulenspiegel)을 농촌 출신인 오일렌슈피겔이 때 묻지 않은 기지로 도시 수공업자들의 주제 넘는 자의식이나 고위 성직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의 오만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여러 이야기가 15 세기 이래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소재로 하는 희곡을 집필하다가 진척되지 않아 고심하는 추크마이어에게 그의 옛 친구 프리츠 코르트너가 영화를 염두에 두고 “쾨페닉의 대위”란 소재를 제안한다. 추크마이어도 여느 사람들처럼 "쾨페닉의 대위"가 벌인 대담무쌍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과 그가 감옥살이를 하다가 사면되어 출소한 후 자신의 사진에 서명해 팔면서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았고 1910년 마인츠에서 그런 폭트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폭트의 행각은 여러 소극과 가극, 패러디와 장타령 따위의 소재가 되긴 했으나 그 속에 담긴 인간적, 정치적인 문제성은 부각되지 않았다. 추크마이어와 같은 시기에 빌헬름 쉐퍼가 폭트의 생애를 소재로 '쾨페닉의 대위'란 소설을 썼다. 코르트너의 제안으로 추크마이어는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 출판사를 통해 폭트에 관한 신문기사들과 재판기록을 구해 검토하는 도중에 갑자기 곤경을 통해 눈을 뜬 이 불쌍한 사람이 한 시대와 민족에게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익살꾼 오일레슈피겔이라는 영감을 얻어 본격적인 구상과 집필에 들어간다. 1930년 총선에서 흔히 나치라 일컬어지는 독일 민족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제2당이 되어 의회에 진출하는데 성과를 올렸다. 나치는 그렇지 않아도 강하게 이어져온 프로이센의 군국주의 전통에 불을 댕겨 독일사회를 제복의 도취 속에 몰아넣었다. 추크마이어는 이런 호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개인에 대한 위험과 폐해가 증대함을 감지하고 그것을 경고할 뿐만 아니라 폭트가 했던 것처럼 선천적 기지와 인간적인 통찰력으로써 그 위험을 극복하자는 희망을 담아 '쾨페닉의 대위'를 완성한다. 그는 비인간적인 사회, 내부적으로 균열이 가고 흔들리는 질서,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내세움으로써 사회에 비판을 가한다. 사회비판과 인도주의의 주창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이러한 주제를 담기 위해 그가 역사적 사실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추크마이어

그가 등장인물 목록 말미에 "실제 사건은 본 작품의 계기가 되었을 뿐 소재와 등장인물들은 완전한 창작”이라고 쓴 것은 이 때문이다.

'쾨페닉의 대위'는 '즐거운 포도원'으로 시작되며 추크마이어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민중극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추크마이어는 각각 7장으로 구성된 3막을 통해 73명에 달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프로이센-베를린 사회를 사실적으로 폭넓게 그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 사회적 지위나 최소한 사상적인 면에서 독일제국을 떠받치고 있는 세 계급과 계층, 즉 전통적으로 장교를 배출하는 프로이센의 토지귀족 계급(융커)를 대표하는 폰 슐레토프 대위,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타협적인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오버뮐러 박사, 제국주의적 성향의 유산계급을 대표하는 보름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의 강점은 처한 환경과 입장, 속마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물 묘사, 각계각층의 다양한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에 충실한 언어 (사투리)이며, 이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언어 표현, 등장인물의 성격을 엿보게 하는 긴 지문 등에서 우리는 작품 속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독일 자연주의 극작가 하우프트만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극중 사건이 10년 넘게 걸리는 점 등이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레싱에 의해 정립된 정통희곡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장소의 일치와 시간의 일치는 희곡의 본질과는 무관한 법칙이므로 도외시한다 하더라도 줄거리의 일치, 그리고 서술자의 배제라는 희곡특유의 법칙과 특성이 19세기 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런 경향이 '쾨페닉의 대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추크마이어는 인과율에 의해 얽혀지는 장면들을 통해 하나의 사건, 줄거리를 일사불란하게 대단원으로 이끌어가는 정통희곡의 틀에서 벗어나 여행하는 주인공이 잠시 머무는 정거장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행하는 바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독일 표현주의의 정거장 극(Stationendrama) 기법과 그가 한때 종사했던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원용하여 삽화 같은 장면들을 느슨하게 나열하고 있다.

