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후안 마요르가 '영원한 평화'

clint 2015. 11. 14. 11:01

 

 

 

 

 

작품해설
1795년 발표한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세계적 평화 또는 영원한 평화의 실현을 위한 철학적 기획으로, 사후에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영원한 평화가 정말 가능한가에 대해 구체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칸트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는 당장 달성되기 어려운 이상이지만 평화란 경험적으로 실행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명령이기 때문에 추구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을 유발해 영원한 평화를 좌절시키는 요소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모든 국가들이 영원한 평화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인류는 전쟁으로 멸망할 수 있다는, 매우 설득력 있는 경고이기도하다.

 


전쟁과 폭력의 파괴력에 대해 공감하고 전쟁을 피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또는 집단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전쟁을 유발하는 일은 빈번하다. 더 나아가, 전쟁을 마치 위대한 결단이자 최고의 해결책인 양 칭송하는 호전주의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후안 마요르가의 〈영원한 평화〉는 바로 이런 현실에서 폭력과 싸우기 위해 폭력을 어디까지 허용해야하는지, 테러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테러를 허용해야 하는지, 과연 목적이 모든 수단을 합리화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마누엘, 오딘, 존존은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최고의 엘리트 견만 뽑는 단체의 입사 시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최종 후보들이며, 이들의 성장 배경이나 성격은 각각의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투견이었다가 철학을 공부하는 주인을 만나 철학을 배우고 사색하는 이마누엘은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최고의 후각을 가졌고 길거리에서 성장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가리 지 않는 오딘은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죽음의 신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생각하는 능력이나 문제의식이 부족한 존존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을 비유하고 있다. 후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관문은, 시민들에게 벌어질 테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을 공격하느냐 마느냐 다. 이들은 최고의 안티테러리스트로 뽑히기 위해 테러를 저지르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그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지만, 혹 그 사람이 테러와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일 경우 테러와 불법에 대항해서 싸운다는 이유로 또 다른 테러를 낳고 또 다른 불법을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법을 준수하고 테러 행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테러를 저지르면,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008년 4월 마드리드의 마리아 게레로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2001년 미국의 911 사태와 2004년 마드리드의 열차 폭탄사건 (출근 시간. 마드리드 중심부 아토차 역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원한 스페인 정부에 보복하고자 이슬람 테러 단체가 저지른 사건으로 약 200명이 사망했고 그 결과 곧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배하게 되었다.) 등을 통해 테러리즘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해 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결실이다. 테러리즘에 대한 마요르가의 연극적 상상력은 주인공들, 너무나 인간적인 동물들을 통해 빛을 발한다. 개처럼 냄새 맡고 짖고 물고, 동시에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경쟁하며 충돌하는 그들은 연극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너무나 연극적인 존재들이다. 작가는 언제나처럼 현실의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면서도 '개- 인간'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통해 도덕적 자극이나 교훈적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악이 행해지는 메커니즘을 보여 주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을 필요악에 대한 생각에 초대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가 지켜지기를 바라면서...

 

 

 

 

작가 소개
스페인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는 내전을, 1939년부터 1975년까지는 프랑코군사 독재 정권을 겪었지만 1982년 국민투표를 통해 사회노동당 타이 정권을 차지함으로써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평화롭게 바쳤다. 새로운 정부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자유화와 개혁을 추진했으며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많은 정책을 수립하고 경제적 지원을 꾸준히 늘려 나갔다. 이에 작업과 공연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심이었던 연극 무대가 각종 연극제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찾는 관객들의 수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했으며 연극을 만드는 이들은 점점 더 공적 지원금에 의존 하게 되어 연극의 위기감이 팽배해 갔다.
이후 정권과 정책이 바뀌고 이전 정책의 실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보완해 20세기 말부터 스페인 연극 무대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국공립 극장의 비대화로 축소되었던 사설 극장과 소극장들이 활성화되었고, 연극인 양성을 위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작가 군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나 프랑코 독재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독재 말기에 태어나 억압적인 군사독재를 체험했다기보다는 기억하고 있는 세대로, 소극장을 전전하며 연극 에 대한 경험과 꿈을 키워 나갔고 연극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나 연출가들의 전문적인 강좌들을 통해 연극적인 글쓰기를 다져 나갔다. 이들은 또한,'브라도민 세대' 라고도 불리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1986년부터 1994 년까지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자 무대 상연을 의무화한 '브라도민 후작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상은 스페인 연극계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젊은 작가들이 출판에 그치지 않고 무대 공연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며 연극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의미 있는 상이다. 후안 마요르가 역시 이 작가들 그룹에 속하고, 첫 작품 〈선한 칠인〉으로 브라도민 후작 상 준우승을 차지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후안 마요르가는 1965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현재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 했으며 1997년에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자민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5년간 마드리드와 근교의 중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현재는 마드리드 왕립 드라마 예술 학교 교수다.
연극은 즐거움과 감동 외에도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사는 세상을 조명해볼 수 있는 뭔가를 던져 주어야 한다고 마요르가는 생각하고 있다. 관객의 상상력이나 감각에 도전하면서 경험을 풍성하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비판하며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공간이 연극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한 자신의 이력을 증명하듯, 마요르가는 극 언어가 수학처럼 정확하기를 추구하며, "철학은 연극과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사고에 몸을 입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며 철학적인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작품으로는 〈선한 칠인 ; 1989〉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1999)〉 〈뚱뚱이와 홀쭉이(2000)〉, 〈천국으로 가는 길; (2003)〉 〈하멜린; 2005〉국립연극 상, 막스 상 수상) 〈끝줄소년(2006)〉 (막스 상 수상),〈다원의 거북이(2008)〉 (막스 상 수상) 등이 있다. 이외에도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고전 작품들을 각색하기도 한다. 참고로, 막스 상은 1998년부터 스페인 작가, 출판인협회 회원들이 같은 분야의 동료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한 해 동안 무대에 오른 공연물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을 투표로 결정해 수여하는 매우 권위 있는 상이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포르투갈 어, 폴란드어, 아랍어, 그리스어 등 21개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각 나라 무대 에 소개되고 있다. 한편, 후안 마요르가는 2009년 〈다윈의 거북이〉 서울 공연 (서울시립극단, 김동현 연출)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연극론에 대해 강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