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톨스토이 '홀스또메르'

clint 2026. 5. 27. 08:27

 

 

이 작품은 병에 걸려 도살당하기 직전에 있는 늙은 말이 이틀 밤에 걸쳐 
자기의 생애를 들려주는 회상 형식으로 전개된다.
홀스또메르는 혈통이 좋고 골격이 튼튼하며 어느 말보다 빨리 달리는 훌륭한 
말이지만 얼룩말이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천대를 받게 된다. 
그러 던 중 우연히 어느 공작의 눈에 들어 그의 소유말이 된 홀스또메르는 
경마에서 다른 명마들을 제치고 우승하는 등.. 화려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공작의 애인을 추적하기 위해 밤중에 달리다가 다리가 부러져 
쓸모 없는 말이 되자, 중개인에게 팔려 말 상인, 노부인, 농부, 집시 등을 거쳐 
결국에는 태어난 마구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마구간에 있던 젊은 말들은 늙고 병들어 흉측한 얼룩말 홀스또 메르를 둘러싸고 
놀리며 천대하지만 어릴 때 친했던 늙은 암말 바조쁘리하가 그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홀스또메르는 여기서 몰락한 늙은 공작과도 다시 만나지만 공작은 얼룩말과의 
추억을 회상하면서도 홀스또메르를 알아보지는 못한다.
인간을 위해 일했던 말은 공작과 함께 했던 명마로서의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며 
도살되고, 홀스또메르는 죽은 후에 살과 가죽이 유용하게 쓰여지지만 
폐인이 된 늙은 공작은 아무 쓸모가 없이 죽어가는 이야기가 대비되며 끝난다.

 

 

 

1886년에 발표된 레프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홀스또메르>을  
마르끄 로조브스키가 2막 희곡으로 각색한 것이다. 함영준 /번역.
인생이여... 삶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나니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얼룩빼기 거세마가 외로이 서 있습니다” -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홀스또메르”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늙고 병들어 있는 초라한 말의 
회상을 빌어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그 안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생의 화두를 남겨주는 작품이다.
인간이 소유하고 부리는 말의 시각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등을 ‘홀스또메르’와 ‘세르꼽스키’공작의 삶과 대비하여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주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말이 주인공이자 화자가 됨으로써 
그보다 더욱 초라하고 추악한 인간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슬퍼...”

 

 

 

누구나...중후하게 늙을 수도 있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고,

때론 가련하게 늙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의 경우 말의 인생을 통해 그와 유사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이러한 유사점은 엇갈리게 된다. 말의 죽음이 버릴 데가 없이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반면, 세르꼽스끼 공작의 주검은 겉치레만 화려하게

땅에 묻히게 된다. 겉으로만 화려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말보다 더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사실을 역설적인 결말을 통해 보여 진다.
이 연극은 홀스또메르라는 말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일대기이다.

그 구성은 죽음을 앞둔 한 거세마의 회상으로 이루어지며, 그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변화무쌍한 시간과 공간을 구성한다.

또한 이것은 우화라는 측면에서 말의 시각이 관찰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간의 욕구와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되며 말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것이라 관객들 역시 인간의 행동을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훈성을

짙게 드러낸다. 또 이러한 자유로운 회상과 인간과 말, 탄생과 죽음, 사랑과 고통

등의 대비들은 이 작품의 중심인 우화적인 성격을 강조하게 되고 이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의 마음에 “산다는 것”에 대한 화두를 짙게 던져준다.

 

 

 

 

이 작품은 두 삶과 두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말인 홀스또메르의 
삶과 죽음이고, 또 하나는 공작의 그것이다. 말은 단지 외모의 얼룩 반점으로 인해 
거세당하고 팔려 다니다 죽어간다. 공작은 아무것도, 누구도, 두려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허비하다가 죽어 간다. 그러나 이 두 대비는 지속적으로 
또 다른 주제와 연결된다. 말의 죽음은 자연 속에서 다시 윤회하는 삶으로, 
공작의 죽음은 모든 이에 불필요한 짐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죽은 말의 가죽과, 살과 뼈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대상이 되었으나 공작의 시체는 그 어느 것도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똘스또이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인 '영과 육'의 문제로 확대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비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말의 눈을 통해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불가사의한 종족들의 특성인 소유의 문제로 귀결된다. 말을 통해 보여지는 인간들의 
묘한 형태인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 문제는 우리가 너무도 쉽게 자동적으로 쓰고 있는 
'내 것'이라는 이기성을 폭로하고 있다. 과연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돈, 명예, 사랑, 아니면 건강? 이러한 교훈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수없이 들어본 식상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똘스또이는 이러한 생각을 사람의 입이 아니라 그 인간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다 죽어가는 단순하고 묵묵한 말의 눈과 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낯선 시각 때문에 또 다른 상상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유와 존재의 문제를 알아듣기 쉽게 전하는 대가의 철학성은 우리 현실에서도 

인류의 비극 중 하나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끊임없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현상들 중에 '가족 이기주의', '노인 문제', '이지매'의 야만성과 그리고 '명예퇴직'이라는 
허울로 낡은 기계 부품을 폐기하듯 버려도 경제논리(소유)로 정당화되는 현상은 작가에 
의해 이미 110여 년전 예견된 것이 아닌가? 
홀스또메르는 마치 우리들의 운명을 반복하듯 이야기한다. 
혹시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란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우리의 소유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해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 ‘자유는 끝이 있을 수 없다. 자유는 영원하다. 인간에게 영원성이 있으면 
그는 자유인이고, 없으면 그것은 사물일 뿐이다'라는 톨스또이의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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