1막과 2막의 14장을 살펴보면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빌헬름 폭트를 중심으로 하는 장면들이 2,3,4,6,8,9,11,12,14이고 다른 하나는 대위제복을 중심으로 하는 장면들(1,3,5,7,10,13)이다. 이 장면들이 엄격하게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대개 교차하며 나타난다. 이것은 이 양자, 즉 폭트와 대위제복이 동등한 자격을 갖는 주인공이고 그들의 운명이 별개의 것임을 의미한다. 각자 제 갈 길을 가던 이 양자가 3막에서 하나로 합쳐져서 공동으로 군국주의와 관료주의를 양축으로 하는 프로이센-독일 사회체제에 일격을 가하도록 한 착상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또 천재적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폭트와 문제의 대위 제복은 첫 장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관계도 맺지 않고 흩어져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15장까지 각각 제 갈 길을 간다. 두드러진 특징이 없고 극히 평범하지만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제화공 폭트는 일자리를 알아보러 보름서 양복점에 들어가나 거지로 오인되어 쫓겨난다. 2장에서 그의 거주허가신청이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4장에서 그는 거주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못 구한다. 그가 권위주의적인 관리들의 행태와 프로이센 사회의 비인간적 메커니즘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것이다. 직장이 없으면 거주허가를 받을 수 없고 또 거주허가가 없으면 직장을 구할 수 없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여권은 고향 관청에서만 신청할 수 있는데, 그곳에는 그에 관한 서류가 없다. 고국 독일에서 발을 붙일 수 없음을 알아차린 그는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즉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 여권을 손에 넣으려고 경찰서에 침입했다가 체포되어 다시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는 감옥에서 군사지식을 익힌다. 그는 출소 후 다시 한 번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려 시도한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와 매형이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지만 그는 이번에도 거주허가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개인과 국가의 관계란 문제에 있어서 폭트와 하급관리인 그의 매형은 극복할 수 없는 견해차를 노정한다. 추방 명령을 받은 폭트는 프로이센 국가의 결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고 행동을 취하기로 작정한다. 그는 이제 낡아 고물상으로 굴러들어온 대위제복을 구입해 슐레지엔역의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길에서 마주친 일단의 군인들을 데리고 쾨페닉 시청으로 가 시장을 체포해 베를린으로 압송시키고 시 금고의 현금을 압수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착오를 일으켜 여권을 손에 넣으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쾨페닉 시청에 여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후 그는 죄과를 치르고 석방되면 여권을 발급해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경찰에 자수한다.

추크마이어는 사회체제 때문에 소박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범죄자로 전락하는 이 평범한 제화공의 이야기와 나란히 결국 폭트가 이용하는 대위제복의 편력을 서술한다. 이 군복은 모든 면에서 프로이센 장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폰 슐레토프 대위가 보름서 양복점에서 맞춘 것이다. 그런데 그 군복의 결점이 제거되는 동안 폰 슐레토프 대위는 그것을 입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가 사복 차림으로 군인 출입 금지구역인 나치오날 카페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한 병사를 제지하다가 싸움이 붙어 경찰에 연행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데,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역원을 제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크마이어는 군복을 입지 않아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진짜 대위의 비극과 군복을 걸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간단히 제압하는 가짜 대위의 행각을 대비시켜 군복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보름서에게 돌아간 그 군복은 예비역 소위로 승진한 쾨페닉시외 고위관리 오버뮐러 박사 소유가 되는데, 그가 나중에 시장으로 승진해 폭트의 사기행각의 제물이 된다. 오버뮐러가 몸이 불어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그 군복은 다시 보름서에게 돌아간다. 그의 딸이 그것을 입고한 연회에 참석했다가 음식과 술을 뒤집어쓴다. 이렇게 낡고 더러워진 그 제복은 중고옷가게로 가서 결국 폭트의 손에 들어간다.

이렇게 대위 제복의 편력사와 폭트의 전기가 교차하는 장면들을 통해 나란히 펼쳐진다. 추크마이어는 정거장 극 기법과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원용해 이 두 주인공의 운명을 그린다. 이제 이 양자가 하나로 합쳐져서 세상에 나가 세상을 정복하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독일은 오랫동안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수많은 작은 주권국가들이 느슨한 연방 형태를 유지해오다가 1871년에야 비로소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된다. 비교적 세력이 약했던 프로이센이 뒤늦게 유럽의 열강 대열에 합류하고 또 강대국인 오스트리아나 바이에른을 제치고 독일의 여러 국가들을 통일하는 맹주로 급부상하게 된 원동력은 잘 훈련된 기능적인 군대와 관료조직에서 나왔다. 절대적인 상명하복,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의 원칙주의, 시간 엄수, 정확성, 부정부패를 모르는 공직자 등등 우리 한국인이 독일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표상의 상당 부분은 프로이센의 군대와 관료 조직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센을 지탱하는 이 두 기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군국주의와 관료주의로 변질되어 인간과 사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며 인간 위에 군림하게 된다. 폭트가 정상적인 시민으로 소박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은 결국 쓸데없는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비인간적인 관료주의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군국주의는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불행을 초래한다. 추크마이어는 "쾨페닉의 대위'에서 맹목적인 군복 숭배를 통해 빌헬름2세 치하 (1888-1918)외 프로이센-독일 사회에 만연된 비인간적이고 알맹이 없이 공허하며 표피적이고 기계적인 군국주의 풍조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이 1931년에 발표되자 정치적인 작품으로, 군복 숭배와 무조건적인 복종에 대한 비판으로 수용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체제비판론 자의 웃음과 체제옹호론자의 바보스런 자부심을 충족시킬 요소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황제가 웃었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경찰간부가 말한다. 이것은 폭트 같은 사람이 그 체제에 일격을, 그것도 그 체제 자체의 무기로써 일격을 가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체제가 결코 무너지거나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아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 웃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추크마이어는 거듭해서 군복의 직접적인 위력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군국주의가 사회와 인생살이의 모든 분야에 깊숙이 침투해들어와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복의 영향은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과 무관하다. 그러나 작가의 풍자적 공격은 군국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질서와 원칙에 사로잡혀 인간을 잊어버리는 그 체제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 비판은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폭트와 그의 매형 호프레히트 사이의 논쟁에서 극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그 체제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호프레히트는 차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중사로 진급하지 못하고 폭트는 추방명령을 받는다. 그 체제는 소속 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폭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것이다. 그는 고국에 정착해 배운 기술로 일하면서 동포들과 모국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 권리를 원한다. 그런데 국가가 이 기본적인 권리를 거부한다. 그런데도 충성스러운 신민 호프레히트는 국가가 유지되려면 무엇보다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국가를 옹호한다. 그는 국가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의 질서가 흠잡을 데 없으며 인간의 권리는 국가 질서에 편입될 때에만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질서를 절대시하기 때문에 국가질서와 개인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 질서를 의문시하기보다는 개인이 질서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이러한 그의 견해에서 우리는 나치가 집권한 후 독일 사회에 널리 퍼진 구 호 “너는 아무것도 아니고 네 민족이 전부다”를 예견할 수 있다. 국가, 질서를 우선시하는 호프레히트와는 달리 폭트는 인간을 우선시한다. 이들의 견해차는 원칙적인 것이 쉽게 극복될 수 없다. 그런데 추크마이어는 호프레히트를 전혀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처남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유일한 인물로 충직하고 의무감에 투철한 하급관리의 전형이다.

폭트는 소박하지만 결코 우매하지 않고 여러 가지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인정이 넘치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여권이 없기 때문에 고국에 발붙이고 살 권리를 박탈당해 프로이센의 국가체제로 구체화되는 운명의 손에 맡겨진 눈먼 장난감 같은 가련한 존재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신발털이 매트"처럼 짓밟히기만 하던 그는 그의 누나 집에 세 들어 사는 병든 소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그녀처럼 무가치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그 자신이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그대로 죽는다면 그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에게 빚을 지는 것이고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도 추방당하고 말 것이라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각하는 것이다. 이로써 폭트는 우연한 운명에 만족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추크마이어의 전형적인 주인공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자각은 그의 대담한 행위가 여권의 입수라는 외형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회복, 즉 “신발털이 매트” 로서 아무한테나 짓밟히는 존재로부터 자신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주체적 인간으로의 전환이라는 내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쾨페닉 시청에 여권을 취급하는 부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습하는 낭패감을 금방 떨쳐버리고 "이제 그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폭트는 인생이 신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 자산이고 인간은 그것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질서의 대립이 폰 슐레토프 대위의 경우 반대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는 호프레히트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갖고 있지만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프로이센군의 장교를 공급하는 토지귀족계급을 대표하는 그는 군대라는 조직에 완전히 편입되어 있는 철저한 군인으로 개체로서의 특징을 거의 안 가지고 있다. 그는 사복을 입으면 편하지 않고 나치오날 카페 같은 장교 출입 금지구역에서는 더욱 불편함을 느낀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군에서 사용되는 딱딱 끊어지는 말이다. 그는 사복차림으로도 병사가 프로이센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그냥 묵과하지 못 한다. 그러나 그가 지키려는 원칙과 군의 명예가 그로 하여금 군복을 벗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는 군국주의체제의 희생자이다. 사병과 싸움을 벌이고 경찰에 체포되는 불상사로 인해 프로이센 장교의 최고 가치인 명예가 더럽혀졌다고 판단하는 그는 군복을 벗는 길밖에 없다고 믿는다. 책임 소재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군인은 그런 불운을 당해선 안 되는 거야. 불운도 무능이야:' 군복을 입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오래 기다렸던 새 제복이 배달되는 것은 그에게 비극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비극적 운명을 가져다준 프로이센군의 경직된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군대라는 조직과 질서에 완전히 동화되어 생활해온 그는 그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없고 그것과 대등하게 존중할 만한 다른 형태의 삶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할 수도 없다. 제복이 지배하는 프로이센 사회에서 조직의 소속원이 아닌 개인과 개체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은 폭트처럼 국가에서 내쫓긴 자이거나 또는 폰 슐레토프 대위를 위로하는 밥쉬케같이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제복 숭배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뿐이다.

 

 

장차 쾨페닉시장으로 승진하게 될 오버뮐러박사는 예비역소위로 진급해 사회활동과 출세 가능성이 넓어졌다고 좋아하지만 이상주의적 신념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유주의적이고 타협적인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그는 당시의 많은 고급관리들과 마찬가지로 프로이센 국가질서의 가치를 확신하고 있다. 그가 동원훈련에 참석하기 위해 주문한 새 군복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안달하고 몸에 맞지 않는 헌 제복을 억지로 입으려고 애쓰는 장면에서 아주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어리석은 희극적인 인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부정부패를 모르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관리이다. 그는 직무상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기 때문에 체포당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는 순순히 체포당하지 않고 나름대로 저항한다. 쾨페닉 시의 다른 관리들이 처음부터 가짜대위에게 설설 기는 것에 비하면 그의 태도는 오히려 당당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예비역 소위에 불과한 그의 저항은 사회체제상 대위제복과 총검 앞에서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는 결국 가짜대위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마는데, 그것은 그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그의 체제순응적인 사고방식과 군복이 지배하는 사회체제 때문이다. 그래서 폭트가 마지막 장에서 경찰 간부의 비난에 대해 그를 두둔하는 것이다.

폭트는 경험을 통해 제복이 지배하는 프로이센의 사회체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돌아가는가를 충분히 알고 꿰뚫어본 뒤 한번 "신발털이매트"가 아니라 그 질서의 한 부분으로 행세하기 위해 그 지식을 이용한다. 이와는 달리 양복점주인 보름서는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살아간다. 세상물정에 밝은 그는 모든 기회에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속담이나 경구들을 알고 있고 고객들의 면전에서는 그들의 가려운 곳을 굵어주고 비위를 맞추어주는 데 열심이지만 등 뒤에서는 험담을 서슴치않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진 보름서조차도 파렴치하거나 비열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찾아볼 수 없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개체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는 동시에 각각 그들이 속한 사회계층을 대표하는 전형의 역할도 담당한다. 그들은 군복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살아있는 꼭두각시들이다. 관리. 경찰관, 군인, 간수들 모두 책임과 의무에 충실한 신하들이다. 인간성을 중시하는 추크마이어는 체제의 희생자들만을 보고 풍자적인 상황만을 설정한다. 폰 슐레토프 대위와 오버뮐러 박사도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추크마이어가 비판하려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제복이라는 우상을 중심으로 하여 돌아가는 사회체제임을 알 수 있다. 추크마이어의 풍자는 명령을 수행하는 계층의 맹목적인 복종 그리고 명령하는 계층의 오만과 비관용성 등 잘 알려진 독일의 악을 그 대상으로 한다. 추크마이어는 빌헬름2세 치하독일 사회의 명백한 허점과 비합리적인 선입관을 폭로하여 웃음거리로 만들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게 인간을 밟고 넘어 가는 권위와 사회체제의 내적 결함과 비인간성을 들추어낸다. 군복이 절대적인권위로서 인간을 지배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사회의 맹점은 바로 그 군국주의 안에 있다. 안짱다리, 쑥 들어간 얼굴 등 전혀 군인답지 않은 외모를 한 폭트가 더구나 이미 낡을 대로 낡아빠지고 얼룩투성이인 대위제복을 입고 길에서 만난 병사들을 인솔하여 가볍게 쾨페닉 시청을 점령하고 시장을 체포하는 것은 바로 그 사회체제의 허점을, 다시 말해 군복을 입은 사람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지지 않고 복종하는, 그러니까 군복을 입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군복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군국주의 사회의 맹점을 신랄하게 꼬집는 것이다. 폭트가 사용한 군복은 10여년의 세월동안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전전하는 동안 해지고 얼룩과 때가 묻어 고물상으로 굴러들어온 초라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대위제복이니까 민간인은 물론 관리나 경찰 그리고 대위보다 낮은 계급의 군인들을 간단히 제압하는 위력을 지닌다.

하지만 추크마이어의 비판은 예컨대 마르크시즘 같은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사회체제를 모색한다. 그는 군복이라는 우상숭배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의 대안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운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을 자유롭고 위대하고 영원한 존재로 만들며 인간 속 에 내재하는 창조적 불꽃을 피우고 보호하는 것이다. 추크마이어의 나치즘에 대한타협 없는 거부는 독일의 인도주의적 사명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는 히틀러 정권의 물리적 폭력성과 한없는 권력욕보다도 전체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둔 인간 존엄성의 무시를 더욱 위험한 것으로 보아 '쾨페닉의 대위'에서 풍자기법으로 나치즘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경직된 국가지상주의의 폐해를 폭로하고 그것의 대두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 작품에는 "독일의 동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작품과 동화의 연결점은 쉽게 눈에 띈다. 폭트가 병든 소녀에게 「그림 동화』가운데 「브레멘시립악단원」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오고 추크마이어는 부정확하지만 그 동화의 한 인용문으로 이 작품을 끝맺는다. 그리고 오버뮐러가 군복의 마술적 힘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런 외적 연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연결이다. 폭트와 소녀는 늙고 병들어 쓸모가 없게 된 「브레멘 시립악단원」의 가축들처럼 군국주의와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프로이센-독일 사회의 소외계층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은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군복숭배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계상황에 처한 "브레멘 시립악단원"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 새로운 삶을 찾은 것처럼 소녀의 죽음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한 폭트는 "죽음보다 나은 걸" 찾으러 쾨페닉으로 가서 그 체제의 수단을 사용해 그 체제를 눌러 이기는 승리를 쟁취한다. 폭트는 마지막 장면에서 대위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쳐본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가짜다. 전혀 군인 같이 생기지 않은 그가 허름한 군복을 입고 세상을 속였다니 그 자신도 믿기지 않아 홍소를 터뜨리며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외친다. 이 외침은 그런 일은 군복이 지배하는 프로이센-독일에서나 가능한 일임을 시사한다. 그런 믿을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고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독일뿐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독일의 동화"가 되는 것이다.

"쾨페닉의 대위"는 민중극과 시대비판극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효과는 작품 속에 들어있는 여러 요소들, 즉 희극적 요소, 동화적 요소, 감상적 요소, 사회비판적 요소들 가운데 어떤 것을 전면에 내세우느냐 하는 연출방식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민중극은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는데,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짓밟히기만 하는 폭트의 운명이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감상주의가 지나친 장면이 있는데, 특히 12장이 그렇다. 이 장은 폭트의 따뜻한 인간성을 부각시키고 또 동화 「브레멘 시립악단원」을 도입해 폭트에게 행동을 취하라는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지만 감상적인 분위기가 지나쳐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부정적인 등장인물 보름서를 유대인으로 설정함으로써 나치 파시즘에 대한 경고라는 작품의 의도가 어느 정도 흐려지고 있다. 이런 사소한 결점들이 있지만 '쾨페닉의 대위'는 전체적인 구성 그리고 분위기와 인물의 설정과 묘사가 탁월해 추크마이어의 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무대효과에 있어서도 다른 작품들을 능가하며 영화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의 주제가 프로이센의 군복숭배 풍조를 풍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2차 대전 후에도 많은 갈